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역사성 이용한 트럼프식 통치①

한 손엔 성경, 또 손엔 총을 든 청교도의 승리

미국의 역사를 만든 건 보통사람들의 역사성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낸 'Minuteman’

'보통사람들의 시대' 연 잭슨을 흠모한 트럼프

트럼프, 정치적 목적으로 보통사람 코스프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외침에 환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과 총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우익 진영의 현수막. (Amazon.com)
미국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과 총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밖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우익 진영의 현수막. (Amazon.com)

미국은 지금 갈등과 충돌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안으로는 정부가 이방인 색출에 나섰고, 밖으로는 무역 전쟁과 군사 충돌에 뛰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은 마찰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로 국정을 끌고 나가려 한다. 그의 전투 슬로건은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여기에 많은 미국의 소위 보통사람들이 매료되어 그에게 두 번째 대선 승리를 안겨 주었다. 취임 6개월이 지나도록 어느 한 구석도 평범함이 없는 트럼프가 어떻게 보통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유지하고 있는지 분석해 볼 필요를 느낀다. 그의 보통사람 코스프레의 근원을 찾아간다.

트럼프는 가진 게 많다. 그의 부와 권력은 어디가 경계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의 다음 목표는 명예다. '명예'의 뜻은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네이버 사전)이다. 이 정의가 트럼프의 삶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가 바라는 명예는 사전적 의미의 명예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

명예는 영어로 'honor'인데 비슷한 단어를 찾아주는 'Thesaurus.com'에 입력하면 맨 앞에 'attention'이 뜬다. 세상의 주목과 관심이다. 바로 트럼프가 추구하는 종류의 명예다. 세상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기를 바라며, 끝없이 소리를 치고 일을 벌인다. 관심을 끌려면 수단이 필요한데, 긍정적 수단과 부정적 수단이 있다. 즉, 잘남과 못남의 스펙트럼이 있다. 잘난(예쁜) 짓에도 관심이 가지만, 못난(인상쓰게 하는) 짓도 눈길을 끄는 힘이 있다.

미국 식품점에는 계산대 가까이 사탕, 과자, 초콜릿, 탄산음료 등이 진열되어 있다. 물론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배치다. 아이들이 이런 스낵을 보면 자극을 받아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른다. 부모가 안 사주면 떼를 쓴다. 울며 바닥에서 뒹구는 경우도 있다. 계산하기 위해 줄지어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 순간 아이의 극한 투정에 장사가 없다. 아이가 집은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아이는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못난 짓으로 관심을 끌고 원하는 것을 이룬다.

관심 집중 수단으로서 긍정적 행동과 부정적 행동은 둘 다 지속성이 떨어진다. 잘남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새로울 것이 없다. 못난 짓을 계속하면 비판이 일고 그를 피한다. '나쁠 악(惡)'은 '미워할 오'로도 읽는다.

부러움과 불쾌감의 스펙트럼을 벗어난 관심 끌기에 유용한 도구는 '아이러니'다. 트럼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모순을 찾았다. 결코 보통사람일 수 없는 그가 보통사람들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상상이 어려운 부를 소유하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의 상징 영국 황실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환호하는 아이러니와 같다고 느낀다. 아직도 때로 황금마차를 타고 오가는 윈저(Windsor) 가족이 보통사람들의 상징으로 서 있는 모순을 트럼프에게서도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고 집무를 하고 있다. (Politico Magazine)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고 집무를 하고 있다. (Politico Magazine)

트럼프는 "자신이 보통사람을 지키고 자부심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고 포부를 밝며 미국 45대 대통령의 첫 임기(2017~2021)를 시작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1767~1845)의 초상화를 대통령 집무실에 걸었다. 트럼프의 잭슨 흠모에는 이유가 있다. 잭슨 대통령 시기(1825~1832)를 '보통사람들의 시대(The age of common man)'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앤드루 잭슨이 노예를 부리며 살았던 농장인 허미티지(Hermitage)를 찾아 존경을 표시하는 트럼프. (Public Domain)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앤드루 잭슨이 노예를 부리며 살았던 농장인 허미티지(Hermitage)를 찾아 존경을 표시하는 트럼프. (Public Domain)

