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유일한 독립운동가…전국에도 5명 뿐
16세에 독립운동 투신 온갖 고문과 고초 겪어
"나라 빼앗긴 원인은 위정자들의 무능과 부정"
후대에 준엄한 통찰과 꺼지지 않는 희망 당부
미완의 독립, 완수는 후대의 몫
세대를 잇는 연대 계승의 과제
비가 유달리 많이 내린 지난 가을, 제주시 자택에서 강태선(101) 지사를 만났다. 그는 제주도에 한 명 남은 생존 독립운동가다. 대한민국에 전체에서 살아계신 독립운동가는 다섯 뿐이다. 101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시대의 마지막 불꽃'이라 불리는 그의 눈빛은 궂은 비가 내리던 그날의 날씨처럼 서늘하면서도 형형했다.
강 지사를 찾은 이유는 최근 내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친일 청산'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6세에 독립운동에 투신해 일제의 고문과 옥고를 치르며 광복을 맞이한 산증인에게, 우리는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의 증언은 단순히 과거 회상을 넘어, 오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정신적 유산과 미래의 과제를 엄중히 확인시킨다.
16살의 결단, "투쟁은 그저 일상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 태어났다. 우리 역사 대신 일본 역사를 배우며 식민지의 청소년으로 성장한 그가 모든 것을 걸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때 나이는 고작 16세였다.
당시의 긴박했던 활동에 대한 물음에 그는 "다 비슷비슷했다"며 덤덤하게 답했다. 그 한 마디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긴장이 특정인의 영웅담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동지들의 '일상'이었다는 무게감이 실려 있다. 자신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는, 시대를 함께 견뎌낸 이들의 묵묵한 연대가 느껴졌다.
모든 활동은 지하 점조직으로 이루어졌다. 낮에는 공장 노동자로 위장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동지들을 규합하며 비밀리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동지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을 이어갔다"고 회고했다. 그가 19세에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른 일 역시, 그 치열했던 투쟁의 기록이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그의 소회는,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었다.
그의 증언을 듣는 내내, 지난해 불법 계엄의 어둠 속에서 광장을 지켰던 날들이 떠올랐다. 선대들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투쟁은, 지치고 절망감이 들 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이었다. 적어도 그분들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더 안전하게 투쟁하고 있지 않은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쳐 윤석열 정권의 퇴행에 맞서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물리적 진압보다 '젖은 장작에 불을 지피는 듯한' 민심의 냉담함이었다. 강 지사와 그 동지들이 겪었을 절망에 비할 바는 아닐터이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부채감이야말로 그들의 정신을 '계승'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통렬한 역사 진단: "왜 나라를 뺏겼는가, 위정자들이 문제였다"
강 지사의 증언은 회고를 넘어 날카로운 역사 분석으로 이어졌다. 그는 우리가 국권을 상실한 근본적 원인을 명확히 짚었다.
"1910년에 한일합방이 되고 내가 1924년에 났습니다. 1945년까지 왜정 밑에서 우리 역사는 없고 일본 역사만 배웠어요."
강 지사는 조선의 위정자들이 서양 문물을 배척하고 쇄국으로 일관했던 것을 패망의 핵심 원인으로 진단했다. 그는 "미국 페리 함대의 출현에도 우리는 서양 세력을 몰아내기에만 급급했다"며 "미리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지 않아 나라를 뺏겨버렸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의 진단은 과거에 대한 질책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저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담고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대단히 우수하며 과학적입니다. 우리 민족이 이런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도, 위정자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겁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교훈이다. 민족의 뛰어난 잠재력이라는 유산을 자각하고, 과거 지도층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의 우리가 시대의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미완의 독립, "젊은 세대가 뿌리 뽑아주길"
평생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해방된 조국의 현실에 대한 그의 소회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강 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친일 세력이 청산되기는커녕 대한민국 기득권의 뿌리가 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을 현재의 내란 사태까지 이르게 한 '제2의 이승만'에 비유했다. 강 지사는 "이명박은 국민이 어렵게 지킨 나라를 팔아먹기 시작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다. 일제에 부역했던 세력과 해방 후 독재에 기생한 세력, 그리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신자유주의 세력은 모두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강 지사에게 '친일 청산'은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강 지사는 '미래 세대'에서 그 희망의 근거를 찾고 있었다.
"어려운 시국에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나서주니 힘이 든든합니다. 이 어둡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역사의 뿌리를, 젊은 세대가 바로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닌, 다음 세대와의 '연대'를 통한 '계승'의 요청이다.
강태선 지사의 존재 자체가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자, '친일 청산'이라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시대정신의 상징이다.
그의 삶이 증명하는 불의에 맞서는 용기와 공동체를 위한 헌신. 세대를 잇는 이 숭고한 연대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받아 미완의 독립을 완성해 나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하고도 엄중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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