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임단협 정책 마련 나서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필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일하면서 2001년 가을,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사업장을 대상으로 비정규 노동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지금은 LG디스플레이로 불리는 LG-필립스LCD 등 영남권에 소재한 금속노련 사업장을 조사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당시 노사관계 공부를 막 시작했던 필자는 ‘하청’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사내하청’은 무엇인지 의문을 가졌다.

“IMF 외환위기 와중에 확 퍼졌어요. 전에는 식당, 청소나 경비에서만 썼었는데 지금은 라인까지 다 들어와 있어요. 이게 IMF 때 인력 구조조정하려고 만든 거예요. 사무직에 있던 이사님, 부장님들 명퇴시키고 (사내)하청업체 사장으로 3년 정도 일하다가 그만두는 거죠. 관리직 구조조정을 쉽게 하려고 확산시킨 겁니다.”

사내하청은 단순 구조조정 방법 아닌 구조적·역사적 문제

필자가 당시 실태조사 과정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2002년에는 민주노총 금속연맹(현 금속노조의 전신) 산하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포항제철, 대우조선, 한진중공업 등 국내 굴지의 제조 대기업 현장을 조사하면서, ‘협력사’, ‘파트너사’ 등 이름은 달랐지만 사내하청 형태의 비정규직이 만연해 있음을 확인했다. 사내하청이 단지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을 넘어서 제조업 현장에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부터 조사·발표하기 시작한 고용형태 공시제 자료를 보면, 제조업에서 소속 외 노동자, 즉 자사 직원이 아닌데도 자사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율은 직접고용 노동자 대비 20%를 넘고 있다.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해당 사업체에 직접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일본에서는 ‘구내(構內)하청’, 미국에서는 ‘in-house subcontracting’이라고 불리는 사내하청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화 초기 흔히 나타난 비정규 고용 형태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특수 숙련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자기 회사에는 없는 경우에 외부 하청, 즉 다른 사용자가 고용한 노동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늘 상시 보유, 즉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마다 활용하는 것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에서 십장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필요한 노동력은 직접 고용한다’는 고용-노사관계 원칙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내하청은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주요 선진국 산업 현장에는 남아 있다. 일본도 한국과 유사하게 조선·철강 업종에서 ‘구내하청’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contract worker’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은 그보다 더 심하다. 왜일까?

 

HD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노조가 25일 울산지법 앞에서 사측의 불법파견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울산지법은 이날 사측의 불법파견을 인정해 전직 대표이사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2024.6.25 연합뉴스
HD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노조가 25일 울산지법 앞에서 사측의 불법파견 인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울산지법은 이날 사측의 불법파견을 인정해 전직 대표이사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2024.6.25 연합뉴스

사용자인 현대차를 사용자라 부를 수 없는 사내하청 노동조합

“현대차 원청을 어떻게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느냐, 이게 관건이죠.”

2003년 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한 간부가 했던 말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출범을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기아자동차, 대우조선 등 제조 대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조직화가 잇따라 이루어졌다. 당연히 사장을 상대로 임금 등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사내하청업체 사장은 목장갑·안전화 지급 같은 사소한 사안 외에는 결정권이 없었다.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 사장님이 할 수 있는 것은 근태관리와 인사관리 외에는 없다. 인당 도급단가가 정해진 상태에서 도급계약이 체결되기에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의 임금인상, 복리후생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내하청 업체는 현대차 노무관리 부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원청인 현대차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했다. 노동법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임금, 단체교섭 요구와 쟁의행위는 근로계약 당사자인 사용자에게만 요구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닌데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노동법은 사용자인 현대차를 사용자라 부를 수 없도록 강제한 셈이다.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은 또 다른 구조적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불법파견 노동이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에는 최대 6개월까지만 파견노동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6개월이 넘는 파견은 모두 불법이며 당시 파견법은 불법파견인 경우에 파견노동자는 사용사업체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법으로만 보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주와 사용주는 사내하청 업체 사장이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은 법상 고용주와 실제 사용자가 다르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하는 일은 현대차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것이었고 현대차 생산라인은 현대차가 관리하는 작업장이기에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작업장에서 노무관리, 즉 노동통제는 현대차가 행사해 왔다.

