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받은 전문가 “가짜뉴스 용어 사용 말아야”
“트럼프, 마음에 안드는 보도를 가짜뉴스로 취급”
윤 대통령도 시도 때도 없이 “가짜뉴스 근절” 언급
미국 듀크대의 빌 아데어(Bill Adair) 교수는 기자 출신으로 전세계 팩트체크 분야에서 잘 알려진 전문가다. 2007년 미국 팩트체크 전문 사이트인 ‘폴리티팩트(PolitiFact)’를 창립해 팩트체킹 사이트의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9년에는 언론계 노벨상이라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팩트체크를 배우려는 언론인들이 그의 책을 찾고 그를 만나 강의를 듣는다.
빌 아데어 교수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가짜뉴스 vs 팩트체크: 끝날 수 없는 전쟁’ 제목의 토론회에 참석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늘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트럼프는 자기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사에 대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잘못된 정보가 담긴 기사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라고 하는데, 이는 많은 혼란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한국 공공기관이 ‘가짜뉴스 근절’을 위해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해 ‘가짜뉴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를 그 이유로 든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 – 윤석열 대통령이 ‘가짜뉴스 근절’ 지시를 내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만들도록 하고, 또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재빠르게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있는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이다. 아데어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기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사에 대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출범 초부터 언론과 SNS, 유튜브 등에서 쏟아지는 정부 비판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면서 ‘근절’ 방침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MBC의 ‘윤 대통령 욕설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더니 윤 대통령의 계속된 망발·망언·실언과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모두 가짜뉴스 취급을 해왔다. 그러면서 방통위, 문체부, 행안부, 국민통합위 등 정부 부처와 조직을 동원해 가짜뉴스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비판 언론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소 남발도 이런 취지다. 이 정부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감추다가 이를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를 압수수색하고, 윤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해온 MBC 보도국과 기자를 압수수색했다. 천공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가 가짜뉴스라며 언론인과 전 정부 인사를 기소하기도 했다. 요즘은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는 국민의 불안까지도 '괴담' '선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국무회의, 국가 기념일 행사, 국제 행사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가짜뉴스’를 언급해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한국자유총연맹 기념식에서 또다시 ‘가짜뉴스와 괴담이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한 참모는 ‘비판적 언론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낮게 나온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대통령과 측근, 여당 모두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에 ‘가짜뉴스’ 딱지를 붙이고, 압수수색과 기소와 언론장악으로 이를 통제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는 무조건 가짜뉴스로 취급해 온 것으로 전 세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딱 맞는 사고체계다.
이런 정부가 해외의 팩트체크 전문가를 불러놓고 ‘가짜뉴스 근절’을 이야기했으니, 이 전문가는 얼마나 한국 정부를 우습게 여겼을까? 그러니 ‘가짜뉴스 근절’ 목적의 토론회에서 ‘가짜뉴스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트럼프 사례를 그 이유로 든 것 아닌가. 국격 떨어지는 일을 정부가 자초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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