앤드류 잭슨은 열띤 논쟁을 불러오는 대통령이다. 그를 ABCD로 정리할 수 있다. 자신(Assertive)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공격적(Belligerent)이었지만, 용기(Courage)도 있었다. 또 파괴적(Destructive), 특히 원주민에 대해 파괴적이었다. 장성, 변호사, 대농장 주인을 거쳐 대통령이 된 잭슨이 보통사람들과 일치감을 형성했다. 잭슨은 가진 자, 배운 자, 권력 있는 엘리트의 특권과 동시에 원주민의 땅을 빼앗아 보통사람들에게 주었다는 신화의 주인공이다. 특권층에 속한 그가 대중의 시대와 동일시된 이유이다. (잭슨의 '보통사람 시대'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보통사람'은 역사성이 강한 개념이다. 이것을 트럼프가 알고 있다. 보통 사람은 미국 역사를 움직여온 엔진이다. 추진체에 요구되는 동력은 '역사성'이란 에너지로 생성된다. 에너지가 움직임을 만들어 내려면 스파크가 필요하다. 미국의 역사에서 이어져 온 전쟁과 충돌 같은 공동체의 폭력 경험이 그것이다. 그래서 미국인은 총기 소지의 권리를 누린다.

'역사성(Geschichtlichkeit)'은 추상적인 철학 개념이지만, '죽어서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격언으로 접근하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끊임없이 노력해 많은 것을 성취하고, 도덕적인 삶을 통해 주변의 존경을 받아 역사에 이름을 남기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성은 타의 모범, 흔히 말하는 롤모델의 개념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존재의 흔적은 역사 속에 남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갈 때 뒤에 올 사람들을 생각해서 단정하게 가는 게 아니다. 갈지(之)자로 가면 힘도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얌전히 걷는 것이 사는 길이다. 역사를 의식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역사가 된다.

존재는 어떠한 시공 속에서도 역사성을 갖는다. 충만하게, 진실되게, 적극적으로 꾸준하게 드러난 신념과 행동, 또 시대적(사회적) 관계를 통해 역사성은 형성된다. (The full, authentic, active, and durative expression of a belief or movement in terms of personal participation and in relation to a given time. / Encyclopedia.com) 역사성은 철학적 사고와 윤리에 대한 끊임없는 반추를 전제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염려와 불안은 행동을 저해하니 반역사성이라 해도 된다.

역사성은 이름을 남기려는 애씀이 아니라, 지금의 이름(실존)값을 하는 삶이다. 신념, 행동, 관계를 기본 요소로 해서 존재의 의미를 형성해 가는 여정이다. 철학자 헤겔은 역사성의 목적지를 자유라고 말했다. 이 여정의 길 이름은 '변증법'이다. 존재의 모순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를 통해 길을 간다.

표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어느 곳에도 보통사람의 정의는 비슷하다. 스스로 알아서 법을 지키고,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자녀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 이는 일상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기초한 경제 사회적 정의다. 더불어 보통사람 개념에는 역사성이 있다. 의병, 독립군, 또 촛불혁명의 중추는 보통사람이다. 이들이 이 정체성을 넘어 역사 변화의 주체로 나설 때 '현재 상태(Status Quo)'는 무너졌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역사성에는 세 개의 뿌리가 있다고 했다. 선천성, 성취, 그리고 역사의 부름이다. (Some are born great, some achieve greatness, and some have greatness thrust upon them. / Twelfth Night).” 여기서 '위대함(greatness)'을 '역사성 (historicity)'으로 바꿔 읽어도 된다. 자랑할 만한 혈통, 업적이 없어도 역사의 시련과 기로에서 쟁기를 내던지고 총을 들었던 보통사람들이 역사성이 미국의 역사를 이끌어 갔다. 

미국 역사와 가장 보편적 폭력 수단 총기는 떼어내기 어렵다. 2024년 미국에서 총기로 인해 5만 명 넘게 사망했고, 3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총기 소지 권리를 제한하기 쉽지 않다. 폭력과 폭력 수단의 역사성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 청교도들의 북미 대륙 정착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보통사람들의 역사성과 여기에 녹아있는 폭력성의 형성 과정을 관련 미술 작품 등 이미지를 이용해 알아본다. 평화를 위해 평화를 깰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아이러니를 발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의 1899년 작품 '메이플라워 합의 서명(Signing the Mayflower Compact) 1620'. (Public Domain)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의 1899년 작품 '메이플라워 합의 서명(Signing the Mayflower Compact) 1620'. (Public Domain)

