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역사성 이용한 트럼프식 통치④
위대한 미국은 전쟁 통해 형성됐다는 역사관
전쟁을 마치 시민정신 발현장인 것처럼 호도
"미국의 이상주의는 전쟁을 통해서 완성된다"
스마트한 폭력으로 세계 평화 지킨다 되풀이
전쟁의 목적은 네 개의 'P'로 정리할 수 있다. Profit, Pride, Protection, Principle이다. 전쟁은 전리품, 자부심, 자기방어 그리고 원칙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화한 폭력이다. 원칙을 제일 끝, 네 번째에 쓴 이유가 있다. 전리품, 자부심, 자기방어를 위해 싸우면서 전쟁 국가들은 늘 꼭 지켜야 하는 가치 때문이라 포장한다. 한반도로 시각을 옮겨오면 북한은 '자주'라는 가치를 위해 힘겨우면서도 군사력을 키우고, 남한은 '자유'의 원칙을 위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주한미군이 꼭 필요하단다.
미국이 전쟁의 목표로 외친 원칙과 가치는 늘 미국을 넘어섰다. '평화'라고 해야 한다. 싸움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미국이 싸운다는 전쟁의 합리화는 미국의 건국 초기부터 있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이 사고를 정리했다. "적과 맞설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만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so likely to produce peace as to be well prepared to meet an enemy)."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쓴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미국이 '치열하게 싸우는 평화주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말했다. 적대적인 침략으로 미국이 전쟁을 해야 한다면 주어진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함께 싸우는 친구이지만, 동시에 용감한 적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확신시켜야 한다고 했다. 용감한 적이 될 수 있어야 위대한 친구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네 개의 요소가 합쳐지면 또 하나 P가 만들어진다. 포퓰리즘(Populism)이다. 전쟁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란 연료를 태워 대중을 뜨겁게 달군다. 그래서 전쟁은 가장 폭력적인 대중영합주의다. 철학자 볼테르가 섬뜩하도록 날카롭게 지적했다. 다른 살인자들은 다 처벌 대상이지만, 나팔 소리를 울리며 대량으로 학살을 저지른 살인자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주로 전쟁의 승자에게 적용되는 경구이다.
전쟁 같은 군사 충돌에서 군과 민의 경계는 없어진다. 총을 들지 않은 민의 피해가 더 크다. 그래서 전쟁은 국가 폭력의 장이 되는데 이 또한 원칙을 지키기 위한 기회비용으로 간주하기 일쑤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7년 첫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자 전쟁의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렸다. 평양을 향해서다. 그의 트럼펫 소리는 조롱이고 위협이었다. 세계는 두려웠지만, 미국 내에서는 호응도가 높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16년 북한은 제4, 5차 핵실험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17년 9월 3일, 이제까지 가장 강력한 제6차 핵실험을 했다.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도 시험 발사했다. 미국의 '괌'이 사정권 안에 들어왔고, '화성-12'는 사실 대륙간탄도미사일급이란 경고음이 울렸다.
약 2주 후인 9월 19일 트럼프가 유엔 연설을 했다. "로켓맨은 자신과 정권을 향해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Rocket Man is on a suicide mission for himself and for his regime)."
그는 북핵 사태와 같은 복잡한 이슈를 단순화하는데 천재성을 보였다. 그때까지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 또 불량국가(rogue state)라 불렀다. 이 또한 전의가 담긴 나팔 소리였다. 하지만 이해가 쉽지 않았다. 듣는 순간, 악의 축과 불량국가는 귀에 쏙 들어오거나 그림이 그려지는 표현은 아니다. 히틀러의 독일, 카다피의 리비아, 후세인의 이라크,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연결고리가 없지 않은데 거리감이 느껴지는 기준점이다.
트럼프가 절묘한 트럼펫 사운드를 만들었다. '로켓맨(Rocket Man)'은 유명 가수 엘튼 존의 히트곡 제목이다. 우주선에 갇혀 지구의 시간 개념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긴 여정을 떠나는 우주 비행사. 그의 고독과 땅 위 사람들이 삶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겹치게 한 노래를 김정은 또는 북핵과 연계 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는 약하다.
굳이 연계성을 찾자면 후렴이 김정은에 대한 경고로 들릴 수는 있다. "나는 로켓맨이야/로켓맨/여기서 (우주에서) 혼자 퓨즈를 다 태워버리고 있어 (I'm a rocket man/Rocket man/Burning out his fuse up here alone)."
