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3·1절 기념사에 환호한 미국
일본 우파가 박수치는 건 당연하나 왜 미국이?
중국 견제용 '삼각동맹' 위해 한일 유착 압박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미국에게도 '원죄' 있어
근본적 해결 없이 삼각 안보군사 체제에만 집착
자국의 전략적 이해를 앞세운 미국이 한국에 대해 중대한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군국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한국의 국권 상실을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한국인 탓으로 돌리고, 일본을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미국 정부가 환호와 지지를 보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일본과 더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했다”면서 "미국은 한국, 일본과의 3자 협력이 21세기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미국이 왜 박수치나?
2015년의 위안부 문제 합의(12·28 합의)를 사실상 폐기하고,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확정판결을 무효화하라는 일본 정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적대시해 온 일본 자민당 우파 정부 조야가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미국이 왜 그런 자세를 취하는가?
프라이스 대변인은 지난 1월 7일 워싱턴 외신기자클럽 언론 브리핑에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한국과 일본 동맹을 하나로 묶은 삼각체제를 활성화하려 노력해 왔다”며 한미일 삼국공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내세우며 중국을 포위, 견제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기둥 가운데 하나인 한미일 안보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관계 ‘개선’ 또는 ‘정상화’라는 이름의 한일관계 ‘유착’을 압박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의 그런 노력은 늘 실패해 왔다.
12·28 합의와 그에 앞선 1990년대의 ‘아시아 여성기금’ 방식의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이 모두 실패했듯이, 같은 해결 방식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일본과 미국의 해결 방식 역시 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추구해 온 한미일 삼각 공조 또는 동맹을 위한 한일관계 유착의 전제 가운데 하나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이며, 미국은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압박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서둘러 왔다.
거듭돼 온 미국의 실패
한미일 삼국 공조 또는 사실상의 동맹체제를 위해 선행돼야 할 한일 양국간 유착을 요구해 온 것은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전하고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점령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 거듭되고 있는 미국의 실패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에 처음 도쿄의 연합국사령부(GHQ) 사무실에서 미국 주도 아래 시작된 한일협정 체결 협상도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이라는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전략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라는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그런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에 대한 한국민의 격렬한 반대 때문에 협상은 오래도록 타결되지 못했다. 협상을 시작한 지 14년만인 1965년에야 협정이 체결됐으나, 이는 1961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세력이 계엄령 등 강권을 발동해 협정 반대운동을 힘으로 억누르고서야 가능했다.
한일협정 체결 때도 일본은 동학군 학살 등 의병 ‘토벌’과 을사늑약, 한일병합과 식민지배 등 과거사가 모두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는 자세를 견지했고, 미국은 이를 용인했으며, 일본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런 기본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면서 과거사를 상기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위해 싸운 선인들의 피땀 흘린 역사를 되새기며 각오를 다져야 할 3·1운동 기념사를 일본과 미국에게 박수받을 선언서처럼 낭독했다.
초지일관 일본을 두둔해 온 미국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이 지금까지 인정한 것은 일본의 패전 이후에야 과거에 맺은 협정 및 조약들이 비로소 ‘무효’가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따른 모든 피해들은 당시(패전 이전)에는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기 때문에 사죄도 배상도 할 수 없다는 자세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한일 국교 ‘정상화’ 때 맺은 부속협정인 청구권협정에서 유무상 5억 달러의 ‘독립축하금’ ‘경제협력자금’ 명목의 돈을 주는 대신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한다는 조항(제2조)을 들어, 그런 협상 사실조차 몰랐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나 위안부 동원 피해자들 개인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간 또는 정부간 협정으로 포기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차원의 ‘외교 보호권’일 뿐 피해자 개인들의 청구권리는 그런 협정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으며, 그런 사실을 일본 외무성과 최고재판소(대법원) 등 일본 각급 법원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청구권협정 때문에 이를 재판을 통해서는 일본에 청구할 수 없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가 바로 일본의 그런 기본입장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 정부는 사실상 계속 일본 정부 입장을 두둔해 왔다. 1952년에 시작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 때부터 초지일관해 온 미국의 기본방침, 즉 과거사는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되 한국에는 이를 용인하는 대신 적당한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선에서 덮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미국식의 한일 과거사 해결방식은 지금 풀릴 전망이 없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서 보듯 매번 실패를 거듭해 왔다.