청교도 정착

1600년대 초 아주 유별난 보통 사람들이 북미 대륙, 지금의 매사추세츠 해변에 정착했다. 이들은 종교 권력의 간섭을 거부했다. 간섭은 하나님에게서만 받으면 된다고 믿었다. 창조주의 간섭은 신앙 언어로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면 구원된 존재가 된다. 구원받은 동등한 존재들이 형성하고 운영하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성경을 인용해 '언덕 위의 마을'이라 했다. 청교도들은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실상인 생존 공간을 만들었고, 그들의 삶의 구조가 세상의 모델이 되길 바랐다. 

청교도들의 북미 정착은 민주 사회의 실험으로 불린다. 군주가 없으니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법을 만들고 자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법체계 안에서 제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자는 약속에 서명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메이플라워 합의 서명(Signing the Mayflower Compact) 1620') 물론 증인은 하나님이다. 그림 중심에서 서명하는 이는 보통 사람이다. 이렇게 종교 자유, 생산 기회, 민주적 사회 운영을 기둥으로 하는 청교도 사회는 첫발을 디뎠다.

 

제니 브라운스콤(Jennie A. Brownscombe의 1914년 작품  '플리머스의 첫 추수감사절(The First Thanksgiving at Plymouth)'. (Public Domain))
제니 브라운스콤(Jennie A. Brownscombe의 1914년 작품  '플리머스의 첫 추수감사절(The First Thanksgiving at Plymouth)'. (Public Domain))

이상은 뜨거웠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뉴잉글랜드 날씨는 추웠고 땅은 걸지 않았다. 생산력 없는 공동체는 자유와 민주 체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원주민들로부터 척박한 땅에서도 농사를 짓고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청교도, 나아가 유럽인들에게 농사는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상업농이었다. 생존을 위한 필요 이상을 생산해 개인의 삶을 향상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신념을 가진 보통 사람에[게 땅이 필요했다. 넓을수록 좋았다. 청교도들과 원주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상생했다는 가공된 역사는 지금도 추수감사절을 통해 재생된다. ('플리머스의 첫 추수감사절(The First Thanksgiving at Plymouth)'.

위의 두 그림은 미국의 정착 신화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신화는 자유, 평등, 공존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하늘의 은혜를 폭력을 통해 이 땅에 이루었다.

 

조지 헨리 보턴(George Henry Boughton)의 1867년 작품 '교회 가는 청교도들(Pilgrims Going to Church)'. (Public Domain)
조지 헨리 보턴(George Henry Boughton)의 1867년 작품 '교회 가는 청교도들(Pilgrims Going to Church)'. (Public Domain)

위의 작품에서 보듯 청교도들은 처음부터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총을 든 공동체였다. 총은 공동체 보호의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청교도 사회의 확장에도 절대 필요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보통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다. 매사추세츠의 남쪽 넓고 비옥한 남쪽의 코네티컷 땅을 탐냈다. 대지는 존재의 어머니라 생각했던 원주민들과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주민에게 땅을 지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백인 정착민들에게 확장과 팽창은 하나님 주신 사명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창조주가 부여 한 사명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폭력은 정당성을 갖는다.

 

19세기 상업용으로 제작된 '피쿼트족의 파괴(Destruction of the Pequots)' 프린트. (Public Domain)
19세기 상업용으로 제작된 '피쿼트족의 파괴(Destruction of the Pequots)' 프린트. (Public Domain)

1637년 5월 코네티컷 피쿼트(Pequot) 원주민 부족과 청교도 정착민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위의 작품이 실상을 전한다. 청교도들은 피쿼트 부족에게 적대적인 원주민과 연합해 싸웠다. 적의 적은 좋은 친구였다. 청교도 민병들은 원주민 마을을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 청교도들의 잔혹한 화공으로 원주민 400~700명이 타 죽었고, 이보다 더 많은 원주민이 피하려다 살해됐다. 원주민 사망자는 1500명으로 추정된다. 원주민이 사라진 땅은 보통 사람들의 생존 공간, 민주주의의 실험실, 또 청교도 눈에는 세상이 흠모할 공동체의 모델로 변했다. 보통 사람들의 폭력에 의해 원주민의 역사도, 백인 정착민의 역사도 급격히 바뀌었다. 폭력이 역사성을 추동했다.

