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 무시되는 현실
나는 지난 7-8년간, 왜곡된 페미니즘 사상이 정치는 물론 언론, 사법, 행정 등 국가 운영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영역에 침투, 끝내 그것들을 지배하며 억울한 피해자들을 양산해내고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현상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이제 그 광풍이 겉으로는 잦아들고 있어 보이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억울한 인권유린의 피해자들은 남아 있다. 현재 1심에서 검찰 구형 5년을 받은 정철승 변호사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라 생각하며, 그의 사건이 그 개인의 억울함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사건에 대해 생각하며 내가 지금껏 가져왔던 문제의식들을 정리해 보았다.
여성혐오, 꾸밈노동, 시선강간, 성적 대상화, 한남, ‘여성은 2등 시민’, 대한민국이 성희롱과 불법촬영이 난무하는 사회라는 주장,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심지어는 여성이 피해자가 된 모든 범죄에 ‘페미사이드’ 즉 여성혐오 범죄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등의, 그 무게감과 사회적, 법률적 층위는 상이하되 래디컬 페미니즘의 맥락에서는 전부 궤를 같이하는 의제들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대략 2016년 말부터 2018년 초-중반쯤으로 추산할 수 있을 듯하다. 박근혜 탄핵 직후 완전한 민주화를 기치로 내건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페미니즘이 대단히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계속했고, 여성계는 ‘성차별 철폐가 진정한 민주화’라는 기치를 내걸며 당시 분출하던 정치적 에너지에 힘입어 열렬히 활동했던 까닭으로 페미니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것을 시대정신이라 믿고, 또 그 시대정신을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 대한 환희와 축복의 감정과 연결시켰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페미니즘의 역사나 의미, 그리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페미니즘이 어떤 위험성을 지녔는지 인지했던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아니 사실상 전무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의 페미니즘은 단지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서브컬처의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일종의 ‘총체적인 현상’이었다.
상술한 현상은 이 작은 지면에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대단히 많은 부조리를 내포하고 있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현상’이라고 부르기에는 일견 부족한 일종의 광풍이 지나간 뒤, 이제는 마치 사문화된 교회법처럼 여론의 전면으로 쉽사리 떠오르지 않고 있기에 이 이슈와 직접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먼 기억 속의 일이 된 듯하고, 언론 지면에서도 그리 비중 있게 다루지 않으며 기계적 중립을 고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 기현상은 성범죄 관련 형사사법절차에서 깊은 흉터와 같은 흔적을 남겼는데, 이를 단순히 그 수사·처벌 관행의 변화 정도로 단순화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는 인권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이를 방치하며 그 사각지대를 만든 가해자 집단의 전횡을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인권유린 사례들을 양산하고 그러한 불의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을 넘어 가해자들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는 것이다. 현재 그로 인한 인권유린의 피해자들은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호소할 곳도, 구제받을 수단도 없이 인격의 붕괴 또는 말살을 감당하고 있는데, 지난 7~8년 동안 생겨난 피해자들의 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희생자들은 대부분 청장년 남성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파멸은 그들이 속해 있거나 부양하고 있는 가정의 파멸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정치적 미투 사건들이 하나둘씩 터지면서, ‘페미니즘 광풍’ 속에 내재돼 있던 위험 요소가 현실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론, 언론, 사회문화적 범주 안에서 사회적 흐름이나 현상 정도로 머무르던 일각의 목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특정인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절대 권력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절대 권력의 대상은 유명인사들부터 시작해서 차차 번져나가, 정치계나 법조계, 시민사회계에 속한 인사들을 거쳐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마구잡이로 행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 누구도, 그 권력의 칼 앞에 맞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권력은 이른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언론,사회,문화계뿐 아니라 정부 내 각종 위원회를 장악하고 인권위, 경찰, 검찰 및 법원 등 권력기관들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뒤에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들, 페미니즘 권력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공적, 사회적 활동뿐 아니라 소소한 경제활동마저 심하게 제약받고 심지어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매장되어 버릴 수도 있다.
