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차 촛불 대행진…윤석열 3·1절 기념사 집중 규탄

시민들 "대통령이 할 말이냐…분노해서 집회 나와"

윤석열 합성된 '욱일기' 발로 밟고 딱지치기 하기도

안중근 혈서 태극기 앞장 세우고 일본대사관 앞 행진

"강제동원 사과하라" "한반도 재침략 꿈도 꾸지 마라"

경찰, 노골적인 촛불대행진 방해…극우단체는 보호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대형 혈서 태극기가 행진 대열의 가장 앞에 펼쳐졌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대형 혈서 태극기가 행진 대열의 가장 앞에 펼쳐졌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일본의 군국주의 움직임을 두둔한 듯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분노한 촛불 시민들이 4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만세 삼창을 외쳤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절규에 가까운 함성이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을 '친일 매국노', '제2의 이완용' 등으로 규정하고 퇴진을 요구했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서 숭례문 앞까지 구간에서 '29차 촛불대행진' 본집회를 열었다. 오후 6시 기준 4만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참가했으며, 온라인에서도 1만 9000명이 집회를 지켜봤다.

"윤석열, 제2의 이완용…친일 매국노 끌어내야"

이날 집회는  3·1절 뒤 처음 열리는 만큼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규탄에 집중됐다. 본집회장 입구엔 '초특급 친일 매국노 윤석열을 몰아내자'고 쓴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입구 바닥에는 윤 대통령이 합성된 욱일기가 붙어있었다. 시민들은 그 위를 발로 밟고 지나갔다. 윤 대통령과 욱일기가 그려진 '딱지'를 바닥에 내치는 행사도 열렸다. 곳곳에서 태극기도 눈에 띄었다.

집회에서 만난 시민들도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선희(47) 씨는 "대통령이 입으로 절대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며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세종시 아파트 일장기 사건에 대해서도 "아무리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말해도 일장기 내건 것은 잘못"이라며 "독립운동가를 욕되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4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서 숭례문 앞까지 구간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 본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서 숭례문 앞까지 구간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 본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2023.3.4. 사진 이호 작가

하태한(56) 씨는 "3·1절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오히려 일본의 지배 논리를 편드는 기념사에 많이 실망했다. 그 실망을 넘어 분노까지 했고, 그 분노가 집회에 나온 계기"라면서 "대통령이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걸 동조하는 일장기 사태가 났다"고 참담해 했다.

김수근(40) 씨는 "윤석열이 전부터 일본 자위대랑 같이 독도에서 훈련하고, 일본 군함식에 우리나라 군인들을 보내서 경례시키며 친일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며 "제2의 이완용이라는데 이완용을 넘어섰다"고 했다. 김 씨는 "이런 사태를 방관할 수 없다"며 "한반도를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 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한 윤미향 의원(무소속)도 집회에 참가했다. 윤 의원은 본집회장 무대에 올라 "잊을 만하면 하늘에 온갖 전쟁 무기가 날아가고, 동해에서 군함들이 전쟁 훈련을 하고, 일본의 망언이 터져나오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윤 의원은 이어 "윤 대통령은 일제 식민지 침략을 받은 게 우리 때문이라고 한다"며 "역사를 날조한 윤석열은 즉각 사죄하라"고 소리쳤다. 그는 "윤석열 3·1절 메시지를 가장 환영하며 화답한 것은 바로 일본과 미국"이라면서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우리의 주권을 실현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앞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서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앞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서 윤미향 의원(무소속)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일본 대사관 둘러싸고 "강제동원 사죄하라" 규탄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 앞을 향해 행진했다.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대형 혈서 태극기가 행진 대열의 가장 앞에 펼쳐졌다.

시민들은 "친일 매국노 윤석열을 몰아내자" "제2의 이완용 윤석열을 몰아내자" "친일잔당 국힘당을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행진했다. 시민들은 행진 중 "영업사원이라더니 나라를 팔아먹는 거냐"라거나 "일본은 우리의 협력 파트너가 아니다"라고 소리쳤다.

행진 도중에 촛불 지지 시민들이 연대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대열이 서울시청 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앞을 지날 때에는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가 거리에 나와 이들에게 조용히 응원을 보냈다.

경복궁 동십자각부터 광화문 사거리까지 늘어선 행렬은 오후 7시 20분 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잠시 멈춰 항의 집회를 가졌다.

