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문제'로 돌려놓기 위해 필요한 것들
한편에서는 ‘처리된 물이 앞에 있다면 1리터라도 마시겠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삼중수소가 유전자를 망칠 거라고 한다. ‘참치에서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는데, 후쿠시마 말고는 원인을 댈 곳이 없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태평양이 얼마나 크고 넓은데, 그걸 붓는다고 티도 안 난다’고 한다. ‘검증을 하는 것은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
복잡한 문제를 푸는 방법중 하나는 그것을 단순한 문제로 하나씩 나눠보는 것이다.
1. 공유지의 비극
오염수를 처리하고 버리는 것은 일본의 고유한 주권행위인가?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행위를 막거나 제재할 방법은 없는 게 사실이다. 일본의 영토에 보관해오던 것을 일본의 영해에 투기하는 것이라 국제법을 어긴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해류가 태평양으로 돌아서 흐른다 하더라도 심층수는 곧바로 황해로 들어온다. 어차피 이어진 바다라면 생태계는 하나다. 방사능은 적은 양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방출되면 생태계의 최상위 사슬인 참치, 그리고 그 참치를 먹는 사람에게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 침해는 기후위기와도 같아서, 먼나라에서 돌리는 석탄발전소가 결국 지구 전체의 공기를 데우는 것과 같다. 주권 행위라 마냥 방치하면 공유지의 비극이 나타난다. ‘RE100’이니 ‘탄소국경세’같은 제도들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디서 데우든 기후위기는 동시에 맞는다. 같은 바다를 쓰는 이웃나라로서 제대로 된 조처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한국정부에게는 이것이 국민을 대신해서 투명한 처리를 요구해야 할 의무가 된다. 일본만의 고유한 주권이라고 해선 안된다.
2. 신뢰의 첫번째 조건, 투명성
“이것은 과학의 문제다,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 주재 객원논설위원은 3월 22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감정 문제, 한일 간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문제이자 과학의 문제"라며 "요새 국제사회는 '과학적으로 볼 때 문제가 없다'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좋은 지적이다. 그러나 이게 과학적인 토론으로 가려면 무엇보다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있는데 매일 금똥을 눈다’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 주장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그 친구의 집에 가서 소가 똥을 누는 것을 보는 것이다. 매일 금으로 된 똥을 볼 수 있다면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이렇게 공개하는 것을 투명성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의 발표와 조처들을 믿기 어려운 것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 뉴질랜드 등 이번 방류의 직접 당사자인 태평양의 18개 섬나라가 회원국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Pacific Islands Forum)은 일본의 발표 이후 도쿄전력에 오염수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이를 검토하기 위한 독립된 과학자 자문단을 구성했다.
3. “오염수 안에 정확히 뭐가 있는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핵물리학, 해양학, 생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PIF 자문단은 지난 1월 한국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해외 전문가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도쿄전력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 분석 결과를 공유했다.
“오염수 안에 뭐가 있는지를 아무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PIF 과학자 패널 전문가들은 밝혔다. 도쿄전력이 제공한 4년 3개월간의 오염수 데이터의 측정 프로토콜과 양적 신뢰성에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표본 추출이 불완전하고, 부적절하며 일관성도 없다고 지적했다.
도쿄전력은 2017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4년 3개월간 원전 오염수를 분석한 자료를 제공했다. 발제를 맡은 미국의 핵물리학자 페렝-달노키 베레스 미들베리국제대학원 교수가 밝힌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며 일관성 없는 데이터 표본 추출
오염수 내 64개 방사성 핵종중 9개 핵종만 검사했다.
2) 지나치게 긴 공백기간동안 데이터 표본을 추출한 바가 없다
3) 4년 3개월간 오염수 저장 탱크 중 1/4 수준만 측정했다
맨 위 1/4의 오염수만 떠내 그 아래 침전된 고준위 방사성 슬러리 폐기물(액체성 방사성 폐기물이 여러 물질과 혼합돼 걸쭉한 상태로 변한 것) 정보가 전무하다
4) 오염수 저장탱크 일련번호와 같은 기본적인 데이터도 없다
5) 데이터의 정합성과 대표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간차를 둔 재측정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6) 오염수 저장기간이 약 12년인 것을 고려할 때, 반감기가 9시간인 방사성 텔루륨-127이 매우 높은 농도로 발견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수치다. 도쿄전력은 이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7) 전체 64개 방사성 물질이 문제인데, 도쿄전력은 1개의 핵종(삼중수소)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도쿄전력으로부터 PIF 과학자 패널에 공유된 오염수 저장 탱크의 방사성 핵종 데이터는 모두 부정합, 부정확, 불완전하며 편향적으로 판단한다.
