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탈옥' 뒤 계속되는 분노와 공포의 시간
더 강력한 투쟁 방식과 전술 필요하다는 주장들
정치 총파업 필요하다는 주장의 당위성과 현실
원대한 목표와 부족한 역량의 틈새 메울 필요성
조직과 미조직,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상호 작용
윤석열은 구속되지 않았고, 심우정은 항고하지 않았고, 전광훈은 처벌받지 않았고, 최상목은 탄핵되지 않았고, 국민의힘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아직도 판결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답답하고 열 받아서 속이 문드러지고 있다. 지난 일주일을 통해서 많은 것들이 분명해졌다.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들과 이 나라의 법조 카르텔의 꼭대기에 있는 자들의 생각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과 수단은 매우 달랐지만 '윤석열 석방'이라는 목적은 같았다. 훨씬 위험한 것은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실제 목적을 이루었고, 처벌될 리도 없다고 믿는 후자의 인간들이다.
이번에 윤석열 석방을 보면서 우리가 느낀 것은 물론 분노였지만, 공포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고 손발이 떨렸다. 계엄, 군정, 독재, 학살 …. 지금 윤석열과 공범들은 앉아서 헌재 판결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군사적 반란을 준비하고 조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윤석열은 망상에 빠져있다'라고 했지만, 기득권 카르텔이 그렇게 순순히 양보하고 물러날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도 '망상'이 아니었을까? 윤석열은 석방되었고, 전광훈을 수사하던 경찰은 좌천 발령됐고, 내란 당시에 국회를 봉쇄하고 무력화시키는 일에 적극 가담한 자들은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인사에서 대거 일선 경찰서장으로 전진 배치됐다.
기득권 카르텔은 8년 전의 경험에서 배웠다. '박근혜의 사과, 계엄 검토만 하고 중단, 헌재 판결의 수용 등이 모조리 잘못이었다'라는 '교훈'이다. 그래서 저들이 그동안 준비한 무기는 '계엄을 강행한 윤석열, 극우 선동가들, 광화문을 장악한 태극기부대, 이재명포비아, 부정 선거론을 비롯한 각종 음모론' 들이고 그 힘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회, 행진, 단식, 농성을 넘어서서 더 강력한 투쟁 방식과 전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일부 단체(예컨대 '노동자연대')는 '즉각 총파업'(전면 총력 파업) 명령'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 윤석열 퇴진 운동의 지도부가 '민주당과 손잡고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와 연립 정부 수립에 매달리느라 강력한 투쟁을 회피한다'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바탕에 있는 절박한 심정, 더 강력한 투쟁에 대한 기대 등은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지만, '지금 운동의 지도부가 당장 충분히 실행 가능한 민주노총 총파업을 가로막고 있다'라는 식의 이러한 주장은 과도하고 별다른 근거가 없어 보인다. 노동운동의 오랜 격언처럼 '총파업은 언제든 호주머니에서 맘대로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칼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 이 강력한 칼을 꺼내서 일찌감치 윤석열 정권을 타도하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적인 정부를 건설했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동참하는 총파업은 조직력과 투쟁력이 충분히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안 그러면 말뿐인 '총파업'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이 충분히 준비돼 있는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소극적인 지도부가 투쟁을 제약하는 측면이나 사례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 있고 날카로운 비판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은 당장 총파업을 할 의지와 능력이 충분한데 지도부가 그것을 막고 있다'라고 지금 상황을 보고 있다면,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윤석열의 12.3 쿠데타 직후에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조건이 나았다. 난데없는 계엄 선포와 2차 계엄 위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충격과 분노가 대단했고, 조중동도 윤석열에게서 등을 돌렸고 극우 대중운동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때였다. 주류언론들도 함부로 민주노총의 투쟁을 비난하기 어려운 분위기였고, 따라서 여론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불리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대규모 집회 참가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총파업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에 파업은 주로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며칠 동안 주간과 야간 2시간 정도씩 벌어졌고 참가자는 3만~7만 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의 10%에도 이르지 못했던 셈이다. 물론 이것은 깎아내릴 일이 아니고 출발로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이 왜 아직 위험을 감수하고 정치 파업에 동참할 정도로 충분히 높지 않은지, 그것을 가로막는 조건이 무엇인지, 윤석열 정권 3년과 탄압이 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 총파업을 통한 승리'라는 원대한 목표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현재 역량을 직시하는 일이다.
이것을 통해서 목표와 현재 사이의 틈새를 메울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총파업을 하자'고 끝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더구나 투쟁의 발전 과정은 항상 정해진 공식과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언제나 필요한 것은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조건을 면밀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가장 적절한 투쟁의 과제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돌아보면 지난 윤석열 정권 3년 동안 화물연대, 건설노조 등에 대한 권력의 탄압은 무지막지했다. 민주노총은 '간첩의 소굴'로 마녀사냥당했고 노조 조직률, 임금 인상률, 파업 건수와 참가자 수 등이 모두 후퇴했다. 하지만 윤석열의 쿠데타 실패 이후에 이제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투쟁의 승리는, 작업장에서 노조 조직화와 경제투쟁, 총파업의 자신감을 가져오고 고무할 것이다. 이것이 독일의 여성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대중파업론>에서 '조직 대중과 미조직 대중,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서로 갈마들고 상호 작용하면서 발전한다'라면서 지적했던 것이고, 8년 전 박근혜 탄핵 투쟁의 승리 이후에 벌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과 정권 교체 이후에 노조 조직률은 지난 10년을 전후해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당장 '총파업을 명령하고 결의하라'라고 다그치는 것보다는 더욱더 많은 노동조합원과 현장 노동자들이 광장에 나오도록 조직하고 호소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은 거리의 자발적인 청년, 시민들과 서로 자신감과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낳을 힘은 얼마든지 윤석열과 내란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찰은 흔히 밑바닥 대중과 거리의 정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정보가 집중될 뿐 아니라 그것을 막아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3 직후에 조지호(경찰청장)-박현수(경찰국장)는 설사 '계엄이 성공했어도 민란이 일어나 윤석열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렇다. 이 나라 민중은 목숨 걸고 민주주의를 지켜 왔고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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