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련 현안 있을 때마다 견제, 때로는 배제
북핵과 한반도 전쟁위기 책임 한미 양국 지목
"북한 비핵화 화답 거부, 대북 압박 강화가 주 원인"
쿼드 참여, 한·미·일 군사협력 가속화 윤 정부 비판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프놈펜 한‧중 정상회담 때만 해도,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반중국 행보에 불만은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자고 설득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시진핑 국가주석의 3번째 연임 성공과 3기 정부 출범을 전후로 해서 자세가 싹 바뀐 모습이다. 오래전에 마음이 떠난 듯한 윤 정부를 두고 애써 설득하기보단 사안이 있을 때마다 보란 듯이 견제하거나 비판한다. 때론 아예 배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속내를 엿볼만한 상징적 행사가 있었다. 지난 7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친강 신임 중국 외교부장의 첫 내외신 기자회견이다. 중국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은 해마다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한 번 열리는 탓에, 그해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중국 외교부장 회견서 '단골 메뉴 한반도' 배제
이날 회견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남북한 등 한반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친 부장의 모두 발언에도 없었고 한국 특파원들에게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반면 그는 미국과 일본, 러시아, 파키스탄 기자의 질문을 받고 시진핑 3기 정권의 외교 기조를 설명했다. 예년에는 북핵이나 한중 관계 관련 질문이 단골 메뉴였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202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왕이 전 외교부장의 오후 일정 탓에 회견이 앞당겨 끝난 사정이 있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때 외에 최근 몇 년간 외교부장 회견에서 한반도 이슈가 빠진 적은 없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9년 2월에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이어 두 번째로 연합뉴스 특파원을 지목했을 만큼 한국에 신경을 썼다. 작년에도 왕이는 한중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한중 양국은 경쟁자가 아니라 잠재력이 거대한 협력 파트너"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였다.
정색하고 한국을 배제한 사례도 있다. 중국이 자국민 국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 명단을 발표하면서 유독 한국을 빼놓은 것이다. 중국 문화관광부는 지난달 6일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20개국의 여행사는 중국민을 상대로 단체 여행상품을 판매하도록 허가했다. 지난 10일에 프랑스와 브라질, 짐바브웨 등 40개국을 추가했으나 지리적으로 이웃인 한국은 또 제외했다.
'친미·친일·반중' 윤석열 행보에 불만 표출
작년 5월 윤 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싸늘해지는 한‧중 관계를 반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경제와 군사 등 전방위로 중국 포위망 구축에 주력하는 미국과 일본의 '품'에 안겨 행동대원 역할을 자임하는 듯한 윤 정부의 행보에 대한 불만이 저변에 흐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출범 직후 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서울, 2022년 5월 21일)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마드리드, 6월 29일)를 계기로 '탈(脫) 중국'과 함께 중국 포위망 구축을 위한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을 선언함으로써 '반(反) 중국'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역대 정부는 한미동맹과 균형 외교를 기본 축으로 삼고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윤 정부는 '가치 외교'를 내걸고 완전히 벗어 던진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끼리 힘을 합쳐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겠다고 하지만, 방점은 '중국 죽이기' 가담에 찍혀 있다.
윤 정부의 친미‧친일‧반중 노선은 작년 11월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연대'로 나타났고, 12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더욱 구체화 됐다.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용인한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강제동원(징용) 피해배상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에 면죄부를 준 '제3자 변제안' 강행을 통해 더욱 뚜렷한 모양을 갖추게 됐다. 이로써 중국 포위망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할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한 발걸음은 더 빨라지게 됐다.
윤 정부, 불필요한 대만 문제 개입…중국 자극
문제는 윤 정부가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왔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달 22일 보도된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방송 인터뷰다. 여기서 박 장관은 한국의 안보상 도전은 한반도를 넘어 남쪽으로 1000마일(약 1600㎞) 떨어진 대만 해협까지 걸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극히 중요하며'(essential)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고 역설했다. 대만이 위협받으면 한반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아가 한국군의 직접 개입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작년 12월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거의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점에서 무심코 또는 실수로 던진 말로 보기는 어렵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무력 사용 불사를 경고할 만큼 '영토 주권'에 관련된 타협 불가한 사안으로 여긴다. 중국 당국의 공식 비판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부용치훼'(不容置喙)라는 비외교적 표현을 써가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다른 사람의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거칠게 반발했다.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다. 우리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훈수'를 뒀다가 괜한 핀잔만 들을 셈이다.
