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미국 전투기의 격추가 발단, 이달에만 4개 격추

중국 맞불…일본, 2~3년 전 비행체 놓고 뒤늦게 항의

군사적 위협 확인된 사례는 전무, '추정' 근거한 행동

'미확인 비행체 미확인 격추' '위협의 나비효과' 우려

 

세계가 '유령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지난 2월 4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상공에서 중국 '스파이 풍선(비행선)' 1개를 격추한 것이 신호탄이 되어 곳곳에서 풍선을 상대로 군사작전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자신들이 격추한 '스파이 풍선'이 정말 군사적인 위협인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미확인 비행체'에 대한 '미확인 격추'가 불씨가 되어 더 큰 긴장을 유발할 것이 우려된다.

 

미 해군 폭발물 제거 요원들이 지난 5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근해에서 중국 '스파이 풍선'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미 해군이 배포한 사진이다. 2023.2.5  AP연합뉴스 
미 해군 폭발물 제거 요원들이 지난 5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근해에서 중국 '스파이 풍선'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다. 미 해군이 배포한 사진이다. 2023.2.5  AP연합뉴스 

"군사적 위협은 없다, 그래도 격추한다"

각국의 공군 당국이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28일부터다. 중국 스파이 풍선으로 보이는 비행체가 알래스카 해변에서 미국 영토로 진입하는 것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풍선은 캐나다 영공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몬태나주 상공에 진입, 지난 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명령으로 격추되기까지 1주일 동안 미 본토를 유유하게 횡단했다. 대형버스 3대를 붙인 크기에 관측장비가 장착된 풍선은 육안으로도 목격됐다.

풍선 격추에는 최첨단 F-22 스텔스 전투기(대당 가격 2억 600만~2억 1600만 달러) 2대가 출격, AIM-9X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1발당 40만 달러 이상)을 발사했다. 중국은 기상관측용 풍선이라면서 항의했지만, 미국은 정찰 목적의 '스파이 풍선'이라며 잔해를 수습, 분석 중이다. 미국 국방부(펜타곤)는 중국의 스파이 풍선이 라틴아메리카 상공에서도 목격됐다고 전했다. 미 본토 상공에서는 이후에도 스파이 풍선이 계속 포착됐다.

미 공군은 지난 10일 알래스카 해변에서 고고도 비행체를 격추했고, 다음날에는 캐나다 영공에서 또 한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12일 미시간주 휴런호의 6000m 상공에서 8각형의 미확인 비행체가 발견되자 F-16 전투기가 발진,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했다. 펜타곤 관계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3개의 미확인 비행체가 군사시설에 물리적(kinetic)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비행경로가 민감한 군사시설을 지나고, 자칫 민항기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비행고도이기 때문에 격추했다는 설명이다. 펜타곤은 그 어느 때 보다 영공 감시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조기 문양의 미국 지도 위에 떠있는 중국 오성홍기 풍선. 로이터 통신이 5일 스파이 풍선 사건의 관련 그래픽으로 작성한 것이다.  2023 02 05. 로이터연합뉴스
성조기 문양의 미국 지도 위에 떠있는 중국 오성홍기 풍선. 로이터 통신이 5일 스파이 풍선 사건의 관련 그래픽으로 작성한 것이다.  2023 02 05. 로이터연합뉴스

주목할 사실은 지난 4일 이후 미 공군이 격추한 미확인 비행체가 모두 군사적 위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4일 브리핑에서 이 점을 거듭 확인했다. 커비 조정관은 "지금까지 최근 3개의 비행체가 정보수집을 위한 중국의 스파이 프로그램에 관련됐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면서 "다만 중국의 상업용 또는 연구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펜타곤은 지난 4일 미 공군이 격추한 대형 풍선 역시 군사적, 첩보적 위협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한 바 있다. 같은 날 브리핑에서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기는커녕 미국민과 미 본토에 어떠한 물리적 위협도 가하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내세우는 격추의 명분은 영공 침범과 이로 인한 주권 침해뿐이다. 