노래 가사와 김정은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는 상관이 없다. 별명은 상대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가 아니다. 한 단면을 떼어내 상대의 전체를 압축해 묘사하는 재미와 재치가 느껴지면 된다. '로켓맨' 하나로 김정은은 망상적이고 무모한, 절망적 인물이 되었다. 동시에 트럼프 자신은 우주의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만화 수준의 영웅이 되었다.
전쟁 언어의 통치 수단화는 2017년 트럼프의 첫 취임사에부터 나타났다.
"우리 (미국은) 세계 모든 나라들과 우호와 선의를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
"We will seek friendship and goodwill with the nations of the world – but we do so with the understanding that it is the right of all nations to put their own interests first."
"우리는 (미국)의 삶의 방식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모범으로 빛나도록 할 것이다."
"We do not seek to impose our way of life on anyone, but rather to let it shine as an example for everyone to follow."
미국의 이익이 제일 먼저이고, 미국의 삶의 방식이 모범으로 빛나려면 당연히 전쟁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트럼프의 사고 체계이고, 그가 말하는 평범한 애국 시민을 위한 메시지이다. MAGA의 기원이 그가 취임사에서 외친 "우리는 함께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 것이다 (Together, We Will Make America Strong Again)"는 메시지이다. 언어학자들은 상대적으로 '강하다(strong)'는 개념에 신체적 방어력과 공격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강함은 위대함의 기본 조건이 된다. 결국, 트럼프가 그리는 미국은 스스로가 정한 원칙을 위해 싸움을 마다지 않는 나라이다.
트럼프는 올해 1월 두 번째 취임사는 더 전투적이었다.
"우리는 번영할 것이고, 우리는 자랑스러울 것이고, 우리는 강해질 것이고, 우리는 전례 없는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We will be prosperous, we will be proud, we will be strong, and we will win like never before."
"우리는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고, 위협받지 않을 것이며,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부터 미국은 자유롭고 주권적이며 독립적인 국가가 될 것입니다."
"We will not be conquered, we will not be intimidated, we will not be broken, and we will not fail. From this day o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ill be a free, sovereign, and independent nation."
"우리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nothing will stand in our way because we are Americans."
그의 두 취임사 모두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한다로 끝났다. "God Bless America!".
전쟁의 언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트럼프의 정치력의 기원은 남북전쟁(1861~1865)이다. 보통 사람들이 희생한 전쟁을 통해 위대한 미국이 형성됐다는 트럼프의 역사관과 이 전쟁은 떼어 놓을 수 없다. 남북 전쟁의 주요 원인은 노예제도이다. 미국의 백인 정착과 함께 시작된 노예제도는 19세기 중반 미 북부 주들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1861년 반노예주의자인 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그의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남부 11개 노예제도를 유지하던 주들은 미합중국을 탈퇴했다. 1861년 2월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d States of America)란 독립 국가를 세웠다. 그해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발생한 남부와 북부의 충돌로 전쟁은 시작됐다. 1865년까지 지속된 이 전쟁에서 60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남북전쟁 후 거의 200년 논쟁이 이어졌다. 인구, 군사력, 물자 같은 전쟁에 요구되는 기본 조건에서 남부는 북부에 현저하게 못미쳤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남부는 북부와 별 차이없는 인명 피해를 보게 되는 전쟁에 왜 임했나? 1860년 전체 미국 인구는 3200만 명. 남부의 인구는 노예 약 350만 명을 포함해 900만 명. 북부는 2300만 명. 인구 남부의 노예를 합쳐도 북부가 1400만 명이나 더 많았다. 그런데 전쟁에서 북부가 약 35만 명, 남부가 약 25만명의 생명을 잃었다. 인구 비례로 남부가 큰 희생을 감수했다. (위 그래프 참조)
더 놀라운 것은 남부과 북부의 산업화 차이는 더욱 현저했다. 북이 남보다 공업 생산, 철도, 선박, 무기 생산 모든 면에서 앞섰다. 남부가 북부에 앞선 분야는 고작 대농장 수였다. 그럼에도 남부는 전쟁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위 그래프 참조)
왜 노예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남부의 백인 보통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북부와 싸웠나? 여기 트럼프가 등장한다.
