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각층 희생자 추모·기억 행사 줄이어 열려
어머니들 그림 전시…유니나 교사 추모 문화제
세월호 이은 이태원 참사 "윤 정부 반인륜 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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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월이다. 다시 16일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 9주년이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참으로 잔인한 4월이다. 그러나 그 잔인한 4월은 ‘죽은 땅이 라일락을 피워 올리고, 잠든 뿌리가 봄비에 뒤척이는’ 계절이기도 하다. 또한 4월은 그 시인의 또다른 시구 ‘달력에서 죽은 어제들’을 호출해 기억해야 하는 계절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시민단체, 종교계 등도 연대를 외치며 함께하고 있다.
단원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 <장기자랑> 영화 함께 보고 간담회도
11일 저녁 7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 80여 명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세월호 가족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을 영화로 만든 <장기자랑>을 함께 보고 이야기도 나눴다.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이 재능을 뽐낼 준비를 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 5일 개봉했다.
행사가 끝나자 이들은 노래 ‘잊지 않을게’를 불렀다. 책갈피에 글을 적어 ‘소원 나무’에 걸기도 했다.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 협동조합인 시나브로가 주축이 돼 기획한 조촐한 행사였다.
4·16재단은 오는 17일까지 온라인 추모캠페인 ‘#기억은힘이세지’를 진행한다. 재단은 이 캠페인에 대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이 안전해지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동참을 원하는 시민들은 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문구를 작성,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면 된다. 지난해 캠페인에는 4400여 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그 수가 크게 늘어났다.
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 9주기 시민대회를 열고 “국가폭력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 “사참위 권고 이행하고 책임 있는 후속조치 이행하라”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혐오모독과 2차 가해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삼각지역, 서울역 등을 행진한 뒤 세월호 기억관이 마련된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끝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개월 전 법원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향한 국가의 2차 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면서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반인륜적인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경남 진주에서는 고 유니나 교사를 추모하는 추념식과 문화제가 열린다. 세월호진실찾기진주시민의모임(세진모)과 비정규교수노조 경상국립대분회와 함께 14일 오전 11시 경상국립대 사범대 뒷마당 추모비 앞에서 추모 행사를 갖는다.
다음날인 15일 오후에는 세월호 침몰 날짜를 가리키는 4시 16분에 진주 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대안동 차없는거리 풋마트 사거리(우천시 진주교육지원청 2층)에서 추모문화제를 연다.
추모제에서는 황윤희 연극배우가 추모시를 낭송한다. 진주작은학교연대 초등학생들이 노래·율동을 선보인다. 손송희 가수와 노래패 맥박이 추모곡을 부른다.
고 유니나 교사는 경상국립대 일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2011년 3월 단원고 교사로 부임했다. 유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시 제자 19명을 구한 뒤 실종됐다. 유 교사는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다.
‘기억과 연대를 위한 평화 걷기’ 행사
5‧18기념재단과 광주 지역 교원단체(전교조 광주지부·광주교사노조·광주실천교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오는 15일 오전 9~11시 광주시 일원에서 ‘기억과 연대를 위한 평화 걷기’를 행사를 갖는다.
지역의 역사기념 공간을 지나는 길을 걸으며 ‘4‧16 세월호 9주기’ ‘5‧18민주화운동 43주년’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등에 대해 알아보고 의미를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한 행사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코스는 2개다. 1코스는 오전 9시 광주시청 앞 평화의 소녀상에 모여 광주천변을 따라 양동시장까지 걷는 동선으로 짰다. 2코스는 오전 10시 옛 전남도청을 출발, 금남공원 평화의 소녀상을 지나 양동시장까지 걷는 동선이다.
참가 시민들은 오전 11시 양동시장 인근에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서산태안시민행동은 16일 정오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서산 호수공원에서 ‘참사 9주기 존엄과 안전을 위한 시민행동, 기억, 약속, 책임’ 행사를 개최한다. 추모제에는 민주노총 서산태안위원회, 서산뿌리시민연대, 전교조 서산지회 등 12개 시민단체가 참여한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기억 리본을 만들 수 있는 공방이 준비돼 있다. 공방에서 만든 리본은 서산지역 청소년들에게 달아줄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기억도서관도 연다.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시간도 갖는다.
