극우 본색 숨긴 적 없었는데 이럴 줄 몰랐다고?

대선 때 중도층 유인하며 당선 도왔던 지식인들

'속았다' 설득력 없는 변명보다 '속였다' 반성해야

윤석열 추락에 총선 다가오자 시치미 떼고 변신

'조국흑서' 강양구는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옹호

똑똑하다 자만하는 이들에 극심한 '우리편 편향'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검찰개혁을 위한 길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시작된 조국 교수 가족에 대한 '멸문지화'는 4년이 넘도록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조국 교수의 두 자녀는 자신들이 십 년이 넘게 청춘을 바쳐서 노력하며 쌓아온 학력과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자책하며 이것을 지켜보는 조국 교수와 감옥에 있는 정경심 교수에게는 피눈물이 날 일이다.

반면, 검찰-언론 카르텔이 이 가족을 짓밟는 과정에 힘을 보태며 정치적 자본을 쌓아 올린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은 이후에 윤석열 정권의 탄생에 직간접적 도움을 주더니 이제는 또 다른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 인물인 진중권 씨의 정치적 태도는 종잡을 수 없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조선일보와 인터뷰해서 '안티조선 운동을 후회한다'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속았다'라고 말했다.

"저는 좀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민주당은 반국가 세력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간첩입니다' 이런 걸 내세우고 당선됐으면 (지금의 발언들이) 맞다." "그런데 당시 선거는 그렇게 안 치렀다." "그때는 망언하는 사람들 다 배제하고 마치 안 그럴 것 같이 했다." "중도층 같은 분들은, 그분을 찍어줬던 많은 분들은 굉장한 배신감을 느끼고. 이러려고 찍었던 건 아닌데."

즉,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는 극우반공적인 본색을 숨기고 중도적인 이미지로 지지를 얻었고 자기도 그것에 속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건 솔직한 이야기도, 사실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 보이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막바지에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와 '#멸공'을 올리고 나서부터는 거침이 없었다. 잠깐만 검색하며 찾아봐도 여러 연설과 발언들을 찾을 수 있다.

"좌익혁명이념 그리고 북한의 주사이론을 배워 민주화 운동 대열에 낑겨 마치 민주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아온 그 집단"(2021년 12월 경북 안동), "좌파 사회혁명 이념을 공유하는 이권 결탁 세력"(2022년 2월 충남 당진), "우리 사회를 사회주의 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몽상가", "좌파 운동권이 장악한 민주당은 중국 입국을 못 막는다."(2022년 2월 충남 홍성) " "(민주당은) 생각이 평양과 똑같다."(2022년 2월 충남 보령)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때 유세 장면. MBC 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때 유세 장면. MBC 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윤석열 후보만 이런 주장을 하고 다닌 게 아니다. 지원 유세를 하고 다니던 정치인들도 비슷한 관점을 드러내며 색깔론 선동을 했다. 예컨대 이인제 전 장관은 "문재인 정권의 핵심들은 이른바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시절을 보냈고 대한민국을 대혼란으로 몰아넣었다"라고 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멸공이라고 말하는 게 문제 되는 나라, 그건 공산국가 아닌가. 자유를 삭제하고 자유민주주의 위협하는 문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윤석열 후보의 대선 선거운동에 극우 유튜버들이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오죽하면 대선 이후에 극우 유튜버들이 서로 '내가 더 큰 기여를 했다'면서 자랑 경쟁을 하고 나설 정도였다. 마치 치밀하게 명단을 정리하고 작성한 것처럼, 이런 극우 유튜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받은 사실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온갖 문제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고 정답을 제시하는 '박학다식'을 자랑하며 시사평론가로서도 맹활약해 온 진중권 교수가 이런 사실들을 몰랐을 리는 없다. 물론 이런 극우반공적 발언을 통해서 우파 지지층만을 결집해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당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과 족벌언론들은 상대 후보를 악마화하는 '최악의 네거티브 대선 구도'를 만들어내서 반대편으로 가는 표를 잡아둘 수 있었다.

반페미니즘과 젠더 갈라치기를 통해 낡은 반공 색깔론에 싫증 난 청년(남성)들의 표를 긁어오는 역할은 이준석 전 대표 등이 맡았다. 여기에 '공정과 상식'을 말하는 중도적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주변에 불러 모아서, 주류 언론의 도움 속에 극우적인 본색을 희석시키며 중도층의 표까지 일부 가져오면서 아슬아슬한 승리가 가능했다.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가 18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금 전 의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2023.4.18. 연합뉴스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준비모임의 첫 토론회가 18일 국회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금 전 의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민주당 이상민 의원. 2023.4.18. 연합뉴스

바로 여기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금태섭, 김경율, 권경애, 이수정 같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었고 무엇보다 진중권 교수 본인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일종의 속임수로도 볼 수 있는 이 과정에 함께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다만 진중권 씨는 극우반공적 프레임에 일부 동의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2020년 연말에 진중권 교수가 청년극우 유튜버로 유명한 성제준TV에 출연해서 아주 우호적으로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여기서 진중권 교수는 "나 같은 경우는 사회주의가 몰락했을 때 생각을 싹 바꿨거든.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운동권 출신의 민주당 586 정치인들을 '종북 주사파'로 규정하는 성제준 씨에게 일부 맞장구를 치며 "(그들은) 북한에 대한 낭만적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명백한 인민민주주의적 습속"을 지적한다.

