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입법예고 기간 끝나

이정식 “주 40시간제 안착” 노동시간 확대 사실상 접어

대선 기간과 인수위 추진해놓고 논란 일자 “오해다”

40일간 혼란만 야기…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 힘들듯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2023.4.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2023.4.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결국 혼란만 야기하고 끝나는 분위기다.

정부가 추진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17일 종료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6일 노동시간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담은 개편안을 발표하고 총 40일의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6~7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입법예고기간은 국민에 법안을 소개하고 의견 수렴하는 기간이다.

하지만 개편안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주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는 분노만 일으키고 성과 없이 사실상 ‘원안 폐기’되는 분위기다. 개편안에 대한 40일간의 분노와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정식 장관, 얼버무리며 마무리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편안의 향후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최대 법정 노동시간이) 60시간이 될지 48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실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객관적인 의견 수렴을 위해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집단면접(FGI)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1987년 당시 서울대 사회과학 연구소에서 대규모 설문조사를 한 이후 노사관계 제도에 관한 최대 규모 설문조사라고 했다.

69시간 논란을 의식한 듯 이 장관은 “실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장 좋다고 생각한 방안을 제시했는데 (국민이) 아니라고 하니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노사 모두 공감할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후 정기국회(9월)에서 이 조사를 통해 마련한 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장관의 이날 발언은 개편안을 사실상 접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시간의 확대’ 의지를 숨기지는 않았다. 이 장관은 ‘주 52시간제’라고 불리는 우리 근로시간 제도가 사실은 ‘주 40시간제’라고 설명했다. 법정 시간은 주 40시간이고, 연장 근로시간이 12시간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38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노동시간이 38시간이니 더 늘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설문조사를 통한 여론 수렴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애초 개편안 추진 전에 진행했어야 할 절차를 이제야 들고나온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장관은 “정부가 차라리 1년 근로시간을 1800시간으로 줄이겠다고 제시했으면 69시간 논란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스스로 정책 홍보 실패를 자인하기도 했다.

 

시대착오적 발상이 문제

69시간 논란은 정부의 ‘시대착오적 노동인식’에서 비롯됐다.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추세에서 우리만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를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한국행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임금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1년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16시간보다 199시간이나 길다.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연간 25일이나 더 일하는 셈이다. 연간 1349시간 일하는 독일과 비교하면 1년에 566시간(70일) 더 일한다. 이는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로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나라는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콜롬비아(1964시간), 칠레(1916시간) 등 4개국뿐이다.

우리가 혼란을 겪는 와중인 지난달 22일 칠레는 노동시간을 주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법안을 상원 의원 45명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자기 SNS에 ‘40시간제 향해 전진’이라고 언급하며 “우리는 더 나은 칠레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시간 확대 등 요소 투입을 늘리기보다 기술개발과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게 경제발전에도 더 효율적이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7달러로 OECD 회원국 38개국 중 29위다.

정부는 논란이 ‘오해’에서 빚어졌다는 입장이다. 69시간은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의 본질이 아니며, 핵심은 노동시간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대선 기간부터 노동시간 연장을 말해왔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쉬는 게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발언이 나오자 “기업 편향적” “시대착오적 노동 의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윤 후보의 발언은 주 52시간 근간을 유지하면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유연화하는 정책으로 대선 공약에도 담겼다. 당선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 활성화 방안 마련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완화 등이 국정과제에 담겼다. 노동시간 확대가 오해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지인 것이다.

개편안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통상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사전 조사→기획→입안→시행→사후 설득과 보완’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런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고용부가 느닷없이 개편안을 제시하고 논란이 일자 설문조사 등을 통해 여론을 듣겠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가 대통령의 뜻을 ‘잘못 해석’하고 발표했다면 공보 기능의 심각한 문제다.

이후에도 정부 내 혼란이 이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에 대해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69시간’ 혼란과 무능의 책임은 이정식 장관이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내달 10일 취임 1주년을 즈음한 개각에서 이 장관이 교체 대상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최근 문화일보에 따르면 여당에서 이 장관에 대한 교체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으며, 대통령실을 포함한 다른 부처에서도 “고용부와 협업이 쉽지 않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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