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단일화 거부" 발언뒤 의총 나가
지도부, 전대 개최 공고하며 강제교체 수순
법원, 김문수쪽 전대금지 가처분신청 기각
선관위는 '국힘 여론조사 공표' 불가능
[기사 종합 : 오후 9시 11분]
"저는 5월 3일 저녁 7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고 선거 사무소를 찾아 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님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에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구성을 말씀드렸습니다. 선거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장동혁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 10일까지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선 단일화-후 선대위'라고 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연휴 중에 저를 뽑고 연휴가 끝나자 마자 그 다음날 12시까지 단일화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과연 국민의힘의 책임있는 당직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무소속 후보가 입당도 하지 않고 우리 당 후보가 되는 것을 상정해서 '기호 2번'을 달고 우리 당의 자본과 인력으로 선거운동을 하려면 무조건 5월 10일까지 단일화를 해야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제가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입당도 하지 않은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도와주기 위해서 모든 작업이 시작됐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경선에 참여한 후보는 무슨 존재입니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
국민의힘은 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번 의원총회는 국민의힘이 무소속 한덕수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의 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김 후보에게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단식농성까지 벌이며 김 후보에게 단일화를 하라고 압박했다. 김 후보와 한 후보는 단일화 협상을 위해 2차례 만남을 가졌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김 후보는 오는 14일까지 선거운동을 한 뒤 단일화를 진행하자고 했다. 한 후보는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단일화가 잘 되면 즉각 국민의힘에 입당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원총회는 이전보다는 비교적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김 후보가 발언을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날 김 후보가 의원총회장에 들어서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환영했다. 최근 알려진 당내 분위기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덕수 단일화를 단식까지하며 주장했던 권 원내대표는 김 후보에게 꽃다발까지 건넸다.
권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김문수 후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뜨겁게 살아온 분"이라며 "여기에 있는 국회의원은 모두 김문수 후보 등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의 활약을 보고 자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이어 "지난 일주일 동안 김 후보님과 단일화에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오늘은 대화가 잘 되길 바란다"며 "단일화에 대한 강한 열망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제가 후보에게 다소 과격한 발언을 내놓은 바가 있다. 이 자리를 통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전날 권 원내대표가 김 후보를 향해 '알량한 대통령 후보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한 말에 대해 사과한 것이다.
김 후보도 권 원내대표의 발언에 화답하듯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정말 사랑한다"고 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표시를 만들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김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단일화 압박을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당 지도부는 지금까지도 나를 끌어내리고 무소속 후보(한덕수)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나는 이 시도를 불법적이고 당헌·당규에 위반하며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반민주적 행위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 후보는 "무소속 후보는 지난 7일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서 대통령 후보 등록 마감일까지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대통령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단일화는 우리 진영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상황은) 나를 끌어내리고 선거에서 검증받지 않은 무소속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것"이라며 "나는 이런 단일화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단일화 방법은 여태까지 말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며 "단일화는 이기는 단일화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후보의 발표를 듣고 "내용이 굉장히 실망스럽다"며 "긴말하지 않겠다. 더 큰 지도자가 되려면 자기 자신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단상에서 내려온 뒤 굳은 표정으로 의원총회장을 떠났다.
권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장에 나와서 "당에서 단일화를 후보에게 요청한 이유는 김 후보가 이미 여러 차례 (단일화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라며 "지난달 20일 인터뷰부터 지금까지 단일화 약속을 20차례나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일화 명분은 우리 여론조사 결과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 전원 일치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도 의원총회장을 가로질러 출구로 향했다. 의원총회장에선 "얘기 좀 듣고 가세요"라는 의원들의 외침이 들렸다. 일부 의원들은 통행로로 나와 퇴장하려는 김 후보를 가로막았다. 김 후보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의원총회장을 빠져나갔다. 몇몇 의원은 의원총회장 밖까지 따라가며 "가면 안 된다"고 김 후보를 만류했지만, 김 후보는 그대로 국회를 나갔다. 김 후보가 의원총회장에 들어선 지 20분 만에 퇴장하면서 의원총회도 중단됐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 후보의 갈등은 점점 더 극으로 치닫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당 지도부가 대선 후보 공천장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것 아니냐"면서, 김무성 대표 시절의 '옥새 파동'까지 회자되고 있다. 옥새 파동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계파 갈등이 격화하며 김무성 당시 대표가 일부 지역구 후보자의 공천장에 대표직인 날인을 거부한 일을 말한다. 김 후보가 선관위 후보 등록을 위한 직인을 요구하고 지도부가 이를 거부할 경우 '제2의 옥새파동'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온다.
여기에 법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끼어들면서 상황은 '최악의 최악'으로 흐르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권성수 수석부장판사)는 이날 김 후보가 당을 상대로 낸 대통령 후보자 지위 인정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김 후보를 지지하는 원외 당협위원장 7명이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 개최를 금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역시 기각됐다. 오는 11일 후보등록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전국위와 전대를 열 수 있도록 법원이 문을 열어준 셈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미 김 후보와 한 후보 간 단일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일방적으로 전국위를 8일 또는 9일, 전대를 10일 또는 11일 소집한다는 공고를 내놓은 상태다. 다만 지도부 역시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에도 일방적으로 단일화를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선관위가 국민의힘의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도부 입장에선 공표도 하지 못하는 여론조사 결과로 강제 단일화를 밀어붙이는 형국이지만, 이는 정당성이 없을 뿐 아니라 당원들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공표금지된 여론조사를 근거로 전국위 의결을 통해 후보를 강제 교체할 경우 향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수록 당내 분열만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에 김 후보와 한 후보는 이날 오후 8시 30분부터 국회에서 단일화 협상을 재개했다. 단일화 협상에는 김 후보·한 후보 쪽에서 각각 2인과 국민의힘 이양수 사무총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나 양쪽은 단일화 협상을 앞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벼랑 끝 대치가 쉽게 결론나기는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김 후보 승리캠프는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 뒤, '법원도 김문수를 후보로 인정했으니 그 위치를 흔들 수 없다'고 입장문을 냈다. 김 후보 캠프는 입장문을 통해 "9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김 후보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며 "그러나 결정문에서는 김문수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임을 명확히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원조차도 김 후보의 지위를 부정하지 못한 것"이라며 "김문수는 명백한 대통령 후보"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대통령 후보자의 임시 지위에 있음을 확인해달라'는 김 후보 신청에 대해 "현재로선 국민의힘이 김 후보의 후보자 자격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지 않다"며 "이 부분 신청을 구할 필요성이 없고, 가처분 판단을 구할 실익도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김 후보 쪽은 이러한 법원의 결정문 내용 일부를 인용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김 후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반면 한 후보 캠프 이정현 대변인은 "가처분 기각 결정과 관련하여, 저희들은 차분하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가처분 기각으로 김 후보 쪽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대선 승리다. 나머지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면서, 거듭 한 후보와의 단일화를 재차 강조하는 메시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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