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첫 기자회견서 언론과 전문가 집단에 불만

"정부의 선제 조치가 없는 탓…명단 공개 잘못 호도돼"

"위패·영정 없는 분향소가 2차 가해라는 전문가는 없어"

'비윤리' '법적 처벌' 운운, 달이 아닌 손가락에만 집착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2022.11.22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오열하고 있다. 2022.11.22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2일 기자회견장에서 공표한 요구 사항에는 국가와 정부의 사과 및 책임 규명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고 판정한 전문가 집단과 그들의 말을 받아적은 언론에 대한 불만이 포함돼 있다.

정부에 대한 울분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다소 가려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명명백백하게 전문가 집단 및 언론의 책무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TF가 마련한 회견장에서 나온 관련 발언을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유가족을 대리하고 있는 민변 소속  윤복남 변호사는 "민변에서도 (지난 14일자 성명에서) 밝혔듯이 유가족 의사에 따라 명단을 밝히는 게 핵심"이라면서 "그러나 정부의 선제적인 (명단 공개) 조치가 없다 보니 언론사가 됐든 종교 행사가 됐든 사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형태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으니 시민언론 민들레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추모 미사 등에서 명단이 공개돼온 저간의 상황을 요약한 말이다.

윤 변호사는 명단 공개의 마땅한 주체로 정부를 또렷이 지목했다. "정부가 공적 조치를 통해 유가족들에게 '희생자 추모를 위해 명단을 공개한다는 데 혹 동의하느냐'고 묻고 동의하는 분들에 한해 명단을 공개하면 될 일"이라는 말이다. 윤 씨는 이어 "그걸 가지고 마치 그게(명단 공개가) 문제의 모든 것인 양 잘못 호도되고 있다. 그 점에서 오히려 정부의 조치가 미비했다"고 정리했다.

'달'을 보라고 손짓했는데 달이 아닌 '손가락'이 문제의 전부인 양 호도한 전문가들과 언론보도를 지목한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국회에서 "유가족 명단이 없다"고 결과적으로 허위 증언을 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관련한 기자 질문에 민변 변호사가 내놓은 답변에도 담겨 있다. 그는 "명단 공개가 핵심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뒤 "전체 유가족들이 만나 서로 위로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보장하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2.11.22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2.11.22 [공동취재] 연합뉴스

'2차 가해'라는 표현을 둘러싼 유가족들의 통렬한 발언에 이른바 전문가 집단과 언론에 대한 불만이 응축돼 있었다.

회견을 마무리하려는 시점에 자진해서 마이크를 잡은 한 유족은 "매스컴이나 인터넷으로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는 기사를 읽었다"면서 "그쪽으로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라고 했다"고 말했다. 말과 울음이 뒤섞였지만 그가 전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고 진단한 전문가들은 많았지만, 정작 (정부가)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를 만든 게 2차 가해라고 말한 전문가는 한 분도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나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에서 무릎 꿇고 통곡하는 교복 입은 학생을 보았다. (…) 그게 분향소가 맞나, 그런 분향소를 보았나. 저는 못 보았다"는 말은 유가족 입장에서 2차 가해는 분명 정부가 만든 이름 없는 분향소였다는 것이다.

역시 '유족 동의'의 명분에 숨어 짐짓 명단 공개의 비윤리성을 지적한 정치권이 회견 뒤 보인 반응은 더욱 실망스럽다.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안호영 수석대변인)"고 했던 민주당은 "송구하다(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고 했고, '공공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을 거론하며 명단 공개를 질책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법어'를 남겼다. 국민의힘은 침묵으로 일관해 '정부 2중대' 역할에 무서운 집착을 보였다.

개인정보보호법을 들먹이며 법적 처벌 가능성이 높은 듯 호들갑을 떨었던 전문가와 기성 언론, 정치권은 자신들이 '손가락'만 보았음을 인정하는 어떠한 성찰도 보이지 않았다. 한 기성 언론은 이 유족의 발언 중 "영정 없는 분향소를 보았을 때 '그 또한' 저한테는 2차 가해였다"는 말에 포함된 '그 또한'을 확대해석해 명단 공개가 2차 가해라는 주장에 무게를 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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