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안전 지키고 산재 근절하자는 의지와 발언

촛불혁명 뒤 치솟은 노조 조직률과 반동의 시도

특히 건설 현장서 극적으로 나타난 전진과 퇴행

미국 노동운동 새로운 물결과 경험에서 배워야

빛의 혁명 이후 찾아온 노동운동의 기회 잡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8.12.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8.12. 연합뉴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산업재해를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사람 목숨을 작업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닌가", "(산재 다발 기업은)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어야", "산업재해를 원천적으로 막으려면 정말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 "입찰 자격을 영구 박탈하는 방안과 금융 제재, 안전 관리가 미비한 사업장을 신고할 경우 파격적인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

'일하러 나간 사람이 죽어서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면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산업재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와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발언 중에서도 가장 반갑고 인상적인 발언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런 발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영훈 노동부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혼자 대응할 수 없기에 그러려면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역량이 되게 중요한데, 노조 조직률은 좀 올라가고 있나요?"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지적인데, 노동 문제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쳐서 함께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정책과 제도도 이것을 뛰어넘는 중요성을 가질 수는 없다.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그 점에서 우리는 '2016 촛불혁명'이 낳은 결과를 돌아보며 이번 '2025 빛의 혁명'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를 비교해 볼 수 있다. '2016 촛불혁명'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투쟁이었고 노동운동도 그 중요한 일부였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이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낳았듯이, 촛불혁명도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촛불의 성과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새 정부는 박근혜 정부처럼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적대하고 탄압하지 않았다. 이 속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은 그 후 5년간 10%에서 14%로 크게 높아졌다. 세계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는 가운데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이를 추동한 것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비정규직과 청년·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노조 조직률이 더 획기적으로 높아지려면 이런 조직화의 물결이 중소기업과 민간부문까지 확대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대자본과 기득권 카르텔이 반대하고 우려하는 방향이었다. 따라서 2022년에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기득권 우파의 권력 탈환은 노동자들이 노조로 뭉쳐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중단시키고 그 방향을 역전시키기 위한 '반격'이기도 했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2022.12.9.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2022.12.9. 연합뉴스

이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곳은 건설 현장이다. 알다시피 건설업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고, 건설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다. 건설 현장은 대부분 일자리가 저임금의 불안정한 비정규직과 일용직이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건설 현장에서 나올 정도였다. 

건설노조는 이 끔찍한 현장을 바꿔온 주역이었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 되고 함께 싸우면서 일어난 변화는 중요했다. 임금이 인상되고, 8시간 노동제가 도입되고, 주휴수당과 퇴직금이 지급됐다. 임금 체불이 줄었고, 안전장치도 없는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 건설노조 조합원 수는 특히 문재인 정부 5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어떤 통계에서는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나온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 정책과 공격이 건설노조에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건설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건폭'이라고 낙인찍었다. '조폭처럼 행동하며 사업주들을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하고 있다'라고 했다. 건설노조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거의 매일같이 체포하고 기소하고 구속했다.

건설노조는 조직이 마비되다시피 했고, 조직률은 윤석열 3년 동안만 30%가 넘게 줄었다. 건설 현장에서는 탈의실도 없이 흙먼지 가득한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옆에서 동료가 떨어져 죽어도 말 한마디 못 하며, '노가다'라고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어두운 과거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빛의 혁명'과 이어진 정권 교체가 이런 끔찍한 역주행을 중단시켰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2022.7.19. 연합뉴스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2022.7.19.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는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며 '노조 조직률은 좀 높아지고 있냐'고 묻고 있다.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피해자이면서 잘못된 현실을 바꿀 주체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런 변화에 국민의힘은 '노조 편향적인 기업 옥죄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면허를 취소하면 10대 건설사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따라서 지금 진보 진영과 노동운동의 일부 사람들처럼 '결국에는 자본가 정부이니까 두 정부는 별로 다를 게 없다', '이런 민주당 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려는 사람들도 배신자다'라는 식의 태도는 전혀 맞지가 않다. 지난 구체적인 과정이나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거나 외면할 때만이 이런 공허하고 추상적인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아마존, 스타벅스에서 처음으로 노조가 만들어지고,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의 파업을 벌이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 것은 바이든 정부 때였다. 바이든 정부가 공개적으로 "친노조 대통령"을 자처하며 노조 조직화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것은 바이든 정부가 대단히 진보적이거나 알아서 선물해 준 것이 아니다.

미국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그런 조건을 이용해서 공세적인 노조 조직화에 나섰다. 새로운 물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숀 페인(Shawn Fain) 전미자동차노조UAW 위원장은 UAW 역사상 최초로 조합원 직선 투표로 선출됐고 노조의 민주적 운영, 재정의 투명성, 밀실 협상이 아닌 공개 협상을 강조하며 노동자들에게 지지와 투쟁을 호소했다.

2023년 9월에 미국에서 벌어진 GM, 포드, 스텔란티스 ‘빅3’ 자동차 노조의 동시 파업은 이런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88년 만에 벌어진 역사적 동시 파업이었고, 바이든 대통령도 직접 노조 집회에 참여해서 파업을 응원했다. 파업은 승리로 끝났다. 이것은 정권의 성격과 태도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노동운동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미시간주 벨빌의 GM 물류 센터 바깥에서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9. 26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미시간주 벨빌의 GM 물류 센터 바깥에서 파업 중인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9. 26 [AFP=연합뉴스]

대통령의 입에서 전투적 노동운동가가 할법한 발언들이 나오고 노동운동의 오랜 과제인 노란봉투법은 통과되고 있다. 이것은 '빛의 혁명'에 함께 한 노동운동에 다가온 기회가 명백하다.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맹점은 노조로 조직된 10%의 노동자와 울타리 밖 90% 노동자의 괴리에 있다. 이 분열과 격차를 만든 장본인들이 이것을 이용해 노동운동을 공격하고 이간질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운동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대기업과 정규직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불안에 떨며 자기 것을 지키기 바쁘고, 조직력이 부족한 노동자들은 법적 다툼이나 장기적이고 초인적 투쟁에 매달려야 했다. 이것을 넘어서려면 울타리 밖의 90%의 노동자들에게도 노조라는 방패와 무기가 주어져야 한다. 새 정부의 태도와 노란봉투법은 그 중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의 법적 해석과 적용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로펌만 돈벌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자본과 국가에 혼자 대응하지 말고 뭉쳐야 한다'라는 상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함께할 대중적 노동운동, 노조 조직화의 거대한 물결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때 4% 증가한 노조 조직률이 윤석열 정부 때 다시 도루묵이 된 것을 돌아보며 이번에는 30~40% 증가와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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