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부쳐: 국민헌정 개헌비전 약속해 주길

국민발안권-거부권-소환권 헌법에 명시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 이래 이재명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굳은 다짐과 포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 세계정치학회 개막식에서는 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해법임을 역설했다. 오랫동안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국민을 다시금 역사의 주체이자 국가의 주인으로 호명하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국민적 열망에 불을 지피고 있다.

수많은 정치적 약속들이 그러했듯이, 국민주권이라는 숭고한 가치 역시 구체적인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공허한 레토릭으로 남을 위험성이 크다. 당장 시급한 내각구성과 민생회복이 최우선 과제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오늘(17일) 이 나라의 헌법이 탄생한 제헌절을 맞아 이재명 정부가 감당할 개헌의 큰 방향만큼은 국민 앞에 천명해야 할 때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70기 5급 신임관리자과정 교육생들에게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2025.7.14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70기 5급 신임관리자과정 교육생들에게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2025.7.14 연합뉴스 

현행 헌법 아래에서 국민은 과연 진정한 주권자인가? 안타깝게도 국민에게 허락된 주권행사는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일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전부다. 선거가 끝나면 주권자는 다시 구경꾼의 자리로 물러나고 선출된 대리인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정치엘리트와 관료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고착화되었고 국민은 정치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이 아니다. 말로만 주인을 외칠 것이 아니라, 주인이 주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를 손에 쥐어주어야 한다. 내가 소리 높이는 ‘주권자혁명 개헌’, ‘국민헌정 개헌’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그 뜻을 내비친 바 있다. 국민에게 헌정할 주권자 권리강화 개헌의 핵심은 주권자의 대의권력 우위성을 누구의 눈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확립하여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각인하는 데 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제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주권자 3대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이 필수적이다. 첫째, 국민이 직접 법률안과 헌법 개정안을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권(Popular Initiative)이다. 둘째, 국회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악법을 통과시켰을 때 국민이 직접 투표로 이를 거부하고 폐기할 수 있는 국민거부권(Popular Veto)이다. 셋째,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가 주권자의 신임을 배신했을 때 임기 중이라도 국민이 직접 투표로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권(Popular Recall)이다.

이 주권자 3대 권리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국민주권을 실질화하는 세 개의 강력한 기둥이다. 이 권리들이 도입될 때 비로소 주권자인 국민은 주권자다워지고 대리인인 국회의원과 정당은 대리인다워진다. 이때 비로소 선거로 뽑힌 엘리트들이 보통사람들을 더 두려워하며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더 반응하게 될 것이다.

개헌과정 역시 중요하다. 위대한 국민에게 헌정할 주권자혁명 개헌안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과거처럼 국회 안의 정치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국가의 근본규범이자 최고규범인 헌법을 국회의원들의 ‘셀프입법’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으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개헌 논의는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 해답은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에 있다. 시민의회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인구통계학적 국민대표성을 갖는 일군의 평범한 시민들이 특정 공공사안에 대해 충분한 정보와 균형 잡힌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숙의민주주의 모델이다. 이재명 정부는 바로 이 시민의회를 정치개혁과 개헌의 주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아일랜드의 사례는 시민의회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헌법 개정까지 이끌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아일랜드는 2016년 시민의회를 통해 동성결혼, 낙태죄 폐지 등 해묵은 사회갈등 현안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쳐 헌법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내린 결론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실질적인 제도 변화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시민의회에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숙의한다면 이미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압도적 찬성을 받은 바 있는 직접민주주의 3대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 틀림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국민주권정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을 해낸 위대한 국민을 주권자답게 대우해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답게 강화해야 마땅하다. 부디 이 역사적인 77주년 제헌절에 단순한 기념사를 넘어 주권자 3대 권리와 시민의회를 통한 국민헌정 개헌비전을 엄숙하게 약속해 주길 바란다.

말의 성찬이 아닌 제도의 힘으로 국민이 실제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담대한 선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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