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직시하면 방법은 있고 아직 늦지 않았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 비정상적으로 부동산에만 쏠려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세 가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서도 부동산 금융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부동산 금융의 세 가지 비정상

한국의 부동산 금융에는 세 가지 비정상적인 모습이 뚜렷하다.

첫째, 총신용의 거의 절반(49.7%)이 부동산 금융이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이 빌린 돈(민간 신용) 총액 1932.5조 원이 부동산 부문에 들어가 있다. 이는 전체 민간 신용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한정된 금융자원이 부가가치 비중에 비해 부동산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매년 100조 원 넘게, 연평균 8.1%씩 폭발적으로 늘어온 결과다.

둘째, 기업 신용의 30%가 부동산 관련 업종 대출이다. 기업이 빌린 돈 중에서도 부동산 업종 및 건설업 대출 비중이 크게 늘어 2024년 말 기준 32.7%에 달한다. 기업 신용의 30%가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되는 것 역시 비정상이다. 부동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투자된 자본 대비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가장 낮다. 돈이 이런 곳에 묶이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 동력이 약화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한정된 자금을 부동산에 넣고서, 경쟁력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것이다.

셋째,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은행이 돈을 풀면 생산적인 곳이 아니라 부동산으로만 몰린 것이다. 경기 둔화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이 돈이 생산성 높은 기술 개발이나 제조업 같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비정상적으로 부동산 금융으로만 몰려간다. 이는 부동산 가격과 토지 가격을 밀어 올려,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콘크리트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는 없다. 부동산 금융은 결국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영끌'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빚(부채)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2025.5.21 연합뉴스
올해 1분기(1∼3월)에도 '영끌'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빚(부채)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2025.5.21 연합뉴스

경제성장률 낮추고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시키는 부동산 금융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 세 가지 비정상이 우리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경제 성장이 느려진다. 부동산에 돈이 쏠릴수록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이 되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 신용은 이미 성장에 부담이 되는 임계치를 초과했다.

또한 금융안정성을 해쳐 금융 시스템이 위험해진다. 집값이나 땅값이 떨어지면 빚을 못 갚는 가계와 기업이 늘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 부실해져 연쇄적으로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특히 최근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기업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이런 위험을 키우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더불어 후진적인 금융기관들이 쉬운 부동산 대출에만 안주하게 되어 금융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약해진다.

왜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되었나? 이런 비정상적인 부동산 쏠림은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 사람들의 강한 부동산 선호와 집값 상승 기대, 부동산업 사업체 증가 및 외부 자금 의존도 증가 같은 수요 측면 요인이 있다. 은행들은 이자 장사하기 쉬운 부동산 담보 대출에 집중하고, 비은행권은 위험한 부동산 관련 대출을 늘려왔다.

정책 대출 확대 등 문제 덮기에만 급급한 금융당국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는 BIS 자본 규제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 위험도를 낮게 잡아,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대출을 간접적으로 장려한 측면이 있다. 금융권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된 부동산 대출 규제가 부족했던 점에서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부동산 금융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졌음에도 한국은행과 금융위는 여전히 부동산 금융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을 펴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정부나 금융 당국의 대책은 이런 비정상을 근본적으로 고치기보다 당장 문제가 터지는 것만 막으려는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는 지분형 주택 금융이나 CR리츠는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임으로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 반대로 비정상적으로 커져 버린 부동산업과 건설업 비중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렇듯 부실을 제대로 털어내지 않고 돈을 부어 생명만 연장하는 '에버그리닝'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기를 늘리거나 정책 대출을 확대하는 편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건 마치 중환자에게 수술 대신 산소호흡기만 달아주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미루면 결국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해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위험한 상황인데도 어디에서도 아무런 경고음이 들리지 않고 있다. 여전히 집값을 올리기 위해 영끌을 조장하는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정치권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 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자신이 낸 보고서를 부정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위는 온갖 편법으로 부동산 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영끌'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빚(부채)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2025.5.21 연합뉴스
올해 1분기(1∼3월)에도 '영끌'이 이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체 가계 빚(부채)이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진은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 2025.5.21 연합뉴스

해결책은 이미 나와 있으니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라

우리 경제의 비정상적인 부동산 금융 구조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해결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한국은행과 BIS 보고서 같은 곳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알려진 대책들을 용기 있게 실행하는 것이다.

먼저 부동산에 묶인 돈의 총량을 줄이고,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바꿔야 한다. 정부 재정도 국토부 예산이 혁신 부서 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비정상적인 예산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소득을 기반으로 한 대출 능력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예외 없이,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도 소득 기반 규제가 차입자 회복력을 키우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 강조한다. 만기 연장 같은 규제 회피 수단들을 막고, 정책 대출 규모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거시 건전성 정책을 통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대출을 함부로 늘리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부동산 대출의 위험 가중치를 높여 은행의 자기자본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 있다. DSR기준에 따라 위험 가중치를 선별적으로 적용하거나, 동시에 생산적인 기업 대출에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공급이 부동산으로 더 이상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비정상을 강화할 뿐이다.

아프다고 수술 미루고 30년을 잃어버린 일본, 그 뒤를 좇는 한국

일본 역시 버블경제 대처에 늦는 바람에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다. 비정상적인 금융을 해결하는 대책들은 단기적으로 집값 하락이나 관련 산업의 어려움 같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실행하기 쉽지 않다. 수술의 고통이 두려워 수술을 미루는 것과 같다. 집값 하락을 막으려 문제 해결을 미루고, 심지어 청년 돕는다고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정책은 결국 비정상적인 상황을 고착화하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더 어둡게 할 뿐이다. 일본은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는데, 그것을 생생히 목격한 한국 경제가 그 뒤를 좇고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용기가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눈앞에 와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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