지금 그 실패를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패한 2015년 위안부 12·28합의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정부가 합의한 위안부 문제 해법이었던 이른바 ‘12·28 합의’도 비슷한 경로를 거친 뒤 결국 실패했다. 일본 정부가 낸 10억 엔 출연금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약 1억 원씩의 지원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하면서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해결임을 못박았던 12.28 합의는 피해 당사자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뤄진 정부끼리만의 합의였다. 결국 촛불시위 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그 합의는 사실상 폐기됐다.
12·28 합의가 이뤄지기 전이던 그해 2월 27일 당시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던 웬디 셔먼(지금 국무부 부장관)은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과거사를 둘러싼 한중일 3국 간의 갈등에 대한 미국 입장을 에둘러 밝히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한국과 중국인들이 2차 대전 이후 도쿄(일본)와 이른바 ‘위안부’ 문제로 다퉈 왔다. 역사교과서 내용이나 여러 바다(해역) 이름을 놓고 싸우고 있다. 모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좌절감도 안겨 준다. (중략) 물론 민족주의 감정은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나라든 정치 리더가 예전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싸구려’ 박수갈채를 받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도발은 진보가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그때 셔먼 차관은 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문제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중과 일본을 두고 원인 제공자인 일본이 아니라 한중이 과거사를 이용해 “싸구려” 박수갈채를 받으려는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다며 비판했다. 당시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은 아베 신조 정권이었고,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분쟁을 촉발한 것도 극우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 지사의 센카쿠열도 매입 선동이었다.
미국은 한일 과거사와 관련한 문제들에서 초지일관 일본의 입장을 두둔해 왔고,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 해결은 거의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늘 실패해 왔다.
2015년의 12.28 합의의 일본쪽 실무 담당자는 당시 외상이던 지금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다. 웬디 셔먼은 12.28 당시에는 이미 정무차관직에서 물러난 상태였으나 그해 2월의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설에서 보듯 12.28합의로 이어진 당시 한일유착의 실질적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웬디 셔면이 바이든 정부 출범 뒤에 다시 국무부 부장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극구 칭찬한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은 의례적으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미국은 또 실패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그런 전례로 보건대, 한미일 삼국공조 또는 동맹체제에 필수적인 한일 양국 유착을 압박하는 미국 정부의 문제 접근 방식은 또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그런 문제 해결 방식은 박정희·박근혜 정부 때처럼 한국의 보수세력 집권 때는 일견 성공한 듯 보였지만, 그 성공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한 미국식 문제 해결 방식의 문제점은 과거사 등 한일 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외면하거나 덮어두고, 표면적이고 정치적인 합의나 합의 모양새를 끌어내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문제를 만들어내고 풀 생각이 없는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약자인 피해자 한국을 압박해 합의 모양새를 만든 뒤, 그런 문제투성이의 바탕 위에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삼각 공조 또는 동맹체제의 구색을 갖추려 하는 것이다.
미국의 원죄
이는 한반도 분단, 한국을 초청도 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더 거슬러 올라가 ‘가츠라-태프트 밀약’과 3·1운동 때의 외면 등 근대 이래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친일적 경사(기울기)라는 ‘원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일 간 과거사문제는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해법은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꼭 같은 문제들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일 갈등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한일관계가 삐걱거리면서 한미일 삼각공조 또는 동맹체제 또한 삐걱거리게 될 것이다. 미국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것이 ‘실수’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은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근본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의지 없이 한미일 ‘삼각’ 밀착 추구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리고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한일 양국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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