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대만 관련 발언에 꼬여가는 중일 관계
중 항공사들 일본행 항공권 취소,변경 무료 처리
“중국 대만 침공하면 일본은 중국과 전쟁 불사”
파장 키운 오사카 중국 총영사 쉐지엔의 X 투고
“더러운 머리 들이밀면 잘라 주겠다. 각오 됐나”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개선돼 가는 듯했던 중국과 일본 관계가 대만 관련 문제로 꼬이면서 최근 며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4일 자국민들에게 당분간 일본 여행을 삼가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SNS 공식계정을 통해 “올해 들어서 일본에 있는 중국인들에 대한 범죄가 다발하고 있고, 일본 내의 중국인들 안전환경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며 “일본 지도자의 대만과 관련한 노골적인 도발적 발언은 중일 교류 분위기를 현저히 악화시켜 일본에 있는 중국인들의 안전에 중대한 리스크(위험)를 안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정부가 “대만과 관련한 노골적인 도발적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 “일본의 지도자”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총리다.
올해 1~9월 일본 방문 중국인 748만
올해 1월에서 9월까지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약 748만 명으로, 세계의 일본 방문객들 중 가장 많았다. 7~9월의 일본방문 중국인 여행객들이 쓴 돈은 5900억 엔(약 5조 3천억 원)으로 전체 방일 여행객들 소비액의 28%를 차지해 역시 1위를 기록했다.
중국 국유 항공대기업 3개사는 15일 일본행 항공권 취소와 변경 절차를 무료로 처리해 준다고 통보했으며, 쓰촨 항공, 아모이 항공, 하이난 항공 등 지방항공회사들도 뒤따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국민들에게 일본여행을 삼가도록 촉구한 중국 외교부의 조치를 일본은 사실상의 “경제 제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한국 사드 배치 뒤인 2017년 3월 중국이 자국민들의 한국방문을 금지한 것을 연상시키는 이런 조치에 대해 기하라 미노루 일본 관방장관은 15일 “정상들 사이에 확인한 전략적 호혜관계의 추진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이라는 큰 방향성과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중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이 합의한 큰 방향성이란 10월 말 경주 APEC 때 편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만난 시진핑-다카이이치 사나에 합의사항을 가리킨다.
중국이 대만 침공하면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 불사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질의 응답 과정에서 중국이 대만을 지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동원할지, 거기에 대해 일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은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의원(외상 역임) 질의에 이렇게 대답했다.
“전함을 동원해 무력행사까지 감행하는 것이라면 ‘존립위기사태’가 될 수 있는 케이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 대만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총리 취임 전부터 갖고 있던 지론이었으나, 그것을 현직 총리로서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설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왜냐하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공격할 경우 일본은 그것을 자국의 “존립위기사태”로 간주하고 무력(집단적 자위권)으로 대응할 수 있다, 즉 중국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얘기하는 ‘존립위기사태’는 일본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 공격받을 때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국민의 생명 등에 명백한 위험이 발생하는 사태를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위험이 발생했다고 일본정부가 판단하는 사태다. 그럴 때 일본정부는 ‘집단적 자위권’(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의 ‘무력행사의 새로운 3요건’
일본정부가 2015년에 각의에서 통과시킨 ‘안보법제’는 1.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할 때, 2.달리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3.필요최소한의 실력행사일 것 등을 ‘무력행사의 새로운 3요건’으로 규정하고, 이 요건을 충족시킬 경우 그것이 일본이 아닌 타국에 대한 공격일지라도 일본이 공격국가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것은 국회의 사전승인을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긴급할 때는 예외적으로 사후승인을 받아도 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경우 ‘타국’이란 대만이다.
한마디로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하면 일본은 그것을 자국의 존립위기사태로 간주하고 중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얘기다. 일본이 얘기하는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때 함께 싸울 권리인데, ‘대만(해협) 전쟁’ 발발시 그것을 발동한다는 것은 미국이 대만 방어에 나서서 중국과 교전할 때 일본 자위대가 동맹국 미군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중국군은 미군뿐만 아니라 일본 자위대도 공격 대상으로 삼을 것이고 일본도 전쟁 당사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이 자국 영토의 일부임을 선언한 중국에게, 일본이 대만을 다른 국가(타국)로 간주하는 것부터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자국 내정에 일본이 무력으로 개입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라 여길 것이다.
역대 총리들의 공식 견해와 달랐던 다카이치 발언
이 문제, 즉 대만 유사사태 대응과 관련한 일본정부의 기존 공식 견해는 “어떤 사태가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하는지는 개별적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하다”(2024년 2월 당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국회 답변)는 것이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모호하게 얼버무린 것인데, 다카이치 총리의 7일 발언은 그런 기존 문법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다카이치는 실은 자민당 총재, 총리가 되기 전부터 그런 내용의 말을 소신처럼 되풀이해 왔다. 지난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자민당 총재선거 때 다카이치는 “(대만 유사사태는 일본의) 존립위기사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올해 총재선거 입후보 회견 때도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다. 다르지 않다”고 공언했다. “(대만과 오키나와 남단에 있는) 요나구니(섬) 간의 거리는 110킬로미터로, 도쿄에서 아타미 정도의 거리에 타국(중국)의 전함이 전개된다”며 대만 유사사태가 일본 유사사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다카이치만 그런 게 아니다. 역대 일본총리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베 신조는 총리자리에서 물러난 뒤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라 강조했고, 아소 다로 전 총리도 “우리는 대만해협에서 싸울 것이다. 대만 유사는 일본의 존립위기사태이기도 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직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그런 말을 할 경우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잖아도 극우 정치인으로 알려진 다카이치가 총리가 됐을 때부터 중국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때문에 지난 달 말 경주 APEC에서 중일 두 정상이 어떻게 만날지도 관심거리였으나, 별 탈 없이 상견례를 치렀는데, 다카이치 국회 발언으로 결국 일이 터진 것이다.