신현웅 서산태안비정규직지원센터장은 “국가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하지만 아직도 (이태원 등) 곳곳에서 재난과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 생명 지킬 수 없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나”
민주노총경남본부·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등으로 구성된 세월호참사추모경남공동행동은 11일 경상남도교육연수원 ‘기억의 벽’ 앞에 모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없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물으며 “세월호 참사와 국가폭력 피해 추모, 생명안전 사회 건설을 위한 약속과 다짐을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304명의 죽음 앞에 국가는 무능과 무책임한 상태”라며 “특별법에 따라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활동했으나 국가권력은 이들 조사를 방해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발생한 국가범죄에 대해 대통령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 “대통령과 정부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권고를 이행하고 책임 있는 후속 조치 보장하라” “세월호 참사 관련 국가의 잘못과 폭력에 대한 추가 조사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발언에 나선 조형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지난 9년 동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세월호 진실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다”며 특히 “윤석열 정부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까지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인 지난해 10월 29일 또 다른 비극(이태원 참사)이 있었지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정부는 진실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감추려고 한다”며 “우리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과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진실의 동아줄을 끊어버리거나 낡게 하려는 행위들이 계속되는 것 같다”며 “내년 10주기에는 무엇이든 진실의 동아줄이 하나라도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경남공동행동은 이번 주 각 지역을 돌며 ‘세월호 9주기 진상규명 촉구 선전전’을 벌인다. 특히 15일에는 창원 한서빌딩 앞 광장에서 ‘4·16 세월호 9주기 추모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어머니들이 가슴으로 그린 '그림 전시회'
종교계도 나섰다. 수원교구 생명센터는 이달 말까지 안산4·16민주시민교육원 미래희망관 1층에서 ‘자유여행’ 유화 전시회를 연다. 김제훈(안토니오) 군의 어머니 이지연(비비안나) 씨, 문지성 양의 어머니 안명미 씨 등 단원고 희생자 어머니 10여 명이 그린 유화 32점이 전시 벽에 걸렸다. 어머니들이 그린 그림에는 먼저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자식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유가족들은 심리치료 일환으로 아픔을 잊으려 지난 2016년부터 7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갤러리에서 정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명센터 원장 조원기(베드로) 신부는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녀의 엄마로 불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냉담하거나 오히려 비난까지 하는 사람들에 대해 “유가족들 옆에서 그들의 아픔을 느껴 보았는지 묻게 된다”며 “유가족들은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원가톨릭대의 학생들과 사제들은 15일 아침 봉헌 미사에서 ‘세월호 기억식’을 갖는다. 학교 내 하상관에 부스를 설치해 세월호를 기억하는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이 대학 학생처장 정진만(안젤로) 신부는 “아직도 참사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고 책임 소재도 밝혀지지 않은 만큼 세월호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이 살아 있다면 수원가톨릭대 신학생들에게 동년배나 형뻘 되는 나이여서 신학생들도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기 원한다”고 말했다.
춘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권오준 베네딕토 루치아노 신부)는 12일 춘천 소양로성당에서 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 주례로 세월호 9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위원회 총무 신정호(모세) 신부는 미사 강론을 통해 “충격적인 세월호 대참사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반성도 부족했던 탓에 10·29 참사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하성용 유스티노 신부),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위원장 양성일 시메온 신부),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위원장 최재영 요한 세례자 신부) 등은 공동으로 16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이태원희생자분향소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세월호 ‘제주 생존자들’의 그림 전시회도
제주 지역 세월호 생존자들의 전시회 ‘같이 걷는 봄’이 15~20일 제주문예회관 제3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생존자들이 직접 창작한 그림, 도자기, 사진 작품 등 37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주최측 제주세월호피해상담소 강지언 소장은 “9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생존자들에게 시민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는 경험들은 당사자의 트라우마 회복에 도움이 되는 만큼 전시회장을 찾아 격려와 위로를 전하길 바란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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