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에서 전부 다 문재인 정부·야당 탓만

원인 분석 실패해놓고 임대차 3법만 때려잡기

도이치모터스 말도 못하면서 증권합수단 운운

야당 대표 소통도 한번 안하면서 "거야 때문"

민방위 중단한 적 없는데 "전 정부서 안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5.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5.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거대한 퇴행이다.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윤석열 대통령의 작심 발언에는 정책적 대안 제시는 없고 행정 수반으로서의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독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자기 반성은 없고 오로지 문재인 정부와 야당 탓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취임 1주년의 소회와 함께 작심하듯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전세 사기, 그리고 주식과 가상자산에 관한 각종 금융 투자 사기가 집단적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서민과 청년세대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고 절망하고 있다"며 "서민과 청년에 대한 사기 행각은 전형적인 약자 대상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됐다"고 했다. 그는 다만 최근 문제가 되는 전세 사기의 원인을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에서만 찾을 뿐, 국정운영 최고책임자로서 정책적 대안 제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정부·여권과 수구언론, 보수 경제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임대차 3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임대차 3법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임대차 3법이 2년이 되는 8월 전세가가 폭등해서 전세대란이 날 것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임대차 3법 '때려잡기'에만 몰두했다.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8월 전세대란을 기정사실처럼 여겼다.

그러나 임대차 3법으로 전셋값은 오히려 하락했고, 금리인상에 따른 '역전세난' '깡통전세'가 문제가 됐다. 완전한 예측실패였다.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지목하지 못하는 가운데,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 등에서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사기 피해자 사례가 속출했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대로 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1만인 서명운동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 '보증금 채권 매입'을 포함하라고 촉구했다. 2023.5.8.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대로 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1만인 서명운동 돌입 선포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 '보증금 채권 매입'을 포함하라고 촉구했다. 2023.5.8. 연합뉴스

그럼에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2월 전세사기 관련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졸속 임대차 3법 개정으로 전세 대란이 일어났고, 금융은 무제한으로 풀리는 가운데 특히 전세대출금 융자가 아무런 여과 장치와 건전성 통제 없이 풀려나갔다"며, 여전히 주요 원인을 전 정부에 돌렸다. 이념 싸움에만 매몰된 것이다.

수구언론에서 경제 전문가로 자주 등장하는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도 최근 페이스북에 임대차 3법을 추진한 민주당과 정의당을 비판하며 "그렇게 전세사기 원인을 제공해놓고 피해자 지원을 외치는 것이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고쳐준 놀부 심보와 무엇이 다르냐"고 힐난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수구언론은 윤 전 의원의 발언을 앞다퉈 받아썼다.

전세사기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설명이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탓이 아예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전세사기의 시작점이자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부의 유동성 확대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빚 내서 집 사라' 정책에서 비롯됐다. 저금리 대책은 다주택자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 정책과 규제 완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집주인의 위험성을 낮춰 갭투자를 조장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보증한도 100% 전세반환보증보험 역시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됐다. 화곡동 빌라왕 강모씨의 무자본 갭투자 매입이 시작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여전히 전 정부의 탓에만 매몰돼 있는 것은 전형적인 책임 돌리기이자, 사회적 재난으로 불리는 '전세사기'의 근본 원인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증권합수단 해체로 상징되는 금융시장 반칙행위 감시체계의 무력화는 이러한 가상자산 범죄와 금융 투자 사기를 활개치게 만들었다"며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적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와 마찬가지로, 범죄자의 선의에 기대는 감시 적발 시스템 무력화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넣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표면적으로 최근 코인 투자로 논란이 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을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인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윤 대통령이 야당 의원과 관련된 특정 사건을 암시하듯 발언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에서 부활한 증권합수단이 과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수사를 공정하게 하고 있는지를 반문하는 게 먼저로 보인다.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김건희 씨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경찰의 내사가 이뤄졌지만, 공교롭게 증권합수단이 설치된 2013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됐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 출신으로 채워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이 사건을 맡고 있지만, 김 씨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손 놓고 있다. 국회에서는 김 씨에 대한 특검법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라탔지만, 연말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권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주가조작 연루 사실이 도이치모터스 사건 1심 판결문에 기록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 그래픽=고일석 에디터
주가조작 연루 사실이 도이치모터스 사건 1심 판결문에 기록된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 그래픽=고일석 에디터

