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한일관계 복구에 감사하다고 한 이유
한미일 지소미아·미사일방어체제 가동
남방=북방 삼각동맹 대치구도 완성
국지전 벌어질 때 최대 희생자는 남북한
일본 재무장-군국‘열강’ 회귀 돕는 미국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북핵미사일 위협과 확장억제를 위한 핵협의그룹(NCG) 창설 등의 화려한 말 홍수 속에 반도체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한국기업들의 명운이 달린 현안들은 ‘협의 계속’으로만 남았고, 국가안보실 도청 문제는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왜 감사했을까
“특별히 일본과의 외교를 위한 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26일(현지시각)의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가장 인상적이고 의미심장한 말 중의 하나는 정상회담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 한 이 말이다. ‘일본과의 외교를 위한’ 한국 대통령의 ‘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왜 제3자인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감사했을까. 외교상 의례적인 발언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생뚱맞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렇게 감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이 감사의 말은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한일 정상회담을 거쳐 한미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국정부가 보여준 외교안보상의 특이한 행적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일 수 있다.
이 감사의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는 정상회담 뒤 발표된 공동성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좀 더 자세하게 보여준다.
“두 정상은 공동의 가치를 따르고, 혁신을 동력으로 하며, 공동의 번영과 안보에 대한 의지에 기반한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윤 대통령의 대승적 조치를 환영하였고, 지역 및 경제 안보에 관한 3국 협력 심화로 이어지는 한일 간 협력 확대를 강력하게 지지하였다.”
공동성명에서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두 정상은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 관련 진전을 환영하였고, 북한의 고도화되는 핵·미사일 위협을 보다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대잠전 및 해상미사일방어 훈련이 정례화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양 정상은 해양차단 훈련 및 대해적 훈련을 재개하고 재난 대응 및 인도 지원 관련 추가적 형태의 3국간 훈련을 식별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하였다.”(<한겨레> 4월 27일)
바이든 대통령이 감사한 이유는, 이처럼 ‘한미일 3국협력’ 심화에 필수적인 한일 간 협력 확대로 가는 연결고리를 끊어 놓고 있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등 일본의 침략과 전쟁문제, 이른바 ‘과거사’문제를 윤 대통령이 ‘대승적 용기’와 ‘헌신’으로 단번에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투로 보건대, 이는 그냥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해 준 데에 대한 일반적 감사가 아니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부탁한 것을 들어 준 데에 대한 아주 특별한 감사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한일관계의 시급한 ‘정상화’를 강조하고 정권 출범 이후 국내의 많은 우려와 반대까지 무릅쓰고 ‘제3자 변제’라는 편법까지 써가며 그 문제 ‘해결’을 무리하게 서둔 까닭이 이해가 된다. 게다가 그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미국 ‘국빈방문’ 계획을 발표하고 한 달 뒤 워싱턴으로 날아가,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감사를 받게 된 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GSOMIA(지소미아) 복구, MD(미사일방어) 가담
앞서 인용한 공동성명에 나와 있듯이, 윤 대통령이 미국에게 난제였던 한일 간의 그 연결고리를 이어준 덕분에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 관련 진전”이 이뤄졌고, 북의 “핵미사일 위협을 더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대응하기 위한 대잠전 및 해상미사일방어 훈련을 정례화”할 수 있게 됐다.
북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란 아베 신조 정권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첨단소재부품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자 한국정부가 단행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폐기를 완전히 복구했다는 얘기로 읽힌다.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폐기는 미국 쪽의 요구로 ‘잠정 중단’ 정도로 후퇴했으나, 이번에 윤 대통령의 ‘헌신’ 덕에 완전히 복구된 것이다. 대잠전 및 해상미사일 방어 훈련은 한국이 이제까지 참가를 공식 거부하면서 사실상 부분적으로 참여해 온 미일동맹의 미사일방어(MD)체제에 완전히 들어간다는 것으로 들린다.
‘대잠전’ 훈련이란 잠수함 공격 대비 방어훈련일 텐데, 이번에 이 잠수함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마치 가볍게 지나가듯 “핵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가까운 곳으로 핵잠수함은 배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핵잠수함 한반도 인근 배치 의미
핵무기를 장착한 핵 추진 잠수함을 한국 가까운 해역에 다시 배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한국 내의 보수우파 세력의 한국 자체 핵무기 제조 주장이나 미국 전술핵 한반도 배치 주장을 무마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26일 관련기사에서 이 부분에 관심을 보이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핵무기 탑재 가능한 미국의 전략원자력잠수함(핵잠수함)을 한국에 파견하는 등 억지력 강화를 내세웠다”면서, “미국정부 고위관리의 말에 따르면, 전략원자력잠수함의 (한국 근해) 파견은 1980년대 이래(처음)”라고 했다.
