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 낙성대연구소 소장을 이사로 임명
"독립운동 논문 한 편 쓴 적 없어"…실제 경제학자
보훈부 선발 과정 의문…추천위선 심사 배제 요구
22일 이사회 개최하려다 강한 내부 반발에 무산
이승만과 건국절 비판해온 한시준 관장 임기 종료
후임에 뉴라이트 기용 우려…윤 정부 곳곳 포진
'이승만 띄우기'의 연장선상인가.
'뉴라이트싱크넷' 운영위원장 출신 김영호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 차기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 수구‧친일 성향의 뉴라이트 인사들을 요소요소에 포진시켜온 윤석열 정부가 이번엔 항일 독립정신을 기리는 독립기념관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한국 사회의 전방위적 우경화를 유도해온 현 정권과 보수세력의 일련의 작업과 맞닿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가보훈부 산하 독립기념관 신임 이사에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소속된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박이택 소장이 임명되자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독립기념관 전‧현직 이사들도 나섰다. 이들은 21일 집단 성명을 내고 박 신임 이사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하는 단체 소속인 데다 독립운동과 관련해 단 한 편의 논문도 쓴 적이 없다면서 국가보훈부가 이사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명에는 현직 이사인 김갑년·육경애·윤목, 전직 이사인 김은주·이만수·정상현·최인혁 등 총 7명이 참여했다. 김은주 이사 등은 지난달 임기가 끝났고, 이사 공채에 지원한 박 소장이 이들의 후임 중 한 명으로 지난 1일 임명된 것이다. 이들 전‧현직 이사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일제는 조선을 수탈하지 않았다' '강제징용은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들은 성노예가 아니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없다'는 주장은 독립기념관의 목적과 상반되는 활동이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박 소장이 자신은 <반일 종족주의> 저술에 관여하거나 참여한 바가 없다고 해명한 데 대해선 "당시 연구소 연구위원이었던 박이택은 어떤 역할을 했느냐. (식민지근대화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왜 소장이 됐느냐"면서 "전쟁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고 푸틴도 히틀러도 전쟁범죄에서 자유로운가?"라고 되물었다. 박 소장은 전날 보훈부를 통해 "저는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나 위안부 강제성 부정, 독도를 한국 영토로 볼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등 <반일 종족주의> 저술에 관여하거나 참여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들 전‧현직 이사는 "(박 소장이) 독립운동과 관련해 한 편의 논문도 쓴 적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통상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8명 중 4명은 독립유공자 유족, 4명은 독립운동 관련 전문가로 구성되는데 박 소장은 이 같은 임명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박 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로 독립운동 분야에 관한 전문성은 없다.
박 소장의 선발 과정이 미심쩍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지난해 10월 열린 임원추천위원회 당시 추천위원 5명 중 4명이 박 소장의 학술적 이력을 문제 삼아 심사 배제를 요구했지만, 당시 보훈부 보훈선양국장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천위는 박 소장에게 매우 낮은 점수를 주고 일단 3배수의 이사 후보군 15명에 포함시켜 보훈부 장관에게 올렸다고 한다. 이들 후보의 점수와 순위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박 소장이 신임 이사 5명 중 1명으로 낙점을 받았다. 전‧현직 이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절차"라고 했다.
독립기념관은 독립기념관법 7조에 따라 관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이사와 감사 1명을 둘 수 있다. 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독립기념관장과 광복회장, 여야 국회의원, 보훈부 담당국장, 감사 등 7명이 당연직이며, 나머지 이사 8명은 독립유공자 후손과 학계 관계자 등 외부 인사 중에서 임원추천위가 복수로 추천하면 보훈부 장관이 임명한다. 독립기념관은 기존 이사 5명의 임기가 만료되자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지난 1일 박 소장을 비롯한 5명을 신규 이사로 임명했다. 임기는 2년이다.
