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부터 노동현장·집회서 민중가요 불러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무대 잊히지 않아"
"분통 터지는 국민들에게 위로 되고 싶어"
정식개국 '촛불행동 TV' 대표 맡아 새 도전
노래패 '우리나라'의 '촛불의 노래'(백자 글, 곡). 2023.4.18. 출처 가수 백자tv
"무너진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자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우리들의 힘으로 바로 세우자
촛불의 노래 항쟁의 노래 부르면서"
촛불 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촛불의 노래'의 노랫말 일부다.
촛불승리전환행동(이하 촛불행동)의 상징과도 같은 이 노래는 노래패 '우리나라' 멤버인 가수 백자(본명 백재길)가 직접 쓰고 노랫말을 붙였다. 지난해 11월 낸 '우리나라'의 <촛불의 노래> 앨범에 수록된 노래이기도 하다. '촛불의 노래' 외에도 '꺼져라' '퇴퇴퇴쏭' '촛불 행진곡' 등 촛불 대행진에서 듣는 행진 노래 상당수를 백자가 직접 쓰고 노랫말을 붙였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지난 14일 촛불행동 결성 1주년을 앞두고, '촛불의 노래' 주인공이자 민중가요 싱어송라이터인 가수 백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주 촛불 대행진이 열리는 서울지하철 시청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백자는 인터뷰 날에도 뒤로는 기타를, 앞으로는 가방을 메고 카페 계단을 올라왔다. 인터뷰를 마친 뒤 저녁에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 열리는 '추모 문화제'에서 공연하기 위해서다.
4·16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둔 백자에게 '4월'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그에게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이냐'고 묻자, '나무'라는 곡을 부른다고 말했다. 백자의 솔로 곡인 '나무'는 단원고 2학년 학생 신호성 군의 '나무'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이 나무를 베어 넘기려는 나무꾼은 누구인가, 그것을 말리지 않는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노랫말은 희생된 신호성 군의 살아 생전 인생의 질문을 담은 듯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9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 이태원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백자에게 '4월'은 민중가요의 시작점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민중가요에 대한 열망이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 때다. 시 쓰기를 좋아했던 백자는 "친구 중에 곡을 좀 쓰는 재주가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시를 써주면 친구가 곡을 썼다. 기분도 좋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고3 때 전교조가 창립되면서 민중가요를 깊이 접하게 된다.
"저희들은 89년 전교조 참교육 1세대에요. 고3 때 전교조 운동을 했어요. 그때는 친구들이 저보다 운동 성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운동의 일환으로 민중가요 테이프를 뿌렸는데, 그걸 몇 개 듣고 엄청 충격적이었죠. 그게 지금까지 저를 끌고 오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당시에 들은 4·19 혁명을 기리는 노래 '사월 그 가슴 위로'가 어린 그의 가슴에 강하게 남았다. 그는 '사월 그 가슴 위로'의 가사를 잠깐 읊으며 "이제까지 들었던 대중 음악하고는 너무 다르게 서사가 있고 굉장히 철학적이고 울림이 크고 장엄한 느낌이 잊히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뒤 백자는 대학에 입학해서 형으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본격적으로 시에 노래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외대 1학년 새내기 시절, 풍물패와 노래패를 하며 가수로서 실력을 키워 나갔다.
예명인 백자도 풍물패 활동 당시 만들어졌다. 친구들이 백 씨라서 '백자'라고 불렀고, 그 뒤부터 백자가 됐다고 한다. 민중과 호흡하며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걸맞은 '사회적 이름'처럼 다가왔다. 가족조차도 그를 백자라고 부른다. "아들에게 아빠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면 백자라고 말해요.(웃음)"
백자의 가수 생활은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쓴 작곡가 김현성 씨와의 인연으로 1997년 '혜화동 푸른섬'에서 활동하게 됐다. 하지만 포크 음악 모임에서 활동하면서도 민중가요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타나 작곡을 민중가요로 배웠기 때문에 민중가요가 어떤 저의 본류이고 뿌리죠. 혜화동 푸른섬에서 포크적인 감성이랄지 이런 걸 배웠지만, 민중가요를 하고 싶은 갈증이 계속 있었죠. 그래서 혼자 기타 들고 집회에 가서 뒤에서 멀거니 쳐다보다가 가고 그랬었죠."
민중가요에 대한 갈증은 1999년 노래패 '우리나라'를 창단하면서 풀렸다. 2000년대 초반, 그는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면서 노동현장, 집회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다.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와 같은 곡도 이 시기에 썼다. 2002년엔 북한에서, 2007년엔 일본 우리학교(재일조선인학교) 학생들을 위해서도 공연을 했다.
2009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노래패 '우리나라'의 멤버로 무대에 올라 '다시 광화문에서'라는 노래를 부르며 대중에게 크게 각인됐다. 노 전 대통령의 노제는 민중가요 가수인 그가 가장 잊지 못하는 무대 중 하나다.