이는 아마도 1991년 조지 부시(아버지) 정권 때 ‘전 세계 배치 전술핵무기 철수 및 폐기 선언’에 따라 한반도에 배치돼 있던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배치된다는 말일 것이다. 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할 수 없는 미국이 핵무기 개발이나 배치를 소리높여 외치는 한국 보수우익의 요구를 달래기 위한 타협책으로 취한 조치일 수 있으나, 그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이 문제가 한국에서 논란이 됐을 때 “태평양상에서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들 중 하나 이상을 오로지 ‘한반도용’으로 배정할 수도 있다”고 이미 그때 얘기한 적이 있다.(<보이스 오브 아메리카> 2022년 10월 13일)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에 따르면, “잠수함 발사 트라이던트 미사일은 저위력 탄두이기 때문에 전술핵무기 역할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트라이던트 미사일을 탑재한 다수의 미국 핵잠수함들은 평시에도 한반도와 일본열도 인근을 비롯한 태평양 물밑을 돌아다니는데, 그들 중 하나를 바이든 대통령이 지나가듯 말한 것처럼 한반도 가까운 곳으로 ‘한반도용’이란 딱지를 붙여 배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별다른 의미가 없다. 게다가 베넷 연구원은 ‘트라이던트’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6천 마일(9,600km) 이상이기 때문에 태평양 어느 곳에서든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한반도 인근에 그것을 탑재한 잠수함을 배치하는 게 별 의미없는 립서비스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세이모어 전 조정관에 따르면 “미국은 본토에도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북한을 1시간 안에 타격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하거나 한반도 인근에 핵탄두를 탑재한 핵잠수함을 배치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핵무기 개발이나 미국 전술핵무기 한반도 배치 주장은 그 자체의 실제 효용보다는 그것이 갖는 거대한 대중적 파급효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계산에 따른 작위적 고안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다시 냉전체제로?
애초에 미국은 한국의 자체 핵개발을 용인할 의사가 전혀 없다.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패권 유지를 위한 국제정치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해 온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의 핵무장 도미노와 NPT의 붕괴를 부를 가능성이 높은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리가 없다. 허용할 경우 일본과 대만이 당연히 핵무장에 나설 것이며, 북한을 핵보유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공식입장도 허물어진다.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통제 또는 패권전략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할 수도 있다고 한 트라이던트 탑재 핵잠수함 얘기 자체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나, 미국 전술핵무기가 한반도 또는 한반도 인근에 다시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그것은 한반도 주변 상황이 다시 1980년대, 즉 동서냉전 말기 상황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이 얘기한 지소미아 부활이나 한미일 미사일(MD)방어 체제 구축은 바로 그런 상황을 가리키며, 그때의 ‘주적’은 1980년대의 소련(러시아)이 아니라 중국 또는 중국·러시아·북한의 이른바 북방 삼각동맹이 된다. 말하자면 바이든이 구상하고 있는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일본·한국의 남방 삼각동맹이라는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한국판 ‘인도태평양전략’을 처음으로 책정해 발표하면서 미일동맹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한 것을 두고 “미국의 전략에 따르는 것으로 환영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판 인도태평양전략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전략이 발표된 것과 거의 같은 시기다.
동아시아판 나토, 장기판의 졸
그때 미국과 일본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동아시아판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얘기들이 돌았다. 그 몇 개월 전인 6월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 한국과 일본 정상들이 처음으로 초청돼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이 구상하고 있고 일본이 이에 적극 동조하고 있는 인도태평양전략은 30여년 전에 무너진 동서냉전 또는 그 유사구조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다시 구축하려는 것이며, 중국 등 북방 삼각동맹을 상정한 한미일 남방 삼각동맹이 대치하는 ‘신냉전’이란 이름의 21세기 냉전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그럴 경우 그 최전선은 다시 한반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동족끼리 대치하는 남북한이 될 것이다. 신냉전이라지만 정작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는 유럽에서 냉전이 무너진 뒤에도 냉전 또는 냉전적 상황이 계속돼 왔다.
북방과 남방 삼각동맹이 대치하는 신냉전 체제에서 국지전 같은 소규모 열전이 벌어질 경우 최대 희생자는 또다시 남북한이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쇠락해 가던 일본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동서냉전 반세기 동안 소련과 함께 안정적으로 패권을 나눠 가졌던 미국은 그렇게 해서 완성될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다시 21세기 신냉전의 긴 패권적 평화를 중국과 함께 나눠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 기간 내내 한반도는 계속 분단된 채로 에너지를 소모하며 동족끼리 대리전적 열전 또는 냉전을 치르면서 왜소한 장기판의 졸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 재무장과 ‘열강’ 복귀를 돕는 미국
여기에는 재무장한 일본이 또 하나의 ‘열강’으로 부활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일본은 지난해 12월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안보관련 3문서’ 개정을 통해 ‘적기지 (선제)공격능력’을 갖게 됐고 방위비(군사비)를 지금의 GDP 대비 1% 규모에서 2027년까지 5년간 2%로 두 배로 늘리기로 확정했다. 이는 트럼프 정권 때부터 미국이 집요하게 일본 자민당 정권에 요구해 온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그것을 오히려 재무장의 기회로 활용한 일본은 동아시아판 나토체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일본은 미국 일극체제가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운 열강으로 부상할 수 있다. ‘열강’이란 제국주의 냄새가 짙은 반동적 개념이다. 최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처리에서 보듯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제국주의 군국 일본의 전쟁범죄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일본의 재무장은 새로운 일본의 탄생이 아니라 과거 군국일본으로의 회귀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한국의 일본 과거사 청산 요구를 억누르기까지 하면서 그런 일본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봉합(담합)하도록 윤석열 정부를 압박해 일본의 ‘열강’으로의 회귀를 돕고 있다.
“특별히 일본과의 외교를 위한 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에는 이런 사정들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를 그런 맥락에서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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