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강국'이 저출산 ·교육 문제 해결의 한 방법

18세기 말 연암 박지원은 “나라에 수레도 없고 수레가 다닐 길도 없다”고 한탄했다. 불과 2백여 년 전이다. 로마는 기원전부터 ‘아피아 가도’라는 포장도로를 유럽 전역에 건설했고 중국도 일찍부터 수레가 보편적인 이동 수단이었다. 당시 조선에도 수레가 없지 않았고 운송수단으로 우마차가 쓰였지만, 산이 많은 지형상 널리 보급되진 않았다. 청의 수도 연경을 비롯해 중원 지방은 평지여서 수레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반면 조선은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닦기보다 가마와 지게를 이용하는 데 머물렀다. 하인들에게 ‘몸빵’을 시킨 것이다.

극소수 양반 빼고 모두가 가난했던 조선 후기 나라꼴

연암의 『열하일기』(1780년)에는 “조선의 백성들은 벌레가 우글거리는 초가에서 사는데 청나라는 일반 백성도 벽돌로 지은 2층집에서 산다”며 감탄하는 대목도 나온다. 연암보다 먼저 청나라를 돌아본 뒤 『북학의』(1778년)를 쓴 박제가 또한 조선의 부실한 초가와 수레를 잘 이용하지 않는 생활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벽돌집을 지으려면 먼저 벽돌을 실어 나를 수레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당대의 시대착오적인 북벌론을 무릅쓰고 중국(청나라)을 배우자는 북학론을 펼친 배경이다.

『북학의』와 『열하일기』에는 흙벽 틈새로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집, 땔감을 구하지 못해 냉골 같은 방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겨울을 나야 했던 민초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선각자의 고뇌가 담겨 있다. 조선의 양반들은 양지바른 남향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면서 북향 마을에 움막 같은 초가삼간에서 추위에 벌벌 떠는 민초들의 삶을 왜 개선하려 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먹는 양식과 입을 옷을 생산하는 민중의 의식주를 개선할 생각을 못한 것은 무능함일까? 잔인함일까? 자신들은 기와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기에 별 문제를 못 느낀 걸까?

긴 손톱과 노동 천시 풍습

물론 조선시대 양반들이 다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극소수의 양반들만 그렇게 살았고 대부분의 양반들은 가난해서 겨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은 하지 않고 글이나 읽으며 소일했으니 가난을 면할 길이 없었다. 박제가는 나라의 가장 큰 폐단이 궁핍과 가난이라면서 사농공상 네 부류의 백성 모두 곤궁하게 살아 서로를 구제할 방도가 없다고 한탄하며 생산과 소비, 유통을 늘리는 방도를 제시했다. 박제가가 시시콜콜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 뒤에도 백 년이 지나도록 문제 해결을 미루고 방치한 지배계급의 무능과 무책임이 나라를 망하게 했으니 뒤늦게 시일야방성대곡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조선의 궁핍과 가난은 노비들의 노동에 의존해 살면서 노동을 천시한 양반들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노동을 천시하는 조선인을 영국인 석호필(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은 이렇게 묘사했다. “하나님은 조선 사람에게 나라와 긴 손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는데 조선 사람은 긴 손톱을 택하고 나라를 버렸다.” 안창호 같은 선각자들은 조선인들의 게으름과 노동 천시 풍습이 나라를 망하게 만든 원흉임을 자각하고 노동의 중요성을 교육하기 위해 애썼지만 기울어진 국운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조선 기술 세계 최고 나라의 연안 어선 수준은?

노동을 천시한 선조들의 후손답게 ‘노동’이란 말 대신 ‘근로’라는 말을 애써 쓴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그래도 부국강병을 위해 제조업에 올인하여 불과 반세기 만에 한국은 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들어섰다. 노비의 후손인 노동자들이 산재를 무릅쓰고 밤낮없이 ‘근로’를 한 덕분이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레를 생산해내고 있다. 지난 2백 년, 아니 반세기 동안 후손들이 이룬 성취를 보면 “수레도, 수레가 다닐 길도 없다”고 한탄했던 연암도 깜짝 놀랄 것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첨단산업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조선 기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그런데 정조대왕함 같은 첨단 군함을 만드는 대한민국 연안 어선들 수준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이 없는 것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중공업에 올인한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과 서비스업의 3차산업에 비해 1차산업이 한참 낙후되어 있다. 그래도 농업은 어업에 비해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편이어서, 귀농해 시설농업으로 부농이 된 젊은이들도 적지 않고 선진 농업기술도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데 비해 어업은 50년 전 수준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수산진흥공단에서 어선청년임대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낡은 어선에 자기 목숨과 미래를 걸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뉴스에서 간혹 남쪽으로 표류해 떠내려온 북한 어선을 보면서 남쪽 사람들은 혀를 찬다. 나룻배 수준의 낡은 목선에 몸을 싣고 험한 바다에 나서는 북한 주민들이 한 해 얼마나 목숨을 잃는지 통계가 잡히진 않지만 그 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북한 목선은 몇 시간만 달려도 안에 물이 찹니다. 퍼내지 않으면 가라앉습네다.” 2023년 목선을 타고 가족과 함께 귀순한 강규리 씨 말이다. 잠수함을 건조하는 북한의 조선 기술이 어선을 개량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노르웨이 어선에 비하면 한국 연안 어선들의 수준은 북한 목선과 그리 다르지 않다.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좌)와 우리나라 어선청년임대사업에 등록되어 있는 배(우).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좌)와 우리나라 어선청년임대사업에 등록되어 있는 배(우).

