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안보 = 한국 안보' 유사시 군사개입 여지 남겨

박진 “대만 해협의 평화·안정, 한반도에 극히 중요”

중국, 한반도 평화 위해 대만 문제 신중한 처신 촉구

 

미국 핵잠수함 '스프링필드' 부산 작전기지 입항. [미 태평양함대] 연합뉴스
미국 핵잠수함 '스프링필드' 부산 작전기지 입항. [미 태평양함대] 연합뉴스

대만 문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개입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만을 반도체 등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기지로 보는 미국과 함께 대만 문제를 고리로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중국과의 대회전을 준비하는 일본과는 달리, 딱히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데도 자꾸 ‘남의 일’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중국 리스크만 키워가는 형국이다.

급기야 중국 정부의 반발을 불렀다. 지난달 22일 보도된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방송 인터뷰 내용이 문제의 발단이다. CNN에 따르면, 박 장관은 먼저 한국의 안보상 도전은 한반도를 넘어 남쪽으로 1000마일(약 1600㎞) 떨어진 대만해협까지 걸쳐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의 보편 상식과는 달리 한국의 안보상 도전에 대만 문제도 포함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긴급회동한 한국과 미국, 일본 3개국의 외교수장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긴급회동한 한국과 미국, 일본 3개국의 외교수장 [외교부 제공] 연합뉴스.

윤 정부, 대만 안보와 대한민국 안보 ‘동일시’

그리고 문제의 발언이 이어졌다. 박 장관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극히 중요하며’(essential)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고 말했다. 대만이 위협받으면 한반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국이 제일 민감하게 보는 대만의 안보를 한반도의 안보와 ‘동일시’하겠다는 얘기다.

더욱이 미국 등 주로 서방국에서 “우크라이나 다음은 대만”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과 같은 ‘자기충족적 예언들’로 동아시아 역내 분위기가 흉흉한 상황에서 이런 언급은 대만 분쟁 시 한국군의 직접 개입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오해될 우려가 크다.

작년 12월 윤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거의 같은 내용이 있었다. 정부의 공식 대외전략을 담은 해당 보고서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중요함’(important)을 재확인한다”라고 기술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선 보고서의 “중요”(important)보다 톤이 더 강한 “극히 중요”(essential)로 바뀌었다.

인터뷰에서 박 장관은 또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전제하고 “이런 의미에서 대만해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야만 한다. 그것이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대만 유사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부분은 언급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한국군의 군사적 대응’을 뜻하는 쪽으로 논리가 이어진다.

 

지난달 27일 대만해협 상공을 남북으로 비행한 미국 해군의 P-8A 포세이돈 해상초계기. [미 국방부 제공] 2023 02 27.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대만해협 상공을 남북으로 비행한 미국 해군의 P-8A 포세이돈 해상초계기. [미 국방부 제공] 2023 02 27. 연합뉴스

중국, 한국에 첫 공식 비판…“말참견 용납 못해”

예상대로 중국 정부가 공식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으로 다른 사람이 ‘말참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부용치훼‧不容置喙)"라고 거칠게 반발했다.

중국 매체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을 빌려 중국 정부의 불만을 밝힌 것이다. 지난 2년간 한국 정부의 대만 관련 발언에 공식 대응은 삼간 채 예의주시해오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청나라 작가 포송령의 소설에 나오는 ‘부용치훼'는 상대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으로 강한 어조로 상대를 비판할 때 주로 사용한다. 외교관계에선 잘 쓰지 않지만, 중국이 홍콩 문제나 동중국해 도서 영유권 문제 등 자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외교 갈등이 있을 때 이따금 사용했다고 한다.

마오 대변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려 한다면, 중국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존중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28일 브리핑에서도 추가 설명을 요구한 한국 언론의 질문에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국제관계의 공인된 기본 준칙이자, 중국이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기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2023.3.1. 연합뉴스

정부 '대만 관련 입장 변화 없다‘ 중국에 해명

중국의 반발에 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박 장관은 한반도 평화·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뿐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대만 사태에 ’개입‘하겠다는 한국과 외려 대만 사태에 자꾸 개입하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중국이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모양새여서 양국 간 갈등 고조는 불가피해 보인다.

두 달 전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가 나오기까지만 해도 한국 정부의 대만 관련 언급은 평이했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정도였다.

최초로 대만 문제를 언급한 계기는 2021년 5월 워싱턴D.C.에서 진행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두 대통령이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라고만 돼 있다.

그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제53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선 양국 국방부 장관은 “2021년 5월 바이든 대통령과 문 대통령 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반영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라고 했다.

 

필리핀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필리핀의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사용권을 추가로 확보했다. 2023 02 02 [로이터=연합뉴스] 
필리핀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필리핀의 군사기지 4곳에 대한 사용권을 추가로 확보했다. 2023 02 02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위상, 동북아에서 인도태평양·세계로 격상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수위가 높아졌다. 인도·태평양전략을 구사하면서 대중포위망 구축을 주도하는 미국의 압박이 세지는 것과 맞물렸다. 출범 직후인 작년 5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윤석열-바이든)의 공동성명을 보면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성명은 “양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라고 밝혔다. 1년 전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다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라는 부분을 추가한 것이다. 이런 기조는 그해 11월 제54차 SCM 공동성명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프놈펜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2022년 11월 13일)은 몇 걸음 더 나아갔다. 관련 대목을 보면 세 정상은 “대만 관련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라고 했다.

윤-바이든 공동성명의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및 번영의 핵심 요소로서”라는 부분이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요소로서”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대만해협의 위상이 처음엔 동북아에서, 다음은 인도‧태평양 차원으로 확장되고, 마침내 전 국제사회 차원으로 격상됐다. 대만을 건드리면 국제사회가 단합해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세 정상이 세계에 천명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2.11.13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2.11.13 연합뉴스

프놈펜 3국 정상회담 후, 윤 정부 대만 발언 과감해져

이때부터 윤 정부의 대만 관련 발언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게 된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와의 인터뷰(2022년 11월 29일 보도)에서 “대만의 현 상황을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하고, 대만 분쟁 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한국군은 “전반적인 안보 상황을 고려할 것"이라고 개입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는 약 한 달 후 대만의 안보와 한반도의 안보를 ’동일시‘한 윤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2022년 12월 28일)와 박진 외교부 장관의 CNN 인터뷰(2023년 2월 22일)로 이어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 한·미 및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악순환하면서 한반도는 전쟁 위기에 놓여 있다.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인데도 ’자기 집 일‘엔 손 놓고, 대만이라는 ’남의 집 싸움‘에 끼어들어 괜한 핀잔이나 듣는 게 오늘날 윤 정부의 현주소다.

핀잔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중 양국 간의 갈등과 마찰이 심해지면서 경제적,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이어지면 양국 모두에 그 피해는 작지 않다. 꼭 해야 할 때도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을 이른바 외교라고 한다. 안 해도 될 말로 굳이 상대를 자극하는 것은 외교를 벗어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