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중국 AI역량 미국 추월 계기 될 것”우려

트럼프, 인텔 CEO 만난 뒤 태도 바꿔 거래 합의

미국, 한국 대만 일본 등에도 대중 수출금지 압박

트럼프 정부와 손잡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

명백한 위헌, 다른 제품 기업에도 확대 적용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백악관에서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아사히신문 8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백악관에서 만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아사히신문 8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엔비디아와 AMD(Advanced Miro Device) 등 자국 반도체 대기입들이 중국에 첨단반도체를 수출할 수 있게 허용하는 대신 판매수익의 15%를 미국정부에 내도록 하는 거래(deal)에 합의했다고 <로이터 통신>과 <BBC>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최고경영책임자)와의 거래 내용에 대해 얘기하면서 “미국을 위해 (판매액의) 20%를 내라고 했으나, 그는 15%로 해 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면서, 수출을 허가한 칩이 엔비디아의 새로운 칩 블랙웰의 성능을 30~50% 낮춘(scaled-down) 시대에 뒤떨어진(old) 버전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다.

 

지난 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도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BBC 8월 11일
지난 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보도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BBC 8월 11일

엔비디아의 차세대 첨단 칩 H20, 트럼프 “낡은 것”

그러나 안보 전문가들은 문제의 엔비디아 반도체 칩(H20)이 중국의 AI 능력을 가속적으로 높일 잠재력을 가진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H20은 2023년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수출 규제 조치 뒤 특별히 중국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차세대 첨단 GPU 칩 축소판(scaled-down version)이다.

지난 5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 최첨단 AI 칩인 이 새로운 칩을 상당히 싼 가격으로 출시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엔비디아는 해당 칩의 존재 여부나 미국 내 거래 제품과의 성능 비교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3월에 공개한 미국 내 판매용 플래그십 버전 블랙웰 칩은 이전 모델보다 처리속도가 최대 30배 더 빨랐다.(<로이터> 8월 11일)

전문가들 “중국 AI역량 미국 추월하는 계기 될 것”

지난달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20명의 보안 전문가 그룹은 엔비디아 H20 칩의 최대 구매자는 중국의 민간 기업이지만, 이 칩이 군에서도 사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AI 추론에 최적화한 칩은 단순히 소비자 제품이나 공장 물류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율 무기 시스템, 정보 감시 플랫폼, 그리고 전장에서의 의사 결정의 신속한 전개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정권 때 국가안보회의(NSC) 기술 및 국가안보담당 이사를 지낸 사이프 칸은 "엔비디아의 주력 칩을 소형화하더라도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금액을 투자하고 구매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미국의 AI 칩 해외 수출을 엄격히 제한했던 그는 "이는 중국이 AI 역량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기업 수익 15% 받고 수출 허가 “전례없는 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의 부사장 겸 수석 분석가 찰리 다이는 수출 허가를 조건으로 중국수출용 칩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넘기기로 한 합의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정부는 AI용 고성능 메모리 칩과 첨단 반도체 장비들이 중국 군수품 개발에 이용된다는 안보상의 이유로 2022년부터 중국에 대한 수출을 엄격히 규제해 왔다. 중국의 AI 개발을 억제해 미국의 AI 기술패권을 유지하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진 규제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지난 4월 엔비디아의 이 ‘H20’과 AMD의 ‘MI308’처럼 중국시장을 겨냥해 성능을 약화시킨 칩들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미국, 한국 대만 일본 등에도 사실상 대중 수출금지

미국정부는 한국과 대만, 일본에 대해서도 AI용 메모리 칩이나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들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 7월에 트럼프 정부는 갑자기 중국에 대한 이들 제품의 수출을 허가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지난 8일 중국에 대한 수출 허가증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이번에 다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허가해 줄 테니 대신 중국에 대한 수출로 얻은 수익의 15%를 정부에 ‘상납’하라고 압박하기에 이른 모양새다.

엔비디아는 H20이 중국 수출 규제 대상이 된 뒤 올해 2~4월에만 최대 55억 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다시 수출 허가를 받기 위해 지난 몇 개월 간 미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왔다. 지난 주 언론은 젠슨 황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인텔 CEO 만난 뒤 태도 바꿔 거래 합의

트럼프 대통령과 엔비디아 및 AMD 간의 합의는 11일 트럼프가 이들 두 회사의 경쟁사인 인텔의 CEO 립부 탄을 만난 뒤 이뤄졌다. 립부 탄은 펫 겔싱어가 지난해 경영부진 책임을 지고 인텔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올해 3월 새 CEO가 된 인물로,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은 그가 중국 기업 투자하는 등 중국과 관련이 있고 반도체 설계 지원 소프트 전문 ‘케이든스 디자인 시스템’의 대중국 수출규제 위반에도 관여했다고 공격했다. 그런 립부 탄에게 지난 7일 즉각 사임하라고 했던 트럼프는 나흘 뒤인 11일 돌연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 만난 뒤 “매우 흥미로운 만남”이었다며 태도를 바꿨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탄이 자신의 각료들과 얘기한 뒤 “다음 주 중에 나에게 제안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인텔은 트럼프와 탄이 “미국의 기술 및 제조 분야 리더십 강화에 대한 인텔의 의지에 대해 솔직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나눴다”고 했고, 탄은 자신이 중국군과 관련된 분야에 투자했다는 의혹 등은 “잘못 된 정보”라고 반박했다. (<BBC> 8월 11일)

트럼프 정부와 손잡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

정황으로 보건대, 다음 주에 탄이 트럼프에게 할 것이라는 제안 역시 15% 상납을 조건으로 인텔에게 첨단 반도체 수출을 허가해 주는 내용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처럼 이들 상호 경쟁적인 회사들과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 허가와 15% ‘수수료’ 납입으로 연결돼 있다. 상납 수수료(돈)를 매개로 오락가락하는 미국정부의 이런 태도는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고 미국의 규제에 따를 수밖에 없는 타국의 불신과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는 이번 거래와 관련해 “우리는 미국 정부가 정한 세계시장 참여와 관련된 규정을 준수한다”며 “몇 개월째 중국에 H20을 공급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수출통제 규정을 통해 미국이 중국 및 전 세계와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와 손발을 맞춘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처럼 들린다.

명백한 위헌, 다른 제품 기업에도 확대 적용 가능성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데렉 시저 대중국정책 전문가는 “정권이 (15% 상납금을) ‘수수료’라 부르고 있으나 판매수익의 15%를 징수하는 건 세금과 다름없다. 이건 위헌이며, 지속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힌리히 재단 무역정책 책임자인 데보라 엘름스는 “(이번 조치로) 국가안보에 문제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라며 “15%의 세금을 낸다고 해서 국가안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연구원 피터 헤럴도 “엔비디아가 중국에서 H20을 판매해야 한다고 생각하든 말든 국가안보 관련 수출통제를 완화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소름끼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헤럴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칩을 팔기 위해 엔비디아와 AMD에 수익의 15%를 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출에 세금을 물리는 것 자체를 미국 헌법은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제이크 오싱클로스는 트럼프 정부가 돈 때문에 AI를 중국에 팔 지경이라면 문제가 된 중국 틱톡과의 계약도 뻔한 게 아니겠느냐고 힐난했다. 막대한 재정난을 앞세워 돈만 주면 어떤 원칙이든 그럴 듯한 명분을 붙여 허물 것이라는 비판이다.

미국 조사회사 샌포드 번스틴의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라스곤도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라며 다른 제품이나 기업에도 이와 유사한 조치들이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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