"노제 공연을 올라갔는데 정말 수없이 많은 인파들이 몰려서 발 디딜 틈 없는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 운구가 시청역으로 들어오는게 늦어지면서 갑자기 노래를 메꿔야만 했어요. 빈 타임에 저희가 부른 게 저희 노래 '다시 광화문에서'였죠."
"노제가 끝나고 운구가 서울역으로 나갈 때 안치환 선배님이랑 같이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거에요.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데 지금도 그 장면은 잊히지 않아요. 한 나라의 대통령의 운구가 멀어져 갈 때 민중과 '그날이 오면'을 부른다는 게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민중들의 염원, 회한 등이 다 담겨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활동과 별개로 솔로 활동도 활발히 전개했다. 2010년 1집 <가로등을 보다> 2013년 2집 <서성이네> 2016년 3집 <화양연화> 정규 앨범을 냈다. 2009년 임일진 감독의 영화 '벽'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을 모아 <걸음의 이유>라는 소품집을, 2012년엔 미니 앨범 <담쟁이>을 발매하기도 했다. 개인 콘서트도 여러 차례 가졌다.
촛불 가수에서 촛불행동TV 대표로
그가 촛불행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21년 검언개혁 촛불행동 무대에 오르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를 신랄하게 풍자한 '나이스 쥴리'라는 곡으로 고초를 겪을 때이기도 하다. 이후 검언개혁 촛불행동은 지난해 8월 1차 촛불 대행진으로 발전했고, 그 역시 촛불이 있는 곳이라면 지방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촛불의 노래> 앨범 작업은 촛불대행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지난해 시작됐다. 촛불 노래 답게 시민들의 펀딩을 받았다. "작년에 촛불이 막 불이 붙기 시작했잖아요. 가을이 되면서 저희가 이게 좀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해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음반을 하나 내자고 해서 기획을 하게 됐어요."
<촛불의 노래> 앨범은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촛불 대행진을 통해 많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주변에서 앨범을 다시 팔라는 이야기도 듣는다고 한다. 그는 "(거리에) 나가서 좀 팔아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며 수줍어 했다.
그는 당분간 더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유튜브 활동 경험을 살려 19일 정식 개국하는 <촛불행동 TV>의 대표를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도울 수 있는 만큼 돕겠다"며 선뜻 나섰지만 수십, 수백만의 시민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숱하게 무대에 오른 가수임에도 책임감이 남다르다고 한다.
그는 가수지만 유튜버로서도 나름 성공을 거뒀다. 코로나로 공연이 어려웠던 2020년 이후 유튜브 채널 <가수 백자TV>를 운영하며 풍자곡을 수백곡 창작했다. 구독자 5만명만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던 유튜브는 구독자가 거의 15만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유튜브에서 부른 풍자곡 100여 곡을 담은 <풍자쏭 usb> 앨범도 냈다.
그가 구상하는 <촛불행동 TV> 유튜브 콘텐츠는 촛불 시민들과 함께 하는 것들이다. "촛불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려드리는 '전지적 촛불 시점(방영 중)'뿐만 아니라 이호 사진작가와 촛불 사진 이야기도 하고, 이태원 참사 당시 대형 펼침막을 내건 건물주 등 촛불 스타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질까 한다"고 전했다. 촛불행동 상임대표인 김민웅 교수의 대담 코너,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의 친일 청산 이야기 등도 준비 중이다.
촛불행동 1년을 맞아 가수라는 직함 외에 또 다른 일을 맡게 됐지만, 그는 촛불 무대에 오르는 것이 본분이라고 말한다.
"촛불 공연은 무대에 서서 보면 정말 너무 멋있어요. 무대에 서는 가수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걸 텐데 시민들이 파도를 타면 가슴이 일렁거려요. 뭔가 마그마 같은 느낌이 들어요. 특히 무대에서 함성과 함께 밀려오는 그런 감동은 박근혜 탄핵 촛불 때 정말 너무 크게 많이 느꼈죠."
특히 2023년의 촛불 무대는 그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무대를 통해 '사회적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고 한다.
"지금 촛불의 감동은 공연이 끝나고 나서 느껴요. 매주 나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지켜보시다가 응원도 해주시고, 고생했다고 해주시고, 이번 주는 살이 좀 빠졌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실 때 이게 완전 가족이구나 생각을 하게 되죠. 예전에는 촛불과 나 이렇게 (분리해서) 느꼈다면 이제는 촛불 가족 같은 일체감이 있어요."
그가 가수로서 앞으로 촛불 대행진 무대에서 노래를 통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시민들에 대한 '위로'다.
그는 "저 자신도 참기 어려운데 풍자송을 부르며 스스로 위로 받는다. 분통 터지는 시민들에게도 이런 노래로 위로를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며 "노래를 같이 부르다 보면 뭔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을 느끼게 해드릴 수 있다면 작곡가로서는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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