미국 전략자산 서해 전개 '일상화'…중국 압박 강화
또한 한미 양국은 잇단 연합훈련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이 1차적 명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도 압박하는 '일석이조'(돌 하나로 새 두 마리)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 전략자산의 '서해 전개'다.
한미는 올해 들어 2월 1일, 3일, 19일과 3월 6일 네 차례 연합 공중훈련을 벌였다. 미국에선 이른바 '죽음의 백조'인 B-1B와 현존 최강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 F-35B, 그리고 핵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폭격기 B-52H 등이 참가했다.
그런데 훈련 장소를 바꿨다. 그동안 동해 상공에서 해왔으나, 올해 연합 공중훈련 4번 모두 서해 상공에서 진행했고 훈련 사실도 바로 공개했다. 중국을 의식하던 자세에서 되레 중국을 자극하고 압박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미는 또한 '실제 전쟁상황'을 상정한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라는 역대급 연합연습을 진행 중이다. 16일로 나흘째다. 북한 지도부 제거와 북한 점령 시나리오도 포함된 20여 개 연합야외기동훈련(FTX)이 실시되고, 이달 말에는 핵추진 항공모함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더불어 한‧미‧일 3국의 미사일 경보훈련도 예정돼 있다.
북한도 연일 전략순항미사일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을 발사하며 "공세적으로 활용할 중대한 실천적 조치"(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결정)를 경고하고 나서 한반도는 언제 무력 충돌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도쿄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된 16일에도 장거리탄도미사일을 쐈다.
중국, 북핵·한반도 전쟁위기 책임 한·미에 돌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의 14일 정례 브리핑에서였다. 한미 연합연습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고 특히 한반도 정세의 악화 책임을 한국과 미국에 돌리고 북한을 감쌌다.
왕 대변인은 "한반도 정세가 오늘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얽힌 문제는 명확하다"라며 "관련국이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한 데 대한 화답을 거부하고 오히려 대북 압박과 위협을 강화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련 당사자들은 모두 자제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해야 하며, 그 반대의 일을 해선 안 된다"라고 촉구했다.
한반도 상황을 줄곧 관망하면서 필요할 경우 양비론을 펴던 종전의 태도와는 달라졌다.
또한 외교부 대변인의 입장 발표 날짜도 눈에 띈다. 연합연습 돌입 바로 다음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 정부 입장이 정리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과 국가, 군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출범한 시진핑 주석의 3기 정권이 향후 윤 정부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엿볼 단서를 제공한다. 윤 정부의 행보에 할 말이 있어도 삭이던 방식에서 할 말도 하고 필요할 경우 상응하는 행동도 취하는 방식으로 바뀔 공산이 커 보인다.
중국, 윤 정부 백기투항 '조롱'…한미일 동맹 '비판'
중국은 최근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의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왔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하는 외교부 대변인은 물론 관영매체와 관변 학자를 총동원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한 '3국 연대'가 한국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 주도의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협의체) 실무그룹에 대한 윤 정부의 참여 방침을 경고하고 나섰다.
마오닝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쿼드를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으로 지칭한 뒤 "우리는 관련 국가가 대립을 조장하지 말기를 희망한다"라고 했고, 9일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윤 정부가 미국 열차에 자신을 더 단단히 묶음으로써 정치적 독립성을 잃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의 한반도 전문가 뤼차오도 한·미·일 3자 군사동맹의 길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매우 위험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조롱성 비판'도 있었다.
글로벌타임스는 8일 "친미파로 평가받는 윤석열 정부가 취임 이후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 때문"이라며 "이는 한국 국민을 실망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익을 해치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신경보도 "한국이 강제동원 배상 문제 해법을 제시한 뒤 한·일은 군사 분야 협력 강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이는 물론 미국이 원하는 바로, 반드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가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또한 지난 2일 글로벌타임스는 3‧1절을 "한국민의 용감하고 불굴의 저항정신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언급한 다음 "그날에 일본을 향해 그렇게 아첨하는 말을 한 한국 대통령은 흔치 않다"라고 조롱했다. 신문은 "분석가들에 따르면 그 연설은 외교정책에서 윤 정부가 최면에 빠져 몽유병 상태에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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