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적 지배로 동맹국 약탈-착취하는 것

미국의 실물 결핍 가리려는 임시방편일 뿐

달러와 미국채의 신용이 흔들리면 붕괴될 것

'마라라고 달러 플랜'은 통화스와프 확대, 공공재 비용 분담, 동맹국의 대미 투자 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 구상이다. 이는 브레턴우즈II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구상이 아니라, 그 위기를 새로운 형태로 연장하는 장치다. 스티븐 미란의 내부통화 제국주의는 동맹국의 자본과 산업을 미국의 부채순환 구조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러한 제국주의는 바로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 약탈과 착취로 구체화되고 있다

1. 2024년 12월 스티븐 미란과 리처드 버너가 발표한 보고서 『지구 차원의 교역 체계 재구조화 안내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구상을 요약한 문서로 평가된다. (Stephen Miran & Richard Berner,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Project on Renewing American Prosperity, 2024)

2. 미란의 보고서는 달러 패권을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담고 있다. 그 계획의 핵심은 동맹국의 자본과 산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부채 중심 경제를 연장하는 것이다. 미란의 보고서는 '마라라고 달러 플랜(Mar-a-Lago dollar plan)'의 밑그림이 되었다.

3. 미란은 단순한 경제관료가 아니다.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블랙록(BlackRock)에서 글로벌 채권 운용을 맡았고,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재무부 정책실에 몸담았다. 금리·국채·환율·무역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그의 관점은 민간금융과 공공정책, 그리고 중앙은행 메커니즘을 모두 경험함으로써 형성되었다.

그는 2025년 3월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으로 취임했고, 곧이어 2025년 9월 미연준(Fed) 이사회 이사로 취임했다. 거시정책과 통화정책을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이중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미란이 제시한 달러체제 재편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집행 가능한 청사진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4. 미란이 구상하는 마라라고 플랜은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통화스와프의 정치화다. 그것은 달러 유동성을 협력국에만 제공함으로써 협력국의 통화주권을 사실상 미국의 통화정책 결정에 종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둘째는 국채시장 재편이다. 해외 중앙은행이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새로운 레포(Repo, 단기 환매조건부채권)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표면상 시장 안정 장치지만 실제로는 외국의 달러 자산을 연준의 신용망 속으로 끌어들이는 체계다.

셋째는 관세정책의 환율화다. 그것은 관세를 단순한 무역장벽이 아니라 환율 조정 도구로 사용해 달러 가치를 미세 조정하려는 전략이다.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 무역·통화·재정이 한데 맞물린 미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운영 체제가 형성된다.

5. 미란의 '마라라고 달러 플랜'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구현되어 동맹국들을 난폭하게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안보, 해상운송, 글로벌 금융 인프라 운영 등 자신이 감당해온 '세계 공공재'의 유지비용을 동맹국에 분담시키고 있다. 트럼프가 말하는 “공정한 부담(fair burden sharing)”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정의 레토릭을 앞세워 이웃 국가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과 착취를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3500억 달러, 일본에 5500억 달러, 유럽연합에 7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강제하고 명령하고 있다. 대미 투자는 공급망 협력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산업정책을 위한 공적 자금을 메우는 장치다. 

6. 미란의 핵심 논리는 명확하다. 미국의 신용·부채 메커니즘을 전 세계 결제 구조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세계 경제의 내부 장치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러한 체제에서 달러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미 국채의 신용을 매개로 세계 유동성을 창출하는 글로벌 레버리지 통화가 된다.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 자산은 미국의 부채순환 사슬에 편입되고, 연준의 금리 결정은 세계 자본비용을 지배한다. 나는 그것을 내부통화 제국주의라고 규정한다.

7. 미국의 내부통화 제국주의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미란의 구상은 금융 메커니즘의 조정에 집중할 뿐, 미국 제조업의 쇠퇴와 생산성 정체라는 근본 문제에 답하지 못한다.

달러 약세는 일시적으로 수출을 늘릴 수 있지만, 산업생산력의 지속적 회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증세 없는 재정지출은 부채–적자–금리 상승의 악순환을 낳고, 미국은 내부통화 제국주의의 심연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

8. 결국 마라라고 플랜은 브레턴우즈 II의 연명책이다. 금융적 지배로 실물의 결핍을 가리려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달러와 미 국채의 신용이 동시에 흔들리는 순간, 이 체제의 근거는 무너질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졸탄 포자르가 예견한 실물가치 기반의 외부통화 질서가 다시 한 번 브레턴우즈 II 너머의 길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질서를 상상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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