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계 등 탄력받았다는 듯 '이재명 흔들기'
"이탈표 빙산의 일각" "조기에 사퇴 결단해야"
뒤통수 맞은 친명계 비롯 다수파 격앙·위기감
"체포동의안 또 올 경우 결과 장담할 수 없어"
지도부는 일단 봉합 주력…이재명 "소통 강화"
이미 균열 심각…일각선 분당 가능성 거론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반란표' 대거 등장에 따라 가까스로 부결되자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단일대오'와 '압도적 부결'을 자신해오던 다수파는 뒤통수를 세게 맞고 격앙된 분위기이며, 이른바 비명(비이재명)계는 최대 38명이나 되는 이탈표에 자신들도 놀랐다가 이제 탄력을 받았다는 듯 본격적인 '이재명 흔들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표와 다수파가 당장 비명계와 '전면전'을 치를 움직임을 보이거나 반란표의 당사자들이 대놓고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은 물밑에서 사실상 내전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는 당내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일단 봉합에 나섰으나 이미 크게 벌어진 틈새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어서 미봉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상태로는 당이 내우외환 속에 계속 갈지자 행보만 할 수밖에 없어 이낙연 전 대표 지지세력 등 비명계와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지지층이 충격과 우려 속에 들끓고 있는 가운데 비명계 의원들은 표결 다음날인 28일 오히려 언론과의 실명·익명 인터뷰에 적극 나서면서 이탈표의 당위성을 항변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경고장을 보낸 것이라며 조기 사퇴론까지 꺼내들었다. 지도부 총사퇴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불거졌다.
대표적 비명계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당초 예상보다 많은 이탈표가 나온 것을 두고 "겉에 나온 숫자는 빙산의 일각으로 물밑에 있는 얼음덩어리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방탄 국회 비판이나 이 대표 스스로 대선 당시 공약한 '불체포특권 폐기'를 뒤엎는 데 불편해하는 의원들이 많았다"며 "그것(기권·무효표)도 (체포동의안) 찬성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이 의원은 "당 대표 거취 문제를 앞서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 대표 사퇴를 겨냥한 것이다. 이 의원은 자신이 말한 '어떤 조치'가 이 대표의 사퇴를 뜻하는 것인지 진행자가 묻자 "대체로 거론되는 것들이 그런 것 아니겠나"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억울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로 당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데 책임이 있는 건 틀림 없지 않나"라며 "이렇게 가서는 당이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걱정이 깊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지층의 '문자폭탄'이 쇄도하는 상황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든가 기권이나 무효표를 던진 이들은 자기들이 거론되고 있는 걸 알면서도 했을 것이기에 (앞으로) 자기 소신을 더 강하게 현실적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비명계가 위축되기는커녕 목소리를 더 크게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민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비명계의 전반적인 인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강병원 의원도 전날 표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체포동의안을 계속 방탄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런 표시가 아니었을까"라며 "국민들이 보기에 '방탄 정당'으로 회복할 수 없는 이미지로 낙인찍히는 건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은 언론과의 익명 인터뷰를 통해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전체의 거취 결정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탈표는 이 대표와 당 지도부 전체에 대한 경고로 다음 체포동의안이 오기 전 사퇴 등 거취를 결단해야 할 것이다. 시점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이재명 대표는 물론 당 지도부 전체가 물러나야 한다" "우리 당이 굉장히 힘들게 됐다. 이 상황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이 대표 결단뿐" 등의 발언으로 모두 '이재명 책임론'으로 귀결된다.
반면 친명계를 비롯한 다수파 의원들은 반란표의 장본인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위기의식을 분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원총회 등에서는 아무 의사 표시가 없다가 뒤통수를 쳤다는 지적을 이구동성으로 하면서 체포동의안이 또 올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상민 의원 인터뷰 기사를 첨부하며 "지지자와 싸우는 정치인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며 "동지에 대한 신뢰와 예의가 우선이라 생각한다"고 이 의원을 직격했다. 우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에 "35년 몸담은 내 사랑 민주당이여! 정말 검사 독재에 문을 열어주려 하는가!"라고 토로했다.
안민석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이탈표가 충격적이다. 국민과 당원들 보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당내 논의에서 체포동의안 가결을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으면서 막상 표결에서 반란표를 던진 것은 당당하지 못한 기만술이다. 조직적 움직임이라면 더욱 한심한 짓"이라고 개탄했다.
