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해라" "지긋지긋" "시체팔이" 악독한 공격들

미국 실화 '틸'이 보여주는 유가족의 처절한 투쟁

참사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사랑, 용기의 위대함

세월호‧이태원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에 연대해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관련 탄핵 재판이 시작되는 4일 오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이상민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2023.4.4,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관련 탄핵 재판이 시작되는 4일 오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이상민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2023.4.4, 연합뉴스

4월 5일은 15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10.29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159일이 되는 날이다. 그날 시청 분향소 앞에서는 시민추모대회가 있을 것이고, 추모대회를 앞두고 유가족들은 '10.29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기구 설치와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을 받고 있다.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인 것이 세월호 참사 9주기도 있는 달이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9주기를 앞두고 함께 기억하자고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려는 사람들도 많지만, 동시에 유가족들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시체팔이 그만해라'는 등의 독기 어린 막말들도 듣게 된다.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언론과 극우유튜브 등이 그런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최근 개봉한 <틸>은 이런 사회적 참사 속에 유가족들의 고통과 투쟁에 대해 말한다. 영화는 1955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에서 일어난 흑인소년 에밋 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인종적 폭력이 특별히 끔찍했던 지역에 친척을 만나러 간 14살 소년이, 백인여성인 가게 주인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잡혀가 구타와 고문 끝에 살해당한다.

그것은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변곡점이 되어 역사에 남은 사건과 운동으로 발전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영화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에밋의 어머니가 장례식을 치르면서 관뚜껑을 열어두고 시신을 공개한 것이었다. 에밋은 구타와 고문 끝에 두개골이 터지고 눈알이 뽑혀진 데다가 강물에 처박혀 두세 배나 퉁퉁 불어진 처참한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차마 직접 눈뜨고 쳐다보기 어려운 그 시신을 에밋의 어머니 메이미는 모든 사람 앞에 공개했다. '내 아들에게 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가 직접 봐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 특히 흑인들이 분노하며 인종차별과 증오범죄에 맞서 일어서도록 만들었다. 물론 인종주의자들과 일부 백인들은 '잔인하고 역겨운 쇼'라고 메이미를 비난했다.

그런 끔찍한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진상을 공개하고 폭로한 사람을 비난했다. 잔인하고 역겨운 것은 에밋의 시신도, 에밋의 시신을 공개한 메이미도 아니고 에밋을 그렇게 만든 행위이지만 본말은 뒤집혔다. 그리고 당시의 미국 주류사회와 언론은 남편이 군대에서 죽은 후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있던 메이미의 행실과 평판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영화 '틸' 스틸컷
영화 '틸' 스틸컷

이 모든 것은 <민들레> 같은 언론사가 참사 희생자의 이름만 공개해도 '패륜 행위'라고 공격하고, 잊지 말고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을 '시체팔이'라고 매도하던 한국사회의 일부 집단들에게는 별로 낯설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그런 시각과 논리에 따르면 메이미의 행위는 '시체팔이'의 정점을 보여준 셈일 테니 말이다.

또 지금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희생자들에게 '놀러 가서 마약하다가 죽었다'는 누명을 씌우려고 하듯이, 당시 미국의 인종주의 권력자들은 14살 소년 에밋이 가게 여주인을 성추행했다는 누명을 씌웠다. 지금 한국의 경찰과 검찰이 이태원 참사의 주범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수사도 없이 면죄부를 주고 있듯이, 당시 미국의 법원과 배심원들은 에밋을 납치하고 살해한 범죄자들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의 경찰과 검찰은 이태원 참사에 이러저러한 공동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고, 당시 에밋을 살해한 범죄자들에게 무죄를 내린 배심원들은 전부 다 인종차별 체제를 지지하는 백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죄 판결만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흐르는 자막은 더욱 큰 절망적 현실을 일깨운다.

에밋을 죽인 살인자들은 나중에 잡지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살인 범죄를 실토하기도 했지만, 그 후에도 끝내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무고한 흑인들은 그 후에도 계속 인종주의적 혐오와 폭력의 희생자가 됐다. 그럼에도 메이미의 용기와 투쟁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메이미는 죽을 때까지 흑인들의 권리와 해방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그 투쟁은 1957년 시민권리법령 제정에 디딤돌이 됐고 거대한 흑인인권운동의 불을 지폈고, 무엇보다 에밋이 사망한 후 67년이 지난 2022년에 '에밋 틸 린치금지 법안'이 통과되는 결실을 맺었다. 에밋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잊지 않았던 메이미의 오랜 투쟁이 낳은 결과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9년 동안 싸우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159일 동안 싸워 온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모아서, 이들의 사랑과 투쟁이 에밋과 메이미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는 않게 해야 한다.

 

※ 159일 시민추모대회 추진위원에 가입해주세요. (납부시 자동가입)

- 카카오뱅크 7979-73-98201(예금주 심규협 /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모임통장)

※  159일 시민추모대회 : 4월 5일(수) 오후 7시, 시청 분향소(시청역 5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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