 

1637년 코네티컷에서 발생한 피쿼트 전쟁에서 백인 정착민들은 화공으로 원주민 마을을 불태웠다. 
1637년 코네티컷에서 발생한 피쿼트 전쟁에서 백인 정착민들은 화공으로 원주민 마을을 불태웠다. (Public Domain)
피쿼트 전쟁의 참담했던 기록이 새겨진 커피 머그잔도 구매가 가능하다. (Ebay)
피쿼트 전쟁의 참담했던 기록이 새겨진 커피 머그잔도 구매가 가능하다. (Ebay)

 

독립전쟁 (1775-1783)

에마누엘 로이츠(Emanuel Leutze)의 1851년 작품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에마누엘 로이츠(Emanuel Leutze)의 1851년 작품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미국의 혁명·독립 전쟁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미국의 독립 전쟁은 무모함을 상징한다. 세계 최강 영국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미국의 독립군 (대륙군, Continental Army)은 조직, 훈련, 보급 등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1776년 독립선언 이후 (군사 충돌은 이미 그 전 해에 시작됐다) 후퇴만 하던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1776년 크리스마스 밤,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주 경계인 델라웨어강을 건너 영국군을 공격했다. 워싱턴의 첫 승리로 미국의 독립 의지와 독립군대가 살아있음을 알렸다.

워싱턴은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다. 미국의 최대 거부 중 하나였다. 많을 때는 그의 농장에 300명의 노예가 있었다. 자유, 생명, 행복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난 보통 사람들의 희생을 보여준다. 사령관 워싱턴은 이들의 노 젓기(동력)로 위험한 얼음덩어리를 밀쳐내며 델라웨어강을 건넜다. 

 

윌리엄 트레고(William B. T. Trego)의 1883년 작품 '밸리 포지로의 행군(March to Valley Forge)' (Museum of American Revolution 소장)
윌리엄 트레고(William B. T. Trego)의 1883년 작품 '밸리 포지로의 행군(March to Valley Forge)' (Museum of American Revolution 소장)

'미 독립전쟁=보통사람들의 투쟁' 등식은 신화만은 아니다. 평범한 농부들이 싸운 전쟁이었다. 미국 사회의 귀족층에 속했던 워싱턴은 위의 작품에서 보듯 독립군을 형성한 평범한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독립전쟁에서 영국군을 상대한 보통사람들을 'Minutemen'이라고도 부른다. 영국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몇 분 안에 싸움터로 달려간다고 해서 주어진 이름이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민병들에게 주어진 명예의 상징이다. 청교도들은 정착 초기부터 민병대를 조직했다. 16세에서 60세 남성은 공동체를 위해 군사 훈련을 받고 위급할 때 싸움터로 가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 중 특수 훈련을 받은 병사를 지칭했지만, 나중에는 보편적으로 쓰였다. 

 

콩코드 의병대(Concord Minuteman,왼쪽)과 렉싱턴 의병대(Lexington Minuteman) 동상. (Public Domain)
콩코드 의병대(Concord Minuteman,왼쪽)과 렉싱턴 의병대(Lexington Minuteman) 동상. (Public Domain)

미국의 독립을 선언한 1776년 한 해 전에 매사추세츠 '렉싱턴과 콩코드(Lexington and Concord)'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활약한 민병대원들을 기념한 동상이 유명하다. 사진 왼쪽 '콩코드 민병대(Concord Minuteman)'는 오른손은 총을, 왼손은 쟁기를 잡은 모습이다. 남북전쟁에서 활약한 대포 10문을 녹여 동상을 만들었다. 남북전쟁은 제2의 독립전쟁이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사진 오른쪽 '렉싱턴 민병대(Lexington Minuteman)'는 평범한 시민인 그도 미국의 독립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총을 굳게 잡았다. 'Minutemen'은 매사추세츠, 뉴잉글랜드 지역을 떠올리게 한다. 미 동북부의 지역성을 넘어 독립을 지지한 사람들의 총칭은 '애국자(patriot)'이다. 애국자의 정체성에도 보통 사람이 핵심이다. 