노르웨이 어선에 비하면 우리 연안 어선은 북한 목선 수준

지난해 11월 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금성호는 129톤 규모로 고등어잡이 배 중 큰 편에 속한다. 선원 27명(그중 11명이 인도네시아인이었다) 중 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되었다. 해양 사고로 해마다 천 명 안팎의 선원들이 사고를 당하며,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 처리되는 실종자가 20명 안팎이다. 사고의 주원인인 선체 불량이나 운항 미숙, 기상악화 같은 조건들은 노르웨이 어선 수준에서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들이다.

3천 톤이 넘는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는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선원 복지시설이 크루즈에 버금간다. 선원의 소득도 대졸 회사원 이상이다. 힘들게 대학을 나와서 책상머리에 앉아 일하는 것보다 바다 위에서 자기 길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그에 비해 우리 어선은 규모가 노르웨이 어선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칠뿐더러 선원 복지시설도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로서 전혀 매력이 없다. 그러니 저임금 외국인 노동력에 의지하는 영세한 어업 수준에 머문다.

한국의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나 유조선과 군함 같은 대형 선박을 만들 뿐 어선을 현대화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어선 등을 건조하는 소형 조선소가 전국에 200여 개 있지만 수공업 수준의 영세한 업체들이다. 연안 어선은 통통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 강국’의 민낯이다. 어선을 현대화하는 일은 어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길이자 다양한 해양산업을 북돋는 일이며 다음 세대의 미래를 여는 일이다. 북유럽에 가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교육이 아니라 농업과 수산업을 비롯한 1차산업이다.

 

노르웨이 어촌의 모습. 배의 규모나 마을 풍경이 한국 어촌 풍경과 사뭇 다르다. ⒸEBS
노르웨이 어촌의 모습. 배의 규모나 마을 풍경이 한국 어촌 풍경과 사뭇 다르다. ⒸEBS

교육 문제 풀기 위해서라도 1차산업 키워야

연안 어선을 현대화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는 난망한 교육 문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북유럽은 낙농업과 어업 같은 1차산업이 발달해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살아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대학에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되는 길이 넓어져야 교육 문제가 풀린다. 서울대를 열 개 아니 백 개를 만들어도 ‘7세 고시’ ‘초등 의대반’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2의 주된 원인은 교육 문제다. 더 이상 대학입시라는 좁은 길에 몰려 서로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열어야 한다.

로봇과 자동화 기술로 인해 2차산업 일자리가 줄고 있고 서비스업은 경쟁이 지나치다. 이제는 화이트칼라 전문직도 AI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는 오히려 1차산업 일자리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먹어야 산다. 농업, 수산업 같은 1차산업의 중요성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산업과 농업이 청년 일자리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불과 10여 명의 선원이 승선하는 노르웨이 고등어잡이 배 한 척이 우리나라 어선 수십 척의 생산성을 올린다. 어선을 현대화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뿐더러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해양강국 꿈 완성 못할 이유 없다

영세한 어민들이 첨단 어선 건조를 발주하고 소유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10여 명의 선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2천 톤급 이상의 어선을 공동소유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어선 건조용 조선소를 지원하고, 협동조합에 선박 대금을 저리로 대출해주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어선을 현대화하는 작업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통통배 수준의 어선을 임대해주는 어선청년임대사업 같은 허접한 정책으로 젊은이들을 수산업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선말 관료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농업과 수산업의 현대화 장기 플랜을 마련하여 적절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 낙후된 1차산업을 업그레이드 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교육 문제를 푸는 길이자 인구감소 시대를 대비하는 길이다. 기술도 있고 돈도 있으니 국정을 맡은 이들이 제대로 하기만 하면 일이십 년 안에 사회를 바꿀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렸던 해양강국의 그림을 완성할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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