글의 제목으로 돌아와 보자. “왜 유독 성범죄 판결에 있어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들이 속출하는가”라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현재는 그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운 원래의 페미니즘은 남녀노소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아름다움을 지닌 나름대로 독보적인 이념이자 실천이었다. 모든 사람은 그의 성별, 인종, 성적 지향 여부를 떠나 본원적으로 존엄하며, 마땅히 상식화되어야 할 그 불가침의 존엄이 각종 편견과 악습, 문화지체현상, 낡은 제도로 인해 훼손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 페미니즘은 반기를 들었으며, 1세대 페미니즘이 한국 여성인권을 위해 투쟁하던 시대에는 여성 외에도, 여성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탄압받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바로, 빈자들과 블루컬러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며 그들을 대리해 독재자들의 총구를 향해 맨몸을 들이밀었던 민주화 투사들이었고 사회운동가, 혁명가들이었다. 그랬기에 한국 진보정치와 1세대 페미니즘은 마치 결코 이별할 수 없는 애틋한 연인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 페미니즘이 현재까지 유지되었다면, 성범죄 관련 형사사법에서 국민의 법 감정 그리고 상식, 건전한 도덕 관념과 동떨어진 형사 처분과 판결들이 빈번하게, 아니 거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이 심각한 인권유린 실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어온 여러 굵직굵직한 리더들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에 동조했으며, 그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하고 실천했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고 박원순 시장을 들 수 있겠다. 그가 다른 진영의 정적도, 일반 시민도 아닌 그가 아낌없이 –사비까지 털어가며(어쩜 그에게 대의를 위해서라면 사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지원하고 성장시켜왔던, 그래서 그가 죽을 때쯤 중앙 정계는 물론 언론 사법 사회 문화예술계 전반에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던, 그의 후배 되는 2세대 페미니스트들과 그녀들에게 현혹당한 더 어린 페미니스트들에게 부관참시당했던 것은 박원순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개탄스럽고 분노할 사건이면서도, 한국 페미니즘의 병리적 방향으로의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못 박는 사건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게다가 고 박원순 사후 여론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국민이 각자의 이유로 고 박원순을 비난했는데,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그를 성범죄자라고 믿었기에 그를 비난했고, 중도나 정치 무관심, 저관심층은 정치권 전반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추상적 반감을 고인에게 투사하여 비난했고,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진보 진영의 위선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누구도 여론재판으로 박원순을 성범죄자로 몰고 갔던 페미니스트들에게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박원순 퇴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재련 변호사 등을 비롯한 여성계 인사들은 단지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는 이유로 그들-현재의 페미니스트들-이 제3의 진영이자, 우편향적이면서도 독자적인 권력 추구 집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간과되었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합리적 비판조차 “2차가해”로 몰렸다.
앞서 나는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을 ‘권력 추구 집단’이라 칭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은 인권의 보편적 실현을 위해, 더 나은 사회로의 진보를 위해 우리 사회의 보수 기득권 권력에 맞서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획득했다면,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은 선배들의 노력으로 얻게 된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기반으로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페미니즘이 유사 시대정신이 되자, 집권 정치세력의 파트너 행세를 하며 기득권 권력이 되어버렸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들은 선한 의지와 정의로운 기치로 국민의 지지를 얻었던 선배 페미니스트들과는 전혀 달리 남혐에 가까운 행태로 젠더갈등과 사회적 반목만을 부추기다가 급속도로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그렇게 외면당했음에도 기득권화된 페미니스트들이 남긴 흔적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뚜렷한데, 그 중 하나가 형사사법절차에 그들이 남긴 인권보호와 정의를 위한 원칙의 심각한 훼손이다. 성범죄와 관련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인권보호를 위한 헌법상 대원칙이자 국민의 기본권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는 사실상 폐기되었다. 즉, 여성에게 성범죄자로 지목된 남성은 유죄로 추정되고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여성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남성은 성범죄자로 처벌받는 중대한 인권유린이 현재 성범죄 관련 형사사법절차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가 그 출처와 의미도 불분명한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이 외쳐온 구호에 밀려난 것이다. 그 결과 성범죄 수사와 재판은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라는 호령만 난무하는 조선시대의 원님재판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억울한 ‘가짜’ 성범죄자들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가정들이 파괴되면서 억울한, 들리지 못할 절규와 원망이 쌓였다.
이 글은 원래, 명백한 반대증거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성추행 피의자가 되고,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로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정철승 변호사 사건을 소재로 쓰기 시작했던 글이다. 그러나 사감을 가지고 쓴 글은 아니다. 그의 개인적인 사건이 갖는 너무나 크고 중대한 사회적 의미를 공론화할 필요성을 나는 느끼고 있다. 인권과 정의에 부합하는 언어와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면받게 된 페미니즘이 남긴 흉터와 같은 흔적들도 지워내야만 하겠다. 더욱이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법원 등의 형사사법기관에 의해 도리어 중대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좌시하기 어려운 국가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사법당국의 각성과 시정을 촉구한다. 국민이 이 실상을 알게 되기 전에.
[알립니다]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성범죄 판결들, 왜?" 등 관련
본지는 지난 5월 4일~6월 26일 간 정철승 변호사의 성추행 판결 관련하여 <국민의범 감정과 동떨어진 성범죄 판결들, 왜?> 등의 제목으로 4차례에 걸쳐 사법부가 편파적으로 판결했다는 취지의 기고문을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1심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확보된 CCTV 영상을 증거로 채택하였고, 피해자거부 의사를 표시한 영상 및 피해 주장 상황 당시의 다양한 증거를 고려하여 정철승 변호사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으며, 현재 항소 중인 사건임을 알려 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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