2) 1천 개가 넘는 오염수 탱크중 단 1개의 탱크도 전체 64개 핵종의 조합과 농도에 대한 측정이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3)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아직 진행형이며, 매우 비정상적인 상태다. 따라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정화 처리와 처분 방식이 안전하고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저장오염수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은 이들 전문가그룹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020년 9월 20일 ALPS(다핵종 제거설비 등을 이용한 오염수 정화처리 시스템,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로 처리한 저장 오염수 약 110만 톤 가운데 70% 이상이 방출 기준치를 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중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방출 기준치의 100~2만 배에 달하는 것이 6%에 이르고, 10~100배인 것이 15%, 5~10배인 것이 34%라는 것이다. 오염수는 하루 160~170톤이 발생하고 있고,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총 7기의 ALPS가 설치돼 있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이에 대해 여러 번 재처리를 반복해 오염도를 법정기준치 이하로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4. 3중수소를 넘어서. 실현가능한 해법
위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도쿄전력은 64개 핵종 중에서 유독 삼중수소에만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그곳이 자신들이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공간이라 간주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월성원전에서 더 많은 삼중수소를 배출하고 있다’거나, ‘태평양을 돌아서 한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삼중수소는 다 희석이 돼서 검출되지도 않을 거’라는 게 주요 논리로 나타나는 건 이런 심증에 무게를 더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핵심은 그게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국제사회는 아직까지 일본으로부터 투명한 데이터를 받아본 적이 없다. ‘과학적’ 토론을 할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지금까지 행태는 신뢰보다는 의혹을 더한다. 후쿠시마의 시민단체는 아직도 후쿠시마의 오염된 흙을 측정해보면 일부에선 방사능이 1만 베크렐 이상으로 확인된다고 증언한다. 원전 사고 전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세슘도 이제는 어디서나 검출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피폭으로 인한 발병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며 아동이나 여성, 노인들의 갑상선 피폭 선량 측정을 중단했다. 게다가 각지에 설치한 방사선 감시장치 수도 줄이고 있다.
데이터만의 문제도 아니다. 설령 ALPS가 설명한 대로 기능을 한다고 쳐도, 그 운영이 잘 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우리는 어떤 정보도 없다. 필터에 진흙덩이 수준의 오물이 끼면 필터는 제 기능을 잃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필터의 교체는 쉬운 문제가 아닌데, 지하침출수가 섞인 오염수는 하루에도 160톤이 넘게 나온다.
사실은 해법은 어렵지 않다. 소가 금똥을 누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당신의 집에 매일 금똥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접 보면 쉽게 믿게 될 것이다. 3가지만 하면 된다.
1) 오염수 처리와 관련하여 투명한 정보를 제공한다.
2) 국제사회의 참여를 통한 객관적 검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한다. 이것은 처리수에 대한 직접 샘플 채취 허가를 포함한다.
3)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관련 환경기준을 준수하고, 이를 검증할 수단을 제공한다.
이렇게만 하면 우리는 오염수 문제를 ‘감정의 문제’나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로 돌려놓을 수 있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태평양의 해양생물들에게도 두루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 국민 68.7% “시찰단, 오염수 방류 명분만 줄 것”
- 한국은 일본의 세계 바다 핵오염 공모자 되려는가?
-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5대 불가론
- 시찰이 오히려 해양투기·농수산물수입 허가장 될지도
- 한일 시민연대 “한미일 ‘전쟁동원 체제’에 반대한다”
- 히로시마 G7 주제는 ‘글로벌 사우스' 내편 만들기’
- 원전 과학자들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은 역사적 범죄"
- 핵 오염수 투기에 분노…"1리터 말고 한 드럼 마셔라"
- 대통령실 '오염수 불감증'…전문가 연구도 "가짜뉴스" 폄훼
- 국민 85.4%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 [핵오염수 백화(百禍)사전] ①삼중수소는 OO이 없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