시민들은 대사관을 향해 "일본은 강제동원 사죄하라" "윤석열을 통로로 자위대 한반도 진출을 꿈꾸지 마라" "한반도 재침략 꿈도 꾸지 마라" "독도 도발을 당장 중단하라" "한미일 전쟁동맹을 중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친 뒤, '민족 자주 독립'의 의미를 담아 함성을 질렀다.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행진 대열은 일본 대사관에서 종각, 을지로 입구, 시청광장을 지나 오후 8시 쯤 시청역 앞에서 해산했다. 이들은 "검찰독재 민주파괴 윤석열을 타도하자" "코바나컨텐츠 무혐의 김건희를 특검하라" "정순신 임명책임자 윤석열은 퇴진하라" "책임회피 무책임 정권 윤석열을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검찰독재 헛된 꿈,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

이날 집회에서는 3·1절 기념사 규탄 외에도 윤석열 정부의 검찰 독재, 정순신 사태와 인사 참사, 노조 탄압 등에 항의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촛불행동 김은진 상임공동대표는 본집회에서 "윤 정부는 국민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야당 대표 구속영장 청구뿐 아니라 노동조합, 시민사회 단체를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하고 압수수색, 체포를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 영장, 체포영장을 자판기처럼 발부해주는 사법부까지 길들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윤석열은 국민의힘도 검사 출신으로 장악하려고 자기 당 정치인까지 적으로 돌리고 있다"며 "행정·사법·입법부까지 장악해서 검찰독재 체제를 완성한다는 게 윤석열의 야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촛불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의 헛된 꿈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일보 폐간 실천단 이득우 부단장은 시민 자유발언 시간에 무대에 올라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는 윤 대통령의 황당한 3·1절 기념사 논리를 인용해 "정순신의 아들 학폭 피해자는 약해서 당했을 뿐이고 가해자 책임은 없는 거냐"고 따졌다.

이 부단장은 "정순신 아들은 어려서부터 조선일보를 봤고, 조선일보 덕에 학폭을 할 수 있었다"라고 비꼬면서 "윤석열이 꿈꾸는 것은 약육강식이 판치는 정글일 뿐이다. 이들을 하루 빨리 몰아내고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윤석열 정권으로부터 '건폭'(건설현장 조직폭력배)이라고 불리며 탄압받고 있는 건설 노동자도 무대에 올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한수 수석부위원장은 "건설노동자들은 1년에 서너 군데 건설현장을 쫓아 다니면서 일한다. 현장이 끝날 쯤 또 다른 현장을 찾아가 고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며 "그런데 경찰과 국토부장관은 고용 요구를 하지 말라고 한다"고 비판했다.

강 수석부위원장은 "온 정부 조직과 여당, 대통령까지 총동원되어 8만명 건설노조를 때려잡겠다고 한다"면서 "정권의 모든 조직을 총동원해서 건설노조를 때려잡겠다는 데, 건설노조를 때려잡지 못하면, 없애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은 문을 닫아야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경찰, 노골적으로 행진 방해…극우단체만 보호

한편 이날 촛불행동은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나는 행진을 계획했지만, 전날 경찰이 금지통고를 내리면서 경로를 대사관 건너편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촛불행동 측에 따르면 경찰은 "일본 대사관 경계 100m 이내이고 주요 도로이며, 교통체증과 대사관 기능 침해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행진을 금지했다.

그러나 경찰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소녀상 앞에선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고, 지난 3·1절에도 범국민대회가 소녀상 앞과 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경찰 논리대로면 이날 행렬이 지나간 미국 대사관 앞 구간도 금지해야 했지만, 경찰은 미 대사관 앞 행진은 허용했다. 한 시민은 "이게 경찰이냐 일제 순사냐"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18일 27차 촛불대행진(5차 전국집중촛불) 당시에도 삼각지역 인근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통고를 한 바 있다. 극우단체가 선순위라는 이유였다. 경찰은 극우단체가 삼각지역 사거리에 3만 명 집회를 신고했다고 설명했지만, 당일 극우단체는 1000명도 되지 않는 회원들을 모아 한쪽 모퉁이에서만 집회를 열었다.

 

4일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광화문 앞을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 2023.3.4. 사진 이호 작가
4일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광화문 앞을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 2023.3.4. 사진 이호 작가

아울러 경찰은 극우단체 집회를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듯한 행동도 일삼고 있다. 이날 경찰은 극우단체가 맞불집회를 연다는 이유로 촛불행동 관계자들을 숭례문 도로 건너편으로 밀어냈다. 해당 장소는 촛불행동이 선순위 신고를 한 자리다. 30여 명 안팎의 극우단체는 집회 내내 시끄러운 음악을 틀며 방해했지만 통제도 받지 않았다.

종로구 조계사 앞으로 행진을 하던 중에는 극우단체 소속으로 추정되는 남성 1명이 시민들의 얼굴을 무단으로 촬영해 사진을 삭제하라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경찰은 촛불 시민들만 막아세우고 극우단체 회원은 뒤로 숨겼다. 다행히 별다른 충돌은 없었지만, 시민들은 경찰에 "저 사람을 왜 붙잡지 않냐"고 항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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