당 대변인인 박성준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정한 (규모의) 표를 봤을 때 기획된 투표로 가지 않았느냐는 해석도 가능하다"며 "의원총회에서 자유발언이라든가 (하는 방식으로) 의견들이 충분히 교류가 되는 건데, 거기에서는 그런 의견이 없다가 표로 딱 나왔다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나 이렇게 해석이 된다"고 말했다. 역시 뒤통수론이다.
최강욱 의원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무효표 분류 논란이 있을 때 '빨리 진행하자'며 웃고 있다가 정말 놀라고 황당했다. 민주당 의원총회 등에서 이 같은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면서 "공소장의 어떤 엉성함이라거나 검찰의 의도라거나 이런 것들이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여라도 지금 차기 공천을 생각해서 '현 지도부로는 내가 계속 정치를 하는 것이 위험하겠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이번에 나선 거라면 당의 분열을 유도하거나 염두에 두는 사람들이 박수를 칠 일이 될 터"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검사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박범계 의원 역시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표결) 결과에 대해서 상당히 놀랐다"며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이견이 드러나야지 그것이 노선의 차이인지 방법론의 차이인지, 설득이 가능한 것인지 (알수 있는데) 그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정말 유감스럽다"고 했다. 박 의원은 "(체포동의안이 또 넘어오면) 그거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며 "(부결을 당론으로 결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명 성향인 무소속 민형배 의원은 체포동의안 통과에 반대하는 '부'자를 제대로 쓰지 않은 기표 용지 사진을 올리며 "흘려 쓴 '부'자가, 원래 자신의 필체가 아니라 의도적인 무효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 의원은 제 발로 걸어나가 집을 향하는 게 어떨까"라고 적었다. 원외인 최재성 전 정무수석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부결을 주장했던 비명계 의원들이 일종의 트릭을 했다는 얘기다. 해서는 안 되는 정치를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지도부는 일단 비명계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표결 결과가 의원총회에서 모은 총의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표결 결과가 주는 의미를 당 지도부와 함께 깊이 살피겠다"고 했다. 이어 "어제의 일로 당이 더 혼란이나 분열로 가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의 단일한 대오를 위해 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습에 방점을 뒀다.
이재명 대표 본인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국정 난맥상과 정치검찰의 야당 죽이기가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비명계와 각을 세우며 내부에 전선을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어떻게든 당을 결속시켜 단합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무너지면 곧 검찰독재정권의 폭정을 막을 저지선이 무너지는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이 대표는 표결 당일인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와 기자들에게 "당내와 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힘을 모아 윤석열 독재정권의 검사 독재에 강력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후 당 지도부와의 만찬 자리에서도 "일단 체포동의안 부결로 인해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당함이 드러났으니 동요하지 말고, 당 내부와 소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보자"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다음날인 28일에도 표결 결과에 연연하거나 이렇다 할 언급 없이 민생 행보에 주력했다. 그는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진단' 이슈와 관련해 이날 오전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급식 시설을 둘러보고 "학생의 건강을 책임지는 조리실이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민주당은 이른 시일 내에 급식실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이탈표 관련 질문을 했지만 이 대표는 "이재명을 잡느냐 못 잡느냐, 이런 문제보다는 물가를 잡고 경제도 개선하고 사람들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만 답했다.
이 대표는 이탈표의 원인을 '소통 부족'에서 찾고 당내 스킨십 강화에 치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내홍은 시작됐고 갈등이 심화하는 양상이어서 이 대표가 비명계와 다수파를 모두 진정시키며 단일대오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탈표 대거 발생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검찰이 추가 구속영장을 청구할 게 뻔하다는 점도 상시적 불안 요인이다. '2차' '3차' 체포동의안으로 비슷한 사태가 재연되거나 가결이라도 될 경우 민주당의 내분은 내란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분당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렇게 내부의 적에 발목 잡힌 끊임없는 분란 상태로는 안 그래도 버거운 윤석열 정권과 검찰의 폭압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고 내우외환에 계속 시달리다 결국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갈수록 커지는 기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다툼이 본격화하면 탈당과 신당 창당 등 이합집산의 정계개편론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라는 간판을 어느 쪽이 갖고 갈 것이냐가 관건인데, 과거 새천년민주당을 박차고 나온 열린우리당의 총선 대승 사례가 언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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