파견법 근거한 정규직화 요구를 20억 손배소송으로 맞선 현대차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사내하청 업체 사장이 현장 관리라는 명분으로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을 세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사내하청 노동은 파견노동과 동일하게 법상 사용자와 실제 사용자가 분리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자 불법파견 관계라는 점이 명백했다. 현대차는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무시·외면한 채 사내하청 노동자 사용에 따른 편익을 누려 왔다. 그것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반값으로 말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을 이유로 현대차 원청에게 정규직화 요구를 제기한 근거이다.

“이것은 명백한 불법 파견입니다. 파견법 6조,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해서 현대차가 직접고용하도록 우리 노동부에서는 시정 조치를 내릴 예정입니다.”

2004년 여름, 사내하청 노동을 주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노동부 사무관이 필자의 발표를 듣고서 한 말이었다. 2004년 들어서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가 중심이 되어 불법파견 노동부 진정과 현대차에 대한 파견법 위반 고소·고발이 이루어졌다. 노동부의 시정조치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면피성 대응과 불법파견 여부를 법정에서 확인하겠다며 버텼고 파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결국 현대차를 상대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민사 소송, 즉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했고 지난한 법정 싸움 끝에 2010년 여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비록 개별적인 민사소송이었지만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요구가 정당한 요구라는 점을 법원이 확인해 준 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관리직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2010. 11. 17.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울산 3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관리직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지키고 있다. 2010. 11. 17. 연합뉴스

현장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지만 현대차는 비정규직 지회와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교섭 요구를 외면했다. 하청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며 불법파견 정규직화 교섭을 거부한 것이다. 급기야 2010년 11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 농성을 벌였다. 원청인 현대차는 관리직과 사내하청 노조에 반감을 갖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를 동원해 파업을 진압했고 불법파업으로 27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며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와 파업 참여 노동자를 대상으로 2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요구는 특별채용, 신규채용이라는 편법으로 현대차가 수용했지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6개월 후면 중소규모 사업장도 바뀔까?

지난 8월 24일, ▲사용자 개념 확대(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 ▲노동조합의 소극적 요건 삭제(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노동쟁의 개념 확대(노동조합법 제2조 제5호) ▲손해배상책임 제한(노동조합법 제3조·제3조의2) 등을 골자로 하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필자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을 길게 쓴 이유는 노조법 개정 요구가 단기간에, 즉흥적으로 제기된 요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사내하청 노동자에게는 절실하면서도 당연한 요구였지만 20년 넘게 무시되어 왔다. 경총 등 경영계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무분별한 요구와 파업이 난무할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역으로 지난 수십 년간 불비한 노동법 조항의 이면에 숨어서 사내하청 노동을 활용해 이익을 누려왔다는 것을 반성하는 것이 먼저이다. 이번 노조법 개정은 지난 탄핵심판에서 인용된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이제 6개월 후 개정된 노조법이 시행되면 원청 사업체를 대상으로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임금,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실제 단체교섭 효과가 쌓이면 노사관계에서 패턴효과가 작용하면서 중대규모 사업장 내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조합의 노사관계가 일정하게 정형화된 양상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대공장 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동조합 결성도 일종의 규모의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시화공단처럼 중소규모 사업장 내 일용파견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어떻게 해야 할까?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2025.8.24 연합뉴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2025.8.24 연합뉴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내하청 업체 사장을 상대로 교섭해 봐야 실익이 거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듯이 중소규모 사업장 내 소수 일용파견 노동자 또한 사용사업체를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다단계 하청 구조의 최말단 소규모 사업체이기에 사용사업체가 노동자, 나아가 노동조합의 요구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 이번에 개정된 노조법 2조 내용이다.

전체 가치사슬 구조 속에서 노동조합이 짊어져야 할 숙제

노동법 개정 취지를 반영·확대해 전체 가치사슬 구조를 바라보는 노동조합의 임단협 교섭 전략이 필요하다. 노조법 2·3조 개정이 노동조합에게는 20년 넘는 숙원이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번 법 개정이 사내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는 직접적으로 효과를 내겠지만 더 크게 전체 다단특수고용노동자계 하청구조에 놓여 있는 노동자에게 노조법 개정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임단협 정책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이 노동조합에게는 시작일 뿐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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