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미국 의존 줄이고 유럽 자주적 장비 배치"

작년 나토 국방비 3450억 달러, 10년간 33% 증가

바이든, 7월 정상회의서 국방비 GDP 2.5%로 추진

‘동맹 관계' 한국·일본도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가까이 지속되는 가운데 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한 묘역에 전사한 장병들이 묻혀 있다. 무덤 주변에는 우크라이나 국가가 꽂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4일로 2년차에 접어든다. 2023.02.20 AF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년 가까이 지속되는 가운데 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한 묘역에 전사한 장병들이 묻혀 있다. 무덤 주변에는 우크라이나 국가가 꽂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4일로 2년차에 접어든다. 2023.02.20 AFP 연합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천문학적 국방비의 사용처를 두고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나토의 국방비 절반 이상을 미국산 무기 구입에 할애할 것을 희망하는 반면, 프랑스 등 상당수 유럽 국가는 유럽산 구매 및 유럽 방위산업 육성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꽤 오래전부터 나토에 국방비 증액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2001년 9‧11 테러가 그 계기가 됐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동서냉전이 끝나면서 유럽의 국방비는 삭감된 채 20여 년 정체돼 있었다. 그러다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이 잠자던 유럽을 깨웠다.

그 해 웨일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10년 후인 2024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리는'국방투자서약'(Defence Investment Pledge)을 승인했다. 이 회의에서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이 취임했다.

 

1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교장관회의. 2023.06. 01. 연합뉴스
1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교장관회의. 2023.06. 01. 연합뉴스

작년 나토 국방비 3450억 달러, 10년간 33% 증가

그로부터 9년이 지나도록 미국과 독일, 영국 등 10개국 정도를 빼곤 회원국 대부분 나토의 목표를 충족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회원국 전체를 합치면 국방비 지출이 크게 늘었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14일 자 보도에 따르면 2022년도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은 전년에 비해 13%가 증가한 3450억 달러(약 446조 원)였다. 이는 십 년 전보다 3분의 1 늘어난 수치이다. 이 중 대부분이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 과정에서 증가했다.

나토는 다음 달 11~12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2023년도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회원국의 국방비 증액 이슈를 거론할 방침이다. 특히 2025년 이후 국방비 지출을 GDP의 2.5% 수준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브리핑에서 바이든과 방미한 스톨텐베르그는 "2014년 나토 정상회의 당시 국방 투자 약속에 기반한 동맹군의 억지력과 방위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논의 등을 포함해 이번 정상회의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참석할 예정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3.06.14. 연합뉴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회담하고 있다. 2023.06.14. 연합뉴스

미국, 유럽에 '국방비 대폭 증액' 요구…뒤론 "미국제 사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스톨텐베르그는 13일 "GDP 2%의 국방비는 우리의 국방과 집단안보에 대한 투자의 최소한이라는 점에 동맹국들이 동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럽-미국 간 갈등의 핵심은 급격히 증가하는 나토의 국방비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한다면 그 돈으로 미국 무기를 살 것인지, 유럽 무기 구매  및 방위산업 육성에 투입할 것인지다.

폴리티코는 "나토 정상회의를 할 때마다 공개적으로 유럽 정상들은 국방비 지출을 늘리라는 워싱턴의 분명한 메시지를 받는다"면서 "뒤로는 증액된 국방비의 대부분을 미국산 무기 구입에 쓰도록 보장해 달라는 똑같이 분명한 또 다른 메시지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런 수법을 일본에도 써먹었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에게 2022년도 5조4005억 엔(약 51조 원) 규모인 방위비를 5년 후인 2027년까지 GDP의 2% 선인 10조 엔 정도까지 대폭 증액하도록 한 뒤, 그 돈으로 미국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00기를 구매하게 했다.