증권합수단을 부활시킨 윤석열 정부에서는 과연 금융범죄 감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8조 원이 시장에서 증발한 사상 초유의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를 두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안일한 관리감독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심지어 검사 출신인 이복현 원장의 수하에 있다. 합수단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또한 "과거 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에서 마약 조직과 유통에 관한 법 집행력이 현격히 위축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국민 여러분께서 모두 목격하셨다"면서, 최근 언론에서 부각되고 있는 마약 범죄의 증가 원인 역시 문재인 정부 탓인 것처럼 말했다.

마약 범죄의 증가 원인으로는 여러가지 꼽힌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도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대로 검찰수사 조직의 개편이 마약 범죄 수사에 일부 영향을 줬을 수 있지만, 그것이 범죄 증가의 주된 이유가 될 순 없다. 검찰개혁이 마약범죄를 증가시켰다는 식의 사고는 전형적인 검찰 만능주의 사고에 불과하다.

게다가 마약범죄 관련 수사는 검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관세청과 경찰청 등도 마약밀매와 투약 등을 단속하고 수사하고 있으며, 이들 기관은 검찰과 함께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에 들어가 있다. 이 같은 전 정부 책임 전가는 마약범죄 엄단에 대한 의지보다는 대통령이 스스로 검찰의 생존 이유를 마약수사에서 찾아주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이 밖에도 윤 대통령은 "무너진 시스템을 회복하고 체감할 만한 성과를 이루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야(巨野) 입법에 가로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던 점도 솔직히 있다"고 토로하듯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출범했다. 야당의 협치가 필수적이지만,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 대표와 단 한 번도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이 XX 사태' 이후엔 언론과 소통도 끊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과의 소통이 건강한 국정 운영을 돕는 최고의 살균제가 될 것이다. 자칫 독선과 독단, 독주의 길로 빠질 수 있는 유혹을 막아줄 것"이라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말하기 어렵다. 낮은 자세로 언론과 소통하고 야당과 소통하고 국민과 소통하기 바란다"고 했다.

민주당 황운하 원내부대표는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여야정 협의체 가동 등 민생경제 위기 돌파를 위한 직접 대화를 거듭 제안했음에도 취임한 지 364일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와 단 한 번도 회동하지 않았다"며 "협치는 고사하고 공적 지위가 없는 배우자가 국정에 관여한다는 의문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해명조차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한 뒤 이 대표 앞을 지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한 뒤 이 대표 앞을 지나고 있다. 2023.4.19. 연합뉴스

"자화자찬의 취임 1주년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 상당 부분을 자화자찬에 할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년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서 정상 세일즈 외교를 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 방한 계기에 약 40조 원에 달하는 26건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올해 1월 UAE(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에서는 300억 불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등의 발언을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오는 5월 16일, 6년 만에 다시 민방위 훈련을 재개한다"며 "그간 가짜 평화에 기댄 안보관으로 민방위 훈련이 실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 본인이 가짜뉴스를 퇴치해야 한다면서 가짜뉴스를 말한 셈이다. 민방위는 6년 동안 중단된 적이 없으며, 코로나19 시기에도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말한 민방위훈련은 '공습대비' 훈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습 경보(사이렌)가 내려지면 차량과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형적인 관제 훈련이다. 공습 대비 훈련은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평화 무드였기 때문에 공습 훈련의 필요성이 떨어졌다. 대신 문 정부에서는 실전적인 재난대비훈련을 강조했었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요한 윤석열 정부가 민방위 훈련을 강조한 것은 '평화'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전쟁 위기'가 고조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센터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5월 10일부터 지난 4월 말까지 북한이 시험 발사한 미사일 수는 2022년 52발과 올들어 발사한 16발을 합쳐 모두 68발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발사된 미사일 수(63발)를 단 1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자료 : 미 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센터
자료 : 미 제임스 마틴 비확산 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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