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 주장 뒷받침하는 데 필요할 때만 불러내
지하철 혼잡 같은 과밀이 사고 원인인 것처럼 호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지면에서 펼쳐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잔혹극’이 집요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기는커녕 사고 원인을 호도하고 유족들을 불온시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는 이태원 참사를 악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필요할 때만 이태원 참사를 끌어들이면서 희생자와 유족들,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더욱 깊이 파이게 하고 있다.
13일자 조선일보는 1면 머릿기사로 "숨이 막혀요"…매일이 '핼러윈 그날' 같은 김포골드라인“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전전날인 11일에 김포도시철도 김포공항역에서 10대 여고생과 30대 직장인이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일을 계기로 이 지하철 노선의 혼잡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하철의 혼잡과 과밀을 이태원 참사와 연결해 마치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인파와 과밀에 있었던 것처럼 논지를 전개한다.
이태원 참사가 아닌 핼러윈 사고?
이 기사의 제목의 ‘핼러윈 그날’이라는 제목부터 이태원 참사가 핼러윈 축제 때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뿐만 아니라 이태원 사고 이후 ‘이태원 참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대신 한사코 ‘핼러윈 참사’를 고수하고 있다. 사고 원인이 핼러윈 축제일의 혼잡 때문이라고 규정하려는 명명이다. 명명(命名)에서부터 이태원 참사의 성격과 원인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생활 속 인파 사고 위험은 여전하다”고 쓰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늘 일어날 수 있는 생활 속의 인파 밀집에 따른 사고라는 논리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이 신문이 이태원 참사를 거론하는 것은 이같이 이태원 참사를 활용할 때다. 이태원 참사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다.
김포골드라인의 혼잡이 심각한 것은 분명 풀어야 할 문제다. 이 노선을 이용하는 출퇴근길 승객은 하루 평균 280명으로, 최다 수송 인원의 2배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지하철의 과밀 문제는 그것대로 대책을 찾고 풀 문제다. 이태원 참사를 지하철의 수용능력 과포화 문제와 연결 짓는 것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왜곡일 뿐만 아니라 김포골드라인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는 길도 아니다.
‘핼러윈 참사’라는 용어를 쓰는 것의 타당성에 대해 차치하더라도 ‘핼러윈 그날’ 이라는 말은 매우 조심스럽게 써야 할 말이 돼 있다. 그러나 조선이 이처럼 자신의 필요에 따라 불러내 활용하는 식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2015년 초 세월호 300일을 며칠 앞둔 날에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박근혜 씨는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썼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재난 전문가들만 아는 용어였을 뿐이나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국민들에게 거의 범용어가 돼 있는 '골든타임'이란 말이었지만 세월호의 아픈 기억과 겹치는 그 말에는 본래의 그 말의 뜻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부여돼 있었다. 누구보다 그 참사에 큰 책임을 느끼고 통감해야 했던 대통령의 입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세월호에서 300여 명의 목숨, 특히 어린 생명들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비통함을 눈물로 표했던 대통령으로선 그 말을 고통 없이, 참담함 없이, 처절한 자책 없이는 쓸 수 없었던 말이다. 그러나 당시 박 씨의 말에서 그 같은 고통과 자책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진상규명 특별법 왜 발의돼야 했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조선일보의 13일 보도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조선의 보도는 전날인 12일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다음 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것을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안전 대책은 없고, 분노와 정치만 남았다”면서 “특조위 역시 총선을 앞두고 정권 비판 소재로 참사를 활용하려는 야당의 정치적 목적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신문은 나아가 이를 2014년 발생 이후 8년간 정치적 고비마다 진상 조사와 수사를 반복했던 세월호 참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개탄하듯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지하철 과밀 기사의 애초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논지다.
이태원 참사 조사가 거듭 필요하고 특별법이 나오게 됐는가에 대해 조선일보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관의 자료제출 거부 등 비협조와 훼방, 의도적인 지연으로 인해 조사 활동은 내내 겉돌았다. 그것이 이 신문이 쓴 대로 55일간 실시한 국회 국정조사를 종료한 지 석 달 만에 특별법 발의가 나오게 된 이유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가 사고 발생 9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필요한 이유와 같은 것이다.
조선일보는 “핼러윈 참사 이후 6개월간 변한 게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못하도록 한 건 과연 누구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이는 윤석열 정부와 함께 누구보다 조선일보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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