자신들 삶의 터전과 환경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소유하지도 않은 노예를 빼앗기지 않으려 싸운 것이 아니라, 남부의 자기 정체성을 위해 희생했다고 본다. 실제로 남부 주민의 76%는 노예를 소유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정체성을 지키려 영국에 대항한 독립 전쟁과 남부의 정체성을 부정한 북부에 저항한 전쟁은 토대가 같다는 역사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트럼프에게 남부의 저항심은 애국심과 다르지 않다.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남북 전쟁과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아이콘이다.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생포됐다가 석방되는 남부 포로들의 모습이다.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남북 사상자는 5만 1000명에 달했다. 남부 포로들은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단순 계산으로 남부의 수도 버지니아의 리치먼드까지 가야 했다면 200마일을 걸어야 했다. 혹 더 아래 남쪽 지역(deep south)의 거점 도시인 조지아의 애틀랜타가 고향이라면 700마일을 가야 했다. 이들의 얼굴에서 자신들의 땅과 공동체로 돌아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읽힌다. 트럼프는 이들의 얼굴에서 노예주가 아닌, 자신이 형성한 지역 공동체를 지키려 한 의지와 희생의 전사들을 보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는 남북 전쟁 당시 남부 장군들의 이름을 딴 미국 군사 기지의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2020년 트럼프는 군사 기지의 이름을 바꿀 수 없다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서 우리의 역사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북 전쟁을 노예 등 인종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가치 투쟁의 역사로 평가했다.
또한 트럼프는 남북 전쟁 당시 전쟁을 이끌었던 남부 장군들의 동상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시위대가 리치먼드 버지니아에 있는 로버트 리 장군 (Robert E. Lee, 1807~1870) 장군 동상에 낙서 시위를 하자, 트럼프는 이를 역사에 대한 폭거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남북 전쟁 당시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의 동상은 대부분의 도시에서 결국 철거됐다. 남부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의 애정은 유별나다.
트럼프는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전쟁의 당위성을 가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남북 전쟁에서 북부도 희생이 컸다. 무엇을 위함이었나? 링컨의 외침을 빌리면,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란 가치와 원칙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합치면, 남부도 북부도 나름 성전을 치른 셈이다.
미국은 가치를 위한 전쟁을 꺼리지 않았다는 트럼프의 역사관은 새롭지 않다. 20세기 미국이 싸운 전쟁은 모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역사 해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음은 이 논리를 단순화해 보통의 미국인들에게 전파하는 포스터들이다. 문명사회가 미국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포스터가 미국의 국가 정체성과 사고를 담고 있다.
미국은 1941년 12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이미 그 전부터 영국을 위시한 반나치 국가들을 돕고 있었다. 그해 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미국이 세상에 펼쳐야 할 가치들을 정의했다. 이런 인류 보편적 원칙을 위협하는 나라가 곧 미국의 적이란 뜻이었다. 이들과 전쟁함이 당연했다. 아래 우표에 그려진 미국을 상징하는 네 개의 자유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Want)', '공포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Fear)', '표현의 자유 (Freedom Of Speech)'와 '신앙의 자유 (Freedom Of Worship)'이다.
트럼프는 보통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전쟁과 폭력을 미화하고, 미국 우선주의로 포장된 미국의 우월주의와 자유 무역 질서 파괴를 자신의 성과로 내세운다. 이런 트럼프의 정책들이 미국을 지치게 하고 있다. 아래 풍자만화가 이 피로감을 표현한다.
트럼프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의 미화는 지금의 가자(Gaza) 전쟁에도 적용된다. 이스라엘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투쟁으로 보기 때문에 세계가 경악하는 이 최악의 국가 폭력 사태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자지구를 미국 소유로 전환해 '중동의 리비에라(Riviera of the Middle East)'로 바꾸겠다고 했는데, 인종 청소 촉구에 가까운 망언이란 비난을 불러왔다.
트럼프의 가장 최근 전쟁과 폭력의 정치화는 지난 6월 있었던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이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장하는 수준의 성공적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파괴 수준이 목표가 아니다. 먼 거리를 날아온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가 저항없이 악마화된 이란의 목표물을 폭격했다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이런 무기체계는 폭력을 미화하고 파괴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불편함을 둔화시켜 주는 언어이다. "우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중단시킴으로써 중동의 전쟁을 막았다(We have stopped wars in the Middle East by stopping Iran from having a nuclear weapon)." 트럼프의 논평이었다.
미국은 스마트한 폭력 수단을 통해 세계 평화라는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지킨다는 주장은 되풀이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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