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장이 광복 80주년 경축식에서 망발
"광복은 연합국 승리로 얻은 선물…해석 다양해"
선열들 독립운동 역할 폄훼하는 뉴라이트 논리
"일제 때 우리 국적은 일본"…안익태·백선엽 옹호
"1945년 광복 인정하느냐" 질문에 답변 거부까지
광복회 "친일 뉴라이트의 선전포고…즉각 사퇴"
여권 "박선영·안창호·박지향 포함 빨리 물러나야"
사퇴 거부…권오을 보훈부 장관 '해임 건의' 주목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항일 독립정신을 누구보다 앞장서 기려야 할 독립기념관의 수장이 거꾸로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며 독립운동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그것도 광복 80주년 기념식에서 내놓자 독립유공자 단체와 시민사회가 들끓고 있다. 이참에 윤석열 정권이 국가 역사기관 곳곳에 '알박기'로 침투시켜놓은 친일 뉴라이트 인사들을 모조리 뽑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범여권에서 분출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임명한 인물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광복 80주년 경축식 기념사를 하던 중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며 "역사를 이해하는 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다름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역사 전쟁을 끝내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고 통일로 나가자"고 주장했다.
광복을 위해 오랜 세월 피 흘리며 투쟁했던 선열들의 독립운동 의의를 교묘하게 폄훼하며 이를 '역사 해석의 다양성'으로 포장하는 전형적인 뉴라이트 논리를 구사한 것이다. 윤석열이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 선양 단체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6일 임기 3년의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던 김 관장은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주장하고 친일 전력의 안익태·백선엽 등을 적극 비호하며 일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등 숱한 물의를 일으켜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했던 제79주년 8·15 광복절 경축식에는 대다수 독립운동단체와 야권이 불참하고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별도로 광복절 기념 행사를 개최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김 관장은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 이래 37년간 이어오던 자체 광복절 경축식을 처음으로 취소하는 엽기적인 행태까지 연출했다. '1948년 건국절'을 옹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관장은 지난해 8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을 때 "1945년 8월 15일에 광복됐다는 것을 인정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 질의에 "멘트를 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이번에 김 관장이 보란 듯이 또 하나의 망발을 던지자 광복회는 17일 성명을 내고 "김형석 관장의 '해방은 연합국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망언은 모든 독립운동가를 능멸하고 독립운동 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 발언"이라며 "관장직을 더 이상 수행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언급이다. 그는 국가정체성을 훼손하지 말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다른 날도 아닌 광복 80년을 맞아 국가 정체성 1번지인 독립기념관에서 대중들에게 '친일 뉴라이트 사관'을 명확히 한 것은 있을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말"이라며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친일 뉴라이트의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 국가공무원의 품위 손상 문제이고 공직기강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또 "김형석 관장은 지금까지 강연, 저서 등을 통해 역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해왔다. '광복절을 정부 수립의 해인 1948년으로 하자'며 '1948년 광복절론'을 펼치고 뉴라이트의 이승만 건국론에 동조해왔다"면서 "관장 응모 과정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일제의 한반도 강탈을 합법화하는 '일제 시기 한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강변한 인물"이라고 그간 행적을 열거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 정의를 분명히 한 새 정부가 들어선 이때 김형석의 망언과, 망언 현장에 그와 함께한 공직자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국가보훈부 등 관련 부처와 사회 일각에서 독립 역사를 부정하고 정체성을 훼손하는 세력이 활개 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광복회는 뉴라이트 사관이 팽배에 있는 국가 역사기관에 대한 종합적인 감사가 필요하다"며 정부에 다음 사항을 촉구했다.
1. 대한민국 정체성을 좀 먹는 김형석 독립기념관 관장에 대한 즉각적인 해임과 감사, 그리고 수사에 착수할 것.
2. 이번 김형석 관장의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그의 경축식을 옹호, 지원하고 보도자료를 통해 김 관장의 논리를 강변한 국가보훈부 관계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경위 파악과 감사에 착수할 것.
3. 국가의 녹을 먹는 김형석 관장의 지속적인 망언과 관장으로서의 직무수행 불능 상태와 관련해 독립기념관 감독기관인 국가보훈부 장관이 명확한 입장을 국민에게 밝힐 것.
여당과 진보 정당들도 한목소리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김형석이 자신의 궤변 비판에 반성은커녕, 광복절 기념사는 광복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반된 시선을 지적하고 국민 통합을 강조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한마디로 요설(妖說)"이라며 "이런 X 소리에 대꾸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이런 인간이 나대는 세상이 되었는지"라고 개탄했다.
이어 "백 번을 양보해서 김형석 당신이 민간인이라면 혹 '그럴 수도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왜곡하는 자들에게 독립운동의 숭고함을 앞장서서 설파해야 할 독립기념관장이다. 중립을 가장해 현란하게 혀를 놀리며 독립 투쟁을 폄훼하려면 절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면서 "당신 같은 자는 반드시 파면시켜 역사의 기록에 남겨야 한다. 정부는 이 자를 최대한 신속하게 파면시킬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나라를 팔아먹어야만 매국노가 아니다. 이런 자에게 국민 세금을 단 1원도 지급할 수 없다. 지난해 윤석열에 의해 지명된 김형석이 한 일은 독립운동 부정이 전부"라며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매국을 방치한다면 누란의 위기 때 국민께 어떻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요구하고, 누가 헌신하겠는가? 법적 권리 운운하며 세 치 혀를 놀리는 김형석에게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낀다. 순국선열을 욕보인 자는 이 땅에 살 자격조차 없다"고 거듭 분노를 표시했다.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 나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포함한 뉴라이트 친일 인사들이 하루빨리 퇴진해야 한다는 당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문 원내대변인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내란 수괴 윤석열이 임명한 뉴라이트 친일 인사로 부적절한 망언을 일삼았다"며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할 친일 인사에게 국민 혈세로 임금이 지급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이 공분하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는 더 이상 역사 왜곡을 통한 친일 매국 망언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에 의해 임명돼 아직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박선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장,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 뉴라이트 친일 및 역사 왜곡 세력들은 하루빨리 스스로의 거취를 결정하기 바란다"며 "그것만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고 내란의 완전한 종식이라는 국민적 열망을 충족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윤재관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뉴라이트 역사관을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인정하자는 이 자의 입을 방치하는 것은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선열들에 대한 모독이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뉴라이트라는 가면을 쓰고 친일 매국을 정당화하는 자들은 모두 '뉴(New) 을사오적'일 뿐"이라며 "김형석을 비롯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에서 버젓이 날뛰고 있는 뉴라이트 친일 매국노들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뉴 을사오적'들을 뿌리째 뽑아내겠다"고 조국혁신당의 단호한 방침을 밝혔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어디 김형석뿐인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이미 윤석열 내란 정권이 곳곳에 박아놓은 친일 뉴라이트 인사들의 일제 사퇴를 지엄하게 촉구한 바 있다"면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박이택 독립기념관 이사,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등을 거명한 뒤 "이들 모두가 즉각 자리에서 내려와 우리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80주년 광복절 기념"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김 관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지만 그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법적으로 보장됐고 국가로부터 받은 임기를 열심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김 관장의 임기는 오는 2027년 8월 5일까지다. 이 때문에 민주당 이정문 의원은 국가보훈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독립기념관장 해임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독립기념관법 개정안을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바 있다. 권오을 신임 보훈부 장관도 이 법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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