그 전부터 중국정부는 올해를 ‘항일전승 80년’으로 기념하면서 일제 관동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을 그린 ‘731’, 난징 대학살 사건을 환기시킨 ‘난징 사진관’ 등의 영화를 통해 민족주의를 고취하면서 대만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경주 APEC 회의 때 다카이치 총리가 거기에 참석한 대만 린신이 대표를 만나 환대한 것을 두고도 중국은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문제삼았다.
파장 키운 오사카 중국 총영사 쉐지엔의 X 투고
그런 분위기 속에 터져 나온 다카이치 발언의 파장을 일파만파로 키운 것이 그 발언 다음날인 8일 오사카의 중국 총영사 쉐지엔이 X(예전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었다. “제멋대로 들이민 그 더러운 머리를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잘라 줄 수밖에 없다. 각오는 돼 있나.”
이 말에 일본쪽도 발칵 뒤집어졌다. 9일 일본정부가 중국에 항의했고, 10일 중국 외교부 린젠 대변인은 “일부 일본 정치가들과 미디어가 (쉐지엔의) 투고를 의도적으로 키워 초점을 흐리고 있다”며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면서 쉐지엔을 옹호했다. 12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이 방문 중이던 캐나다에서 “재외 공관장 발언으로는 지극히 부적절하다”며 중국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쉐지엔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로 국외 추방하라고 일본정부에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쉐지엔의 X 투고 대상이 “대만해협에 대한 무력개입을 부채질하는 위험한 언론”이지 다카이치 총리가 아니라며 쉐지엔을 두둔했다.
13일 밤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가나스기 겐지 중국주재 일본대사를 불러 다카이치 총리의 국회 답변 철회를 요구했다. 일본도 14일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차관이 중국 우장하오 주일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쉐지엔 투고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바로 그 14일 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체류 중국인들의 안전상의 중대한 위험을 이유로 일본여행을 삼가라고 SNS를 통해 통보했다. 15일에는 중국군 전투기와 무인기 총 17기가 중국과 대만의 중간선을 넘어 대만 쪽 영공을 침범했다.
껍데기만 남은 일본의 비핵3원칙
문제를 촉발시킨 일본 쪽은 어떻게든 사태 수습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앞서 살펴봤듯이 다카이치뿐만 아니라 자민당 역대 우익 정권 총리들이 비공식적으로 거듭 얘기해 온 ‘대만사태’ 대응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중국도 일본의 그런 속내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 요구대로 그 발언을 철회할 경우 이제까지 넓히려 애써 온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여지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다카이치의 그런 발언은 지금 80%에 가깝다는 다카이치 인기(지지율)의 근간인 보수 우익층과 젊은 세대의 지지를 일궈낸 자산인데 중국 쪽 요구대로 그것을 철회할 경우의 역풍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사실상의 ‘경제 제재’까지 동원해 갓 출범한 여소야대의 극우 다카이치 정권과의 기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다카이치 정권의 기본자세를 떠보려 할 것이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다카이치 총리가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거론한 일본의 ‘비핵3원칙’ 재검토 발언에 대해서도 “일본의 최근 군사동향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비핵3원칙이란 1967년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핵을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겠다”고 한 국회 답변을 토대로 한 것인데, 다카이치는 총리 취임 전인 2024년에 쓴 <국력연구>란 책에서 이 비핵3원칙의 각의(국무회의)결정 직전에 자신이 거기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는 특히 ‘반입하지 않겠다’는 원칙과 관련해 “미국의 확대억지 제공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현실적이지 않다”며 “궁극적인 사태에 빠질 경우 ‘비핵3원칙을 견지한다’는 문언이 장애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고 썼다.
‘반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은 실은 사토가 비핵3원칙을 선언했을 때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사토는 비핵3원칙 선언 당시 이미 미국과 핵무기를 실은 미국 함정이나 항공기의 일본 기항, 즉 반입을 허용하는 이면합의를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당시 문서들을 통해 밝혀졌다. 다카이치가 미국의 핵 억지력을 제공받는 처지에 ‘반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은 비현실적이라며 장애가 될 뿐인 그것을 재검토하자고 한 것은 사토의 이면합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친동생이었던 사토 에이사쿠는 그 비핵3원칙 선언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기시와 사토는 모두 아베 신조의 외조부들이다.
일본의 비핵3원칙 재검토 움직임은 미국의 한국 핵잠수함 보유 승인을 계기로 무기수출 3원칙의 형해화와 함께 한층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중국은 이를 경계하며 못마땅해 하겠지만, 다카이치 총리 주변에서는 “일본의 최근 사태동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중국에 대해 “핵 보유국인 중국한테서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내정간섭이다”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일본언론은 전했다. 이미 핵무기를 잔뜩 보유한 중국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느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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