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 낡은 구호 버리고 'AI 국가'로 갈아탈 시간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향후 10년 내 어느 날 아침, 당신의 옆자리에 로봇 신입사원이 앉아 커피를 건넨다. 해외의 범용 인공지능(AGI)이 당신의 팀장이 되어, 간밤에 처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오늘의 업무를 지시한다.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온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범용 인공지능의 출시가 멀지 않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 앞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시대의 규칙을 만드는 ‘설계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만든 세상에 그저 비싼 이용료를 내는 ‘사용자’로 남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AI 국가’와 ‘AI 강국’의 갈림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온 나라가 ‘AI 교과서’를 만드네 마네 하는, 너무나 한가한 논쟁에 빠져있다.

낡은 시스템의 마지막 발버둥: ‘AI 교과서’와 ‘깜깜이 예산’

학생들은 최신형 계산기를 사용하는 시대에, ‘최신 AI를 이용한 주판 사용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발상. 이것이 지금의 ‘AI 교과서’ 논쟁의 본질이다. AI가 인간의 계산, 암기, 정보 검색 능력을 압도하는 시대가 왔는데, 여전히 수능 문제풀이라는 ‘주판알 셈법’은 그대로 둔 채 ‘AI’라는 껍데기만 씌우려 한다.

이런 씁쓸한 코미디는 ‘AI 강국’이 되겠다며 천문학적인 R&D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알파고 쇼크 이후 9년, 챗GPT 등장 이후 3년이 흘렀다. AI를 선도하겠다며 각 부처에서 앞 다퉈 편성했던 그 많던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다시 국가AI 사업이라며 대기업 위주의 콘소시엄을 선정하여 비싼 반도체 칩을 사주는 지원을 하고 있다. 과거에 쏟아 부은 막대한 지원금의 성과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지원은 다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 ?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AI를 전기나 인터넷 같은 사회 인프라나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교양이 아닌, 소수 과학자들의 첨단 기술로만 취급했기 때문이다. AI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위 공무원들이 그럴듯한 보고서만 보고 예산을 분배하는 ‘깜깜이 예산 나눠 먹기’ 시스템은 이러한 잘못된 인식의 필연적 결과물일 뿐이다.

 

인공지능(AI) PG. 연합뉴스
인공지능(AI) PG. 연합뉴스

낡은 마차 수리해서 고속도로 달리자는 발상

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가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 시대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이 벌써 9년 전인 2016년이다. 세상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이미 AI를 중심으로 모든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낡은 시스템 위에서 ‘AI 교과서’나 ‘국가 지원 R&D’ 같은 과거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낡은 마차를 수리해서 고속도로를 달리려는 것과 같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씨앗을 뿌려도 싹이 트지 않는 민간의 혁신 생태계가 황무지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예산을 쏟아붓고 “왜 성과가 없냐”고 묻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우리는 예산 시스템부터 뿌리째 바꿔야 한다. 예산 나눠먹기에만 관심이 있지,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점검하지 않는 정부와 국회의 결산시스템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 계획서만 그럴듯하면 예산을 주고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한 ‘사후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철저한 평가 하에 성공한 프로젝트 연구팀에는 더 큰 기회를, 실패한 프로젝트는 그 원인을 투명하게 분석하고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인터넷과 GPS의 씨앗을 뿌렸던 것처럼, 정부는 당장 돈이 안 되는 원천 기술의 기초를 쌓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벤처 캐피털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이자 장사에만 몰두하는 금융기관만 가득한 현실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혁신 기업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의 연구 지원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그 씨앗에 물을 주고 키워낼 벤처 캐피털 시장을 활성화하는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모험자본을 육성하고, 실패가 자산이 되는 진짜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 공무원뿐 아니라 온 국민까지 ‘AI First 사회’ 만들어야

첫째, 시스템의 설계자인 공무원과 교사부터 AI로 무장시켜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AI 교과서’가 아니라 고위 공무원과 교사를 위한 ‘AI 의무 교육’이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들이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과 행정, 국방의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 가능하다.

둘째, 이들을 시작으로 AI 활용 능력을 전 국민에게 전파해야 한다. 교실에서는 AI를 활용해 논리적 사고의 훈련을 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 행정에서는 AI 챗봇이 24시간 민원을 처리하며 국민의 AI 경험을 축적시켜야 한다. 모든 국민이 AI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진정한 ‘AI First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대학은 AI전사를 키워내는 산실이 되어야 한다. 컴퓨터 공학 전문 분야뿐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AI를 이용해서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을 키워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면적인 대학 개혁이 필요하고, 대학에 연구자금을 대는 기부금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어야 한다.

넷째, AI 산업 지원은 위험을 감수하는 자본을 대는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눈 먼 정부 돈으로 운영되는 관료적 콘소시엄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과거에 성과를 냈던 반도체나 정보 통신 연구조합처럼 민간이 산학연 협업을 할 수 있는 연구조합을 조성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AI 연구의 협업을 활성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AI 연구원부터 설립해야 한다.

다섯째, 국방을 혁신의 테스트베드로 삼아 민간의 역동성을 수혈해야 한다. 미국의 DARPA처럼 민간 최고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제2 국방연구원'을 설립해 AI 지휘통제, 드론봇 전투 등을 현실화하고, 그 성공 경험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미흡하나마 이 정도가 손쉽고 빠르게 AI 국가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일 것이다. 이런 과제는 소홀히 한 채 AI교과서를 만들고 연구비 지원하면 된다는 안일한 자세부터 혁파해야 한다.

지금 당장 새로운 시스템에 탑승하는 ‘AI 국가 프로젝트’를

과거의 성과없는 예산 지원 방식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은 지금 이 시기 막대한 예산을 쓰고서도 허송세월로 일관한 한국의 정책당국이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AGI와 로봇의 시대는 우리가 예산안을 심의하고 위원회를 만드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낡은 시스템을 붙잡고 개선하려 애쓰는 동안, 우리는 미래의 주도권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AI 교과서’ 논쟁을 멈추고, 오늘부터 혁신이 샘솟는 새로운 생태계를 설계하고 그 시스템을 움직일 사람을 키우는 ‘AI 국가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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