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구심점이자 미국 주도 쿼드 견제 포석

"유라시아 3대국이며 핵무장국들,

더 조율된 행동 시 미국엔 도전"

인도, RIC 재가동에 일단 소극적

러·중엔 적어도 인도 중립화 효과

라브로프 "인도 가입 쿼드 군사화"

러시아가 중국, 인도와의 '3자 협의체' 복원을 거듭 제의하고 나섰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이 3자 협의체 '릭'(RIC)의 복원 필요성을 강조한 데 이어,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 차관은 중국, 인도 측과 이미 '협의 중'임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4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으로 알려진 대규모 감세 법안에 서명한 후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5. 07. 04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립기념일인 4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으로 알려진 대규모 감세 법안에 서명한 후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5. 07. 04 [로이터=연합뉴스]

러, 트럼프 "100% 관세"에
중국·인도와 'RIC 부활' 추진

뉴스위크에 따르면, 루덴코 차관은 17일 러시아 이즈베스티야 인터뷰에서 "양국 모두와의 협상에서 이 의제가 있었다. 3국은 중요한 파트너인 만큼 우리는 이 협의체의 가동에 관심이 있다"면서 "내 생각에 이 협의체의 부재는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관계국들이 RIC의 틀 내에서 작업을 재개하는 데 동의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RIC은 1998년 당시 러시아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이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견제하고 다극화 세계 질서의 구축을 지향하며 제안했다. 2002년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3국 외무장관이 비공식 회의를 가졌고 2000년대 중반부터 외교장관 회담을 정례화하고 무역·금융·외교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RIC은 올해에 10개 회원국으로 성장했고 앞으론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이는 신흥 경제국 그룹인 브릭스(BRICS)의 모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2020년 카슈미르 라다크의 갈완 계곡에서 벌어진 중국-인도 군부대 간 유혈 충돌 이후 중단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RIC이 복원된다면 브릭스의 구심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비밀 후방기지 훈련장에서 러시아 육군 돌격 부대원들이 훈련 중이다. 2025. 07. 19. 러시아 국방부 공보실 제공.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비밀 후방기지 훈련장에서 러시아 육군 돌격 부대원들이 훈련 중이다. 2025. 07. 19. 러시아 국방부 공보실 제공. [AP=연합뉴스]

러시아 제안하자 중국은 화답
인도, 미국 고려해 논평 자제

이에 중국은 화답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린젠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러·인의 협력은 우리 3국의 각자 이익뿐 아니라, 지역 및 세계의 평화와 안보, 안정, 진보에 이바지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3자 협력 진전에 러시아, 인도와 소통을 유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도 정부는 논평에 응하지 않았다. 사안이 복합적이고 민감한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세 위협 등을 놓고 최근 다시 급속히 긴장이 고조되는 미·러 관계, 미국의 대중 압박에 반기 드는 모양새, 그리고 인·중 간 국경충돌 후유증 등 인도로선 고려할 요소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RIC 재가동에 적극적이고 어떻게든 인도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행보는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50일 내 종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러시아에 "혹독한"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가에도 "2차 관세"를 부과하며 관세율은 100%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뒤 본격화됐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우크라 침공을 이유로 원유·가스 수입금지 등 미국·서방 주도의 국제사회가 대러 제재를 가했지만, 되려 원유·가스 수입을 늘린 중국과 인도를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중앙),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 10. 23 [출처. 게티이미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중앙),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23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 10. 23 [출처. 게티이미지]

"유라시아 3대국이며 핵무장국들,
더 조율된 행동 시 미국엔 도전"

이런 맥락에서 RIC 재가동은 러시아엔 트럼프의 관세 폭탄 등 우크라 전쟁 관련 미국의 압박에 3국이 공동 대처하고, 중국엔 대만, 관세 문제 등과 관련한 미국의 압박에 3국이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는 큰 전략적 이익이 있다. 경제와 무역에서 군사 협력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뉴스위크는 러·인·중 3국을 "유라시아 대륙의 3대국"이라고 규정한 뒤 "RIC이 부활해 이 세 핵무장국이 외교, 경제, 안보 이슈들과 관련해 더욱 조율된 행동을 하게 된다면 미국엔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일부 국가에서 미국에 맞춰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광범위한 관세 부과를 포함해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아메리카 퍼스트' 의제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더 확대된 3자 협력 제안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11일 러시아 외교부 리셉션 하우스에서 페리둔 시니리오글루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사무총장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11. TASS 연합뉴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11일 러시아 외교부 리셉션 하우스에서 페리둔 시니리오글루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사무총장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11. TASS 연합뉴스 