앞서 독립운동 선양단체인 광복회도 '뉴라이트 출신 독립기념관 이사 선임에 대한 입장'을 통해 "어리석은 인사를 재고하길 바란다"며 "즉시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복회는 "학문의 자유가 개인의 영역에 속하긴 하지만 다른 기관도 아니고 독립운동의 국가 표징인 독립기념관 이사에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고 일본의 입장에 서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하는 연구소 소장을 임명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이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로, 독립운동가 후손 일부가 이사로 있는 이사회에서 일을 함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성토했다.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운강 이강년 선생의 후손 김갑년 이사도 별도의 성명에서 "박 신임 이사가 소장인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이름은 경제연구소이나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입장"이라며 "이는 독립기념관의 목적과 상반되는 활동이고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보훈부는 독립기념관의 사명과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독립운동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보장하기 위해 박 이사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가 소속된 단체로 국민적 비판을 받았던 곳"이라며 "낙성대연구소 출신 저자들은 책을 통해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볼 학술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주장까지 하고 대한민국 헌법과 역사, 국가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했다. 이런 집단을 이끄는 사람을 독립기념관 이사로 임명하다니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이기를 부정하려고 하느냐"고 개탄했다.
박 대변인은 "윤석열 정권에 묻고 싶다. 위안부의 강제성이 없다는 주장이나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는 주장에 공감해 박이택 소장을 임명한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순국선열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면서 "당장 보훈부 장관에게 독립기념관 이사를 교체하도록 지시하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안팎으로 들끓는 상황에서 독립기념관은 22일 신임 이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차기 독립기념관장 선임 방안과 신임 이사진 상견례 등의 안건을 처리하기 위한 이사회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광복회 등 기존 이사진이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독립기념관 측이 이날 오전 겨레누리관 회의실에서 한시준 관장 주재로 이사회를 열려고 하자 이종찬 광복회장 등은 회의에 앞서 신상 발언을 통해 박 소장의 이사 임명을 반대하고 임명권자인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이런 입장을 보고한 뒤 추후 이사회를 다시 여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종찬 회장은 "이곳은 한국학연구소가 아니라 독립운동 정신을 선양하는 독립기념관"이라며 "여기에 걸맞은 이사진이 구성돼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데 국가보훈부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고 보훈부 측을 질타했다. 이어 "관련 인사는 스스로 생각해보고 용퇴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길 바란다"면서 "장관께 회의 개최와 이사진 임명 재고를 강력하게 말씀드려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다른 이사들도 대부분 동의하면서 회의는 종료됐다. 박 소장은 회의에 참석했지만, 다른 이사들이 신상 발언을 하기에 앞서 회의장 밖으로 나가 달라고 하자 순순히 응해 퇴장했다. 박 소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사직을 사임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사임할 생각은 없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해임이나 파면된다면 그 경우에는 제가 이사직을 수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수용하겠지만, 자발적으로 사임한다든가 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독립기념관 이사 지원 배경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가를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식민시대의 사회 경제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풍부한 지적 소양을 통해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20세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꼭 역사학자만이 아니고 경제학자라든가 정치학자라든가 사회학자라든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기념관 안팎에선 차기 관장에 누가 선임될지가 더 큰 문제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사학자 출신인 한시준 관장은 지난달 21일로 3년 임기가 만료된 상태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하고 단국대 사학과 교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백범학술원장 등을 역임한 한 관장은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과 이승만 전 대통령 미화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윤석열 정부가 그간 보였던 노골적인 친일 기조와 밀어붙이기 행보로 볼 때 후임 독립기념관장에는 뉴라이트 인사를 기용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박 소장을 이사로 밀어 넣은 것도 그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이사회 개최가 무산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취임했던 한 관장이 당분간 직무를 계속 수행하게 됐다.
박 소장이 책임자를 맡고 있는 낙성대경제연구소는 1987년 안병직 서울대 교수와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를 주축으로 설립된 사설 연구기관으로 뉴라이트 세력의 이론적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2019년 출간돼 큰 물의를 일으켰던 책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공동 저자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 이우연 연구위원, 정안기 연구위원, 주익종 이승만학당 이사 등이 이 연구소 소속이었다. 이영훈 전 교수는 지금도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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