 

미국의 혁명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투쟁이었음을 말하는 아치볼드 윌러드(Archbald Willard)의 1875 작품’1776년의 정신(Spirit of ‘76)’. (Public Domain) 
미국의 혁명전쟁은 보통 사람들의 투쟁이었음을 말하는 아치볼드 윌러드(Archbald Willard)의 1875 작품’1776년의 정신(Spirit of ‘76)’. (Public Domain) 

위의 작품 'The Spirit of ‘76'가 보통 미국 사람들의 혁명 의지를 가장 잘 나타냈다는 평을 듣는다.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무기 대신 악기를 들고 선두에 섰다. 피리 부는 이는 이미 머리에 부상을 당했고, 소년병은 두렵지만, 옆의 어른들을 보면서 북을 친다. 독립전쟁에 관한 미술 작품 중 미국 쪽에는 말 탄 영웅 이미지 별로 없다. 조지 워싱턴 하나면 족하다는 뜻인 것도 같다. 

 

영화 '패트리어트' 스틸 것. (콜럼비아 픽처스, 센트로폴리스 엔터테인먼트, 뮤탈 필름 컴퍼니 공동 제작 / 소니 픽처스 배급)
영화 '패트리어트' 스틸 것. (콜럼비아 픽처스, 센트로폴리스 엔터테인먼트, 뮤탈 필름 컴퍼니 공동 제작 / 소니 픽처스 배급)

보통사람들의 혁명 정신은 영화를 통해서도 전파된다. 2000년에 나온 영화 '패트리어트(The Patriot)'에서 주인공 멜 깁슨은 평범하게 살고 싶은 평범한 농부였다. 하지만 여느 보통사람처럼 세상에 큰 관심 없이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역사가 천정에서 떨어져 밥상을 뒤엎었다. 미국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영국군 (더 정확히는 독일계 용병)의 만행으로 아들의 생명이 위협받자, 전사로 바뀐다. 국수주의가 흘러넘치는 영화인데 1억 달러를 투자해 그 두 배 이상 수입을 올렸다.

 

존 트럼불(John Trumbull)의 1818년 작품 '독립선언(Declaration on Independence)'.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볼 수 있다. (Public Domain)
존 트럼불(John Trumbull)의 1818년 작품 '독립선언(Declaration on Independence)'.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볼 수 있다. (Public Domain)

1776년 7월 4일. 미국의 최고 엘리트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독립을 선언했다. 위의 작품이 말하듯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 중 평범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전쟁에서 이겼고 독립했다. 독립을 선언하자 총을 들고 전장으로 달려간 보통 사람들이 아래처럼 승전의 주역으로 오늘도 기억된다. 

 

난관을 헤치며 포기하지 않고 싸워 승리한 독립군의 경험을 체험하는 오늘날의 미국인들 (Washington Crossing Historic Park)
난관을 헤치며 포기하지 않고 싸워 승리한 독립군의 경험을 체험하는 오늘날의 미국인들 (Washington Crossing Historic Park)

미국의 성공적인 독립 투쟁은 바로 미국의 팽창사로 이어진다. 식민 통치자 영국을 물리친 보통사람들은 자신의 역사성을 체험했다. 이들의 역사성은 이제 미합중국의 국가적 어젠다 형성에 투영된다. 보통사람들이 생활, 생산 공간을 확보해 공동체의 운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개척자 이념이 미국을 지배한다. '개척=미국'의 등식이다. '서부 (The West)'가 보통사람들의 실존, 또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면서 광활한 싸움판이 벌어진다. 폭력은 더 역사성을 획득하고 미 원주민들의 고난사는 더욱 깊어진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도널드 프럼프 대통령. 화난 미국의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보통 사람이 아닌 그가 씻어주겠다는 아이러니가 읽힌다. (The White House)
백악관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도널드 프럼프 대통령. 화난 미국의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보통 사람이 아닌 그가 씻어주겠다는 아이러니가 읽힌다. (The White House)

트럼프는 이 역사성에 쉽게 귀에 들어오는, 단순미가 뛰어난 제목을 달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이 외침에 많은 보통사람이 환호한다. 그리고 2021년 1월6일 미국 연방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보았듯, 이들은 폭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집단적 폭력이 발산하는 에너지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들을 트럼프가 부추겼다. 그는 미국이 최근 보통사람들의 역사성을 무시했다며 자주 화난 표정을 짓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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