라브로프, 5월 페름 국제회의서
쿼드 비판하고 RIC 재가동 주장

라브로프 장관은 이미 5월 29일 러시아 페름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서 RIC의 부활을 주장했다. 타임오브인디아에 따르면, 라브로프는 연설에서 특히 미국이 대중 봉쇄를 위해 만든 4자 협의체인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를 문제 삼았다. 쿼드 가입 당시 인도는 "무역"을 이유로 들었지만, 지금 다른 쿼드 멤버들은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고 인도까지 동참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친구 인도가 이런 도발을 명확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의 마음을 얻어 RIC 3자 협의체를 재가동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쿼드를 견제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에 담겨 있다. 중·인 관계 개선이 RIC 재가동의 '열쇠'임을 잘 아는 라브로프는 "내가 알기로 국경 상황 진정 방안을 두고 인·중 간 (상호) 이해가 이뤄진 만큼, RIC 3자 협의체를 부활할 때가 왔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8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GENIUS 법안' 서명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청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025. 07. 18 [AP=연합뉴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8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GENIUS 법안' 서명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청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025. 07. 18 [AP=연합뉴스]

러 무기 구매와 브릭스 참가 두고
미국 상무, 인도에 강한 불만 토로

힌두스탄 타임스에 따르면, 인도가 러시아산 무기를 계속해서 구매하고 갈수록 '반서방' 성향이 강해지는 브릭스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달 3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인 전략파트너 포럼에서 "러시아 무기를 구매한다면 일종의,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며...브릭스의 일원이 되는 건 달러와 달러 지배권을 지지하지 말자는 종류의 행동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말 그건 미국에서 친구를 사귀고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이런 미국의 불만을 고려한 듯 아직 인도는 RIC 부활에 공식 언급이 없다. 뭣보다 난제는 RIC의 반미 성향 문제다. 타임오브인디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미·인 관계가 특히 국방과 기술 협력 분야에서 깊어졌는데 뉴델리가 현 궤도에 반하는 방식으로 러·중와 공동 전선을 펴는 건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런 맥락에서 자와할랄 네루대 라잔 쿠마르 교수(국제학)는 서방이 중국과 인도를 "분리해서 정복"하려 한다는 라브로프의 경고에는 동의하면서도 RIC 부활 추진에는 "러시아의 희망 사항일지 모르며, 현실 세계와 현 지정학적 환경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중·인 관계에 대해 쿠마르는 "인도와 중국이 브릭스와 SCO(상해협력기구) 같은 몇몇 국제기구의 멤버이지만, 중국과의 직접적 화해는 가능하지 않다. 특히 2020년 라다크 사건 이후 베이징에 대한 뉴델리의 신뢰는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쿼드 정상들이 21일 미국 델라웨어주 클레이먼트의 아치미어 아카데미에서 암 정복 프로젝트인 '쿼드 캔서 문샷' 이니셔티브에 관해 설명하려고 걸어나오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 2024. 09. 21 [AP=연합뉴스]
쿼드 정상들이 21일 미국 델라웨어주 클레이먼트의 아치미어 아카데미에서 암 정복 프로젝트인 '쿼드 캔서 문샷' 이니셔티브에 관해 설명하려고 걸어나오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 2024. 09. 21 [AP=연합뉴스]

인도, RIC 재가동에 일단 소극적
러·중엔 적어도 인도 중립화 효과

미국·서방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 중·인 갈등을 중재하고 3자 협력 강화를 통해 고립 탈피를 시도하는 러시아, 그리고 거센 미국의 압박을 견제하기 위해 러·인과의 3자 협력이 절실한 중국과 RIC에 대한 인도는 입장은 거리가 있다. 한편으론 러시아와 군사, 에너지 협력을 지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미 관계에도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비동맹 외교 기조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할 걸로 예상된다. 뭣보다 중·인 간 국경 분쟁과 전략적 경쟁, 그리고 미국의 견제 등 부정적 요소가 적지 않아 당장 RIC이 재가동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RIC 부활 이슈는 미국 쪽으로 빠르게 끌려가는 인도를 중·러 쪽으로 끌어오진 못해도 비교적 '중립화'시켜 미국을 일정하게 견제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거의 3자 협의체로 완전 복원은 어려워도 필요할 때 3자 협의는 가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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