미국 연방하원은 지난 9일 전체회의에서 참석 의원 만장일치로 중국이 미국 영공에서 고고도 스파이 풍선을 사용하는 것은 미국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더글라스 심스 작전국장(중장, 가운데)이 9일 중국 스파이 풍선 문제를 조사하는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2023.2.9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더글라스 심스 작전국장(중장, 가운데)이 9일 중국 스파이 풍선 문제를 조사하는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2023.2.9  로이터 연합뉴스 

왜 지금 '스파이 풍선'인가, 웃지 못할 해프닝도

미국 당국자들은 4일 격추한 스파이 풍선의 경로를 14일 공개했다. (cbs방송) 이달 초 중국 하이난도에서 출발해 괌과 하와이를 지나 알래스카 쪽으로 선회했다면서 "경로로 보아 (중국의 주장대로) 풍선이 날씨 탓에 동북쪽으로 날아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 본토 상공에 도달한 뒤부터 중국 당국에 의해 조종됐다고 덧붙였다. 설령 첩보를 위한 중국의 '스파이 풍선'이었다고 해도 무해한 것이었다는 펜타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인 공화당과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안보위협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상태에선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을 시험해보려는 의도였다' '실제 미군 전략시설 정보수집용이었다'는 등의 추측에 근거한 위협론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지난해 8월 대만해협 위기 이후 미국 내 반중감정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 '스파이 풍선' 문제가 열흘 넘게 이슈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펜타곤은 첫 번째 풍선을 격추한 뒤 최근 몇 년간 4개의 스파이 풍선을 포착했었다고 밝혔지만 아무런 군사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었다. 펜타곤은 이번에도 무해한 풍선으로 보고 있지만, 여론의 주목을 한껏 끌어모은 상태에서 격추했다. 그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일어났다.

미 공군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지난 12일 휴런호 상공 비행체의 경우 F-16 전투기가 처음 발사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이 빗나가 2발을 쏘아야 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망신살을 사고 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14일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첫 번째 미사일은 호수로 곧장 떨어져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면서 역시 잔해를 수거해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AFP 통신은 "조종사가 괴성을 지르며 거의 50만 달러에 육박하는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할 때는 '탑건(명사수)'보다 "어이쿠(oops)"에 가까웠다"라고 꼬집었다.

 

탄케페이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해 11월 22일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열렸던 아세안 국방장관회의 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11.22 AP 연합뉴스 
탄케페이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해 11월 22일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열렸던 아세안 국방장관회의 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11.22 AP 연합뉴스 

미 공군 최신 전투기들이 시작한 '풍선 쏘기'는 나비효과가 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미확인 비행체의 위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15일 수도 키이우 상공에서 정찰 용도로 보이는 러시아 풍선 6개를 포착해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공군사령부는 "우리의 방공망을 탐지하고 방공 대응력을 소진하려는 게 러시아의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중 대화단절 속 세계로 확산되는 '나비효과'

우려한 대로 동아시아에도 넘어왔다. 미국 내에서 공화당과 보수언론이 위협론을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면, 아시아에선 '기시다의 일본'이 앞장서고 있다. 16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집권 자민당은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 및 민항기의 안전을 위해 영공을 침범한 기구에 무기 사용을 허용하는 정부의 자위대법 개정안을 수용했다. 일본 방위성이 지난 14일 미국의 스파이 풍선 소동 뒤 가고시마현(2019.11)과 미야기현(2020.6), 아오모리현(2021.9)에서 각각 확인됐던 미확인 비행체가 중국의 스파이 풍선으로 강하게 추정된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5일 중의원에 출석해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정부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비행체 발견 지점은 자위대 기지가 있는 곳으로 전해졌지만, 말그대로 미확인 비행체를 포착 몇년 뒤에 뒤늦게 항의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미국 전투기들이 미확인 비행체 격추에 사용한 AIM-9X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개당 가격이 40만 달러(약 5억여원)을 크게 웃돈다. AP연합뉴스
미국 전투기들이 미확인 비행체 격추에 사용한 AIM-9X 사이드와인더 미사일. 개당 가격이 40만 달러(약 5억여원)을 크게 웃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역공에 나섰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지난해 5월 이후 미국이 날린 대량의 고공기구(풍선)들이 신장·티베트를 포함해 최소 10여 차례 중국 영공을 불법 비행했다"고 비난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16일 성명을 내고 "미국이 스파이 풍선이라고 규정한 것은 민수용 무인 비행선"이라면서 "미국이 이를 격추한 것은 국제법의 정신과 국제관례를 엄중히 위반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스파이 풍선 위협설'은 기실, 가상 전쟁이다. 유령과의 전쟁에 가깝다. 군사적 위협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정에 근거해 첨단무기를 동원하는 희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군사적 긴장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가 그만큼 예측불허의 위기로 다가가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 국방부는 지난 9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중국 스파이 풍선 격추 뒤 처음 제안한 전화통화를 거부했다. 

국제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미국은 되레 이를 부추기고 있다. 미 해군이 진행중인 스파이 풍선의 잔해 분석 작업은 최소 몇 달이 걸린다. 그때까지 미국이 선도하는 풍선 격추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정찰풍선"(미국 주장) 격추 장면.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중국 정찰풍선"(미국 주장) 격추 장면. 미국 해군연구소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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