시사저널이 방위사업청의 '3000억 이상 해외 무기체계 구매 사례' 문건을 토대로 보도한 5월 12일 자 기사에 따르면, 한국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만에 미국 무기만 약 18조 원어치 구매를 결정했으며, 이는 문재인 정부 5년간의 약 2조5000억 원보다 7배 이상 많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7일 오후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관계자가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5.7.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리는 7일 오후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관계자가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3.5.7. 연합뉴스

‘동맹 관계' 한국·일본도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

불만을 느끼는 유럽 정상들은 당연히 있다. 미국에 대한'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틈날 때마다 역설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일종의 대변자 역을 맡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19일 파리에서 유럽 20개국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유럽 방공 전략 회의 폐회 연설을 통해 "우리는 외부 세계에 의존해 장래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며 유럽이 자체 방공 체계를 발전시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고 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순전히 생산능력에 기반해 접근하면 우리는 쓸모없더라도 '진열대에 있는 것'(미국산)을 바로 사게 된다"면서 "이는 보통 대량 구매이고 유럽산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마크롱은 지난해 독일 주도로 출범한 '유럽 영공 방어 계획'(ESSI)이 미국과 이스라엘 방산업체에 의존하는 점을 들어 반대해 왔다. ESSI는 유럽 국가들이 방공 장비와 미사일을 공동 구매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프랑스 등을 제외한 유럽 17개국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연설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연설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마크롱 "미국 의존 줄이고 유럽 자주적 장비 배치해야"

그는 유럽이 미국산 군사 장비에 의존하는 까닭은 미국의 방위산업이 더 많이 표준화됐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받기 때문이라면서 유럽 방산업계의 독립성 강화와 다각화, 표준화를 강조했다.

앞서 5월 31일 브라티슬라바에서 진행된 슬로바키아 싱크탱크 글로브섹(GLOBSEC) 주최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나라에서 진정으로 유럽적인 국방 기술 및 산업 기반을 발전시켜야 하며, 유럽 차원에서 완전히 자주적인 장비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급격히 증가하는 나토 국방비의 더 많은 부분을 유럽에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국방정책이 EU 회원국 기업에 국한돼야만 하는지를 놓고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게 폴리티코의 보도다.

EU 기업에 국한돼야만 한다는 것은 마크롱과 티에리 브레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의 입장이다. 브레통은 "우리의 계획은 우크라이나와 우리 자신의 안보를 위해 EU 돈을 가지고 우리의 방위산업을 확장하는 노력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맥스 버그먼 유럽·러시아·유라시아 담당 국장은 "EU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EU와 나토와의 디커플(분리)을 뜻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미국 방위산업 정책에 영향을 미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에서 러시아의 공격에 부서진 서방의 레오파르트2 탱크, M2 브래들리 장갑차. [EPA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에서 러시아의 공격에 부서진 서방의 레오파르트2 탱크, M2 브래들리 장갑차. [EPA 연합뉴스]

"국방비 유럽 할당 확대" 마크롱…미국엔 두통거리

마크롱의 생각만큼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마크롱은 더 많은 국방비를 유럽에 할당하길 요구하지만, 현재 유럽 방위산업의 생산 능력으론 당장 그 요구를 뒷받침하기 쉽지 않다.

무기에 관한 한 유럽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이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에서 독일의 레오파르트 전차, 그리고 폴란드의 휴대용 방공시스템인 표룬에 이르기까지 나름 방위산업에 깊은 전문기술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미국 방산업체의 기술 혁신과 기업 규모로 인해 무기 구입을 원하는 유럽 국가들 다수가 미국제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속한 생산 및 납품 능력도 지금으로선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은 더 많은 무기를 더 신속하게 구입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빈 무기 창고를 채우고 계속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해야 할 긴급한 상황이지만, 오랫동안 생산능력을 축소한 탓에 유럽의 방위산업은 '정상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폴리티코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를 포함한 다수 유럽 국가가 미국의 레이시온이나 록히드마틴의 각종 무기 구매 사례를 전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방위산업의 지배력을 확인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협상은 과연 유럽이 미국 방산업자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에 기반한 마크롱의 자주국방과 나토 군사비의 유럽 할당 확대 주장은 당장은 미국 방위산업 정책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유럽과 EU, 나토, 그리고 미국 사이의 갈등을 촉발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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