진중권 교수가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마녀사냥 과정에서 '종북몰이'에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극우반공적 관점에서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앞장서 온 전원책 변호사나 종편방송들, 족벌언론들과 갈수록 긴밀해진 것은 이런 관점과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 '조국몰이'에 함께하다가, 지난 대선에서도 극우반공적 관점을 숨긴 적이 없었던 윤석열 후보에게 우호적 입장을 취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

따라서 진중권 교수가 이제 와서 '나도 속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공감보다 뜨악함이다. 이는 금태섭 전 의원이 갑자기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주변에 모으며 '반민주당 비국민의힘의 제3 신당'을 말하는 데서도 느낄 수 있는 당혹감이다. 알다시피 원래 민주당 소속이던 금태섭 전 의원은 다른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처럼 적당히 눈치 보고 침묵하며 거리 두는 것을 넘어서 '조국몰이'에 앞장섰다.

결국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자신이 평소에 말하던 개혁적 가치와 정반대에 있는 국민의힘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더 나아가 대선 때 윤석열 선대위에 들어가 돕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분명해진 지금, 금태섭 전 의원은 다시 등장해서 시침을 뚝 떼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진보진영 출신 인사들뿐 아니라 바로 얼마 전까지 윤석열 정부를 돕던 사람들도 모여들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2023.6.13. 연합뉴스
금태섭 전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2023.6.13. 연합뉴스

이 모든 이들의 공통점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국 사태를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라며 '조국몰이'를 사골처럼 끝없이 우려먹으면서 정당성을 찾고 정치자본을 쌓으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들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달라진 점이기는 하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총선이 다가오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도 속았다'는 변명이나 아무 설명도 없는 변신이 아니라 '나도 속였다'는 반성으로 보인다.

반면, 진중권 교수와 함께 '조국흑서 5인방' 중의 한 명이었던 강양구 기자는 이러한 변신이 아니라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입장을 변호해주고 있다. "(2011년 대참사 직후부터) 2년간 대량 투기한 오염수가 태평양과 한반도 인근 바다에 미치는 영향이 … 아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없을 정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당연히 '오염수 투기 옹호와 윤석열 정권 지키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조선일보의 무기로 사용됐다.

조선일보로서는 '과학전문' 기자라는 타이틀과 '황우석 괴담에도 반대했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강양구 기자의 이미지가 입맛에 당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오염수가 무방비로 방류됐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으니 다가오는 방류도 큰 위협은 아니'라는 강양구 기자의 주장은 '과학전문 기자'답지 않은 섣부른 단정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는 대참사 이후에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갑상선암이나 심장병사가 증가하는 경향에 대한 보고가 꾸준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에 대한 과학자이자 활동가인 백도명 교수는 "동해안 해저침전물 세슘 농도가 지난 2011년 최고 농도로 올라갔다"라고 지적하며 "침전물과 함께 생태계와 먹이사슬의 문제는 찾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다. 흔히 이야기하듯, 근거가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해양생물학자인 로버트 리치몬드 교수도 "후쿠시마 핵폐수 방류를 지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과학자로서의 의무"라고 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강양구 기자는 과거에 핵발전이 낳는 수많은 위험을 경고하면서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급진적 입장을 취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국몰이' 과정에서 '검사 윤석열'을 편들었다가 이제 윤석열 정부의 오염수 투기 방조까지 거들고 나선 강양구 기자는 지금 85%가 넘는 오염수 투기 반대 여론이 "일본이 싫고, 윤석열 정부가 싫고, 국민의힘이 싫고, 핵발전이 싫고, 민주당이 좋고 등등등"의 "편견"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자신과 정치적으로 같은 편이라고 보는 쪽의 주장은 가능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지만, 자신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이라고 보는 쪽의 주장은 가능한 부정적으로 보며 배척하는 '우리편 편향'이 오히려 스스로 학력과 지적 수준이 높고 똑똑하다고 자만하는 지식인 엘리트들 속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는 지적이 떠오른다.

"우리편 편향은, 올바르게도 대다수 편향에서 자신이 덜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는 인지적으로 성숙한 이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그들은 높은 교육 수준에 딸려 오는 지능과 인지 성숙도 때문에 자신은 당연히 남들보다 편향적 사고가 덜하다고 믿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연구 결과는 하나같이 인지 엘리트들에게서 유독 광대한 편향 사각지대가 조성될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 준다."(키스 E. 스타노비치, '우리편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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