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금융 위기가 온다 ①
금융위기에는 공식이 있다.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장기간에 걸쳐 부실 가능성이 높은 부문에 부채가 늘어나다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발생한다. 금융위기 발생 경로는 다음과 같다.
6단계로 닥쳐오는 금융위기
➀구조적 문제로 성장률이 하락할 때 ➁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늘리면 ➂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위험한 대출을 하다가 ➃부실채권을 감추려고 추가적인 대출을 남발하고 ➄이 과정에서 대규모로 좀비기업이 발생한다. ➅결국 한계에 달해 가계와 기업,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것이다. 실물 경제가 좋을 때 발생하면 곧 회복이 가능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성장률이 하락할 때 발생하면 장기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 경제는 현재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계와 기업이 원리금을 갚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막대한 부실채권이 발생했지만,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금융위기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 금융위기의 공식에 맞춰 한국 경제의 상황을 돌아보면, 어떤 형태로든 금융위기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단계; 새로운 성장동력 찾지 못하고 하락하는 성장률
수출 대기업 위주로 성장한 한국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한계에 도달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 대마불사를 믿고 무한정 확장하는 재벌들에게 방만한 대출을 일삼다가 계열사들의 연쇄 도산으로 금융위기와 함께 외환위기를 맞은 바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 특수가 발생한 덕분에 평균적으로 5% 정도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특수가 끝나고 중국이 오히려 우리의 경쟁자가 되어 해외시장을 잠식해 가는 과정에서 성장률은 다시 한 계단 하락했다.
미국에서 2000년 이후 새로운 기술 기업들이 등장해서 현재는 시가 총액 상위 종목을 온통 차지할 정도로 혁신적인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 새로운 대기업의 출현을 보기 어렵고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이 커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기존 대기업들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는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장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의 독립적인 연구보고서에서 모두 20년 후에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지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로 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내수 침체는 불가피하다.
2단계: 미래 위험에 눈감은 금리인하 만능론
경기 순환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사용한다. 반면 한국처럼 근본적으로 구조적 문제가 있을 때는 구조개혁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부서의 관료주의와 정관경언 유착으로 인해 대기업 지원을 우선시 하는 정책적 경향으로 인해, 부실채권을 과감히 정리하여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솎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경영이 어려워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금리인하를 손쉬운 정책수단으로 채택해 왔다. 국제적으로도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한국은행도 미래의 위험에 눈감은 채 금리를 낮추고 과잉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3단계: 금융기관 장삿속으로 부동산 부문에 위험 대출 집중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은 예대 금리차에 의존하는 은행들에게 자금 운용에 있어 새로운 대출처를 찾아 나서게 했다. 한국은행의 과잉 유동성 공급, 금융위원회의 관리 소홀과 함께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편승해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확대했다. 대출 확대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먼저 대출을 확대한 금융기관의 수익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다시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2금융권까지 경쟁적으로 대출을 확대했다.
이런 이유로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2024년 3/4 분기말 기준 1112.1조 원에 달하게 되었다. 기업 대출도 폭증했는데, 부동산업과 건설업 대출액이 500조 원을 상회할 정도로 부동산 편중 대출이 극심하게 발생했다. 총 기업대출의 1/4이 부동산 관련 업종에 집중된 셈이다.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부동산업과 건설업은 한국 경제의 장기 생산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다른 부문에 비해 낮은 비효율적인 부문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생산적인 부문의 대출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성장이 어려운 경제에서 금리를 인하하고 과잉 유동성이 공급되다 보니, 은행들은 넘치는 자금을 처리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금리를 낮추는 원래 의도는, 위험하지만 더 생산적인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벤처캐피털이나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담당하는 금융회사가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부동산 대출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했다면, 우선적으로 벤처캐피털 시장을 활성화하고 스타트업 전문 대출회사를 육성해야 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금리 인하는 비효율적인 부문에 대한 대출만 늘린 셈이다. 이러한 대출이 결국 금융위기의 위험을 높인다.
한국은행과 금융관료들이 금융위기에 원천적 책임져야
이렇게 보면 금융위기의 책임 소재를 밝힐 수 있다. 구조적 개선은 외면한 채 과잉 유동성을 공급한 한국은행과 무분별한 부동산 관련 대출을 방관한 금융위원회가 금융위기의 원천적 원인 제공자가 된다. 더욱이 가계부채와 부동산 관련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경고음이 지속적으로 울렸지만,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과잉 부채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 다시 소비와 고용을 위축시키고 있고, 내수 침체가 지속되면서 금융위기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금리 인하의 목소리가 높다. 부실화 정도가 심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조직의 안위만 생각하는 관료주의에 빠진 한국은행과 금융관료들의 입장에서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들 역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건전성을 유지하는 자율적 규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금융시장에서 금리 인하 만능론이 금융위기를 불러오게 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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