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정세, 이념보다 한반도 균형국가론으로 전환

먼저 한반도 평화공존 구조 만들기 합의가 중요

남북의 수교는 여운형 좌우합작론의 실천

광복 100주년인 2045년 통합논의를 향한 준비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

1.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내외 조건

가.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로 야기된 윤 탄핵에 따라 민주당-국민의힘 대립축으로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이다. 이번 대선의 야권승리 여부는 시대전환의 향방을 결정짓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중도 보수와 진보 세력의 연합인 범야권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결의를 통해 윤석열 내란세력의 기도를 무력화했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평화적 시위운동으로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냈고 세계적 호응을 이끌어냈다.

현 정권은 나라 걱정하는 국민들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암약하는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하고 탄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시민들은 국가기강을 허물고 자랑스런 독립운동의 역사를 친일·매국 역사로 변조하며 정권의 부당성을 전쟁위협으로 호도하려는 윤 집권세력이야말로 ‘친일·매국’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중한 시기이며 정권교체는 지상과제다.

미국과 서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극우세력이 등장하고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는 오늘, 한국의 민주시민들이 윤석열 친위 군사쿠데타를 평화적 시민운동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이른바 선진국 시민들은 경외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열악한 조건의 분단 한국의 평화 시민운동이 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현실이 선진국뿐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의 ‘제3세계’ 시민들에게도 민주주의의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나. 2024년 말~2025년 초에 이르자 한국의 최대 우방국인 미국과 일본에서 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바이든 민주당 정권이 트럼프 제2기 공화당 정권으로, 일본에서도 친 아베계 정권으로부터 비 아베계 이시바 시게루 정권으로 바뀌었다. 한국의 윤석열 정권까지 교체된다면 한미일 군사동맹이 유지될 조건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추세 속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대조선(북한) 수교 가능성만으로도 그들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민주화와 사회 대개혁에 기반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집권해야 내외의 복합위기를 극복해가면서 조선과의 관계 개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미국과 일본이 조선과의 국교수립을 타진해오는 등 대외관계가 호전되고 있다.

조미 수교는 조선의 국가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의 고이즈미-김정일 조일 정상회담 이래 아베의 집권으로 수교교섭은 중단되었지만 다시 재개된다면 일본도 미국에 뒤지지 않도록 급진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다. 국내외 조건에 대한 한국인 인식은 광복 이후의 냉전, 탈냉전을 거쳐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념보다는 한반도 균형국가론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 정치경제 조건도 이에 따라 변화가 불가피하게 다가올 것이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는 그와 같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냉전 기득권세력의 과민반응이 아니었을까 해석된다. 2차 세계대전 이래 거의 정권이 바뀐 적이 없는 중국, 일본, 조선의 집권세력들은 집권자와 그 세력을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민운동을 통해 교체하는 나라가 이웃에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라. 20세기 1, 2차 세계대전의 승전으로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인종주의, 에너지와 달러화 위기 때문에 제조업의 공동화와 미국내 중산층의 몰락과정을 거치면서 트럼프 제2기 집권 이후 안보-경제 정책에서 극도의 자국 이기주의에 집착, 세계 안보지형과 교역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 유지를 위한 모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 일본 한국이 미국의 제조업, AI와 전자산업에 위협적 도전을 하고 있지만, 그들 국가가 인구학적 격변, 즉 노령층의 급증과 노동인구의 격감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1945년 8월 16일, 일제 패망 발표 다음날 서울 휘문고보에 몽양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든 군중과 몽양. 위키백과
1945년 8월 16일, 일제 패망 발표 다음날 서울 휘문고보에 몽양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여든 군중과 몽양. 위키백과

 

1947년 5월, 서울 원구단 앞에 선 몽양 여운형.   나무위키 
1947년 5월, 서울 원구단 앞에 선 몽양 여운형.   나무위키 

2. 일제 식민지배기와 해방공간에서의 여운형의 대응

일제 식민지배기에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광복-해방 초기 분단-전쟁을 막기 위해 몸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좌우합작 노선을 다시 한반도 대전환기를 맞아 주목하는 일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여운형 선생은 일제 지배 초기부터 망명지 중국에서 최초의 근대정당 신한청년당을 창당, 3.1독립운동을 추동했고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 주동적 역할을 했다. 도산 안창호와 함께 임시정부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중국의 국공합작 성사를 통해 독립운동의 통합과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진력했다. 일제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감옥살이를 한 뒤에 언론인 체육인으로 변신, 국내의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일제 식민지배 말기에 이르러 일제의 치밀한 감시망을 뚫고 예비조직인 조선민족해방연맹을 통해 비밀결사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여 다가올 해방을 맞을 준비를 했다. 건국동맹 휘하에 농민동맹을 조직, 각종 후방교란과 반일투쟁을 전개했고 건국동맹 강령 등을 마련했다.

8.15 아침 조선총독부와 회담, 5개의 요구사항을 전달, 치안권 등 통치권 일부를 이양받았다. 오후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감옥에서 출옥하는 독립운동가들을 맞이했다. 16일 수천명의 군중들의 요구에 응해 휘문중학교 운동장에서 해방의 감격을 알리는 첫 대중연설을 했고 건국준비위원회의 강령 등을 공식 발표했다.

1946년 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오보 소동으로 신탁통치 반대·찬성 운동으로 좌우대립이 격화하자 즉각적인 임시 민주주의 정부수립 등을 내걸고 결집한 민주주의민족전선에 공동의장으로 (다른 한 분은 김규식) 참여했다. 평양을 방문하여 조만식 김일성 등을 만나 미소공동위원회의 개최를 통한 임시정부 수립 문제 등에 대해 협의했다. 미소공동위원회의 무기한 휴회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시사하는 정읍발언 이후 분단 방지를 위해 좌우합작위원회를 조직, 덕수궁에서 1차회담을 개최했다. 1주일 동안 방북하고 돌아와 좌우합작의 문제로 대립하던 양측을 중재하여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했다. 1947년 5월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가입과 1948년 런던올림픽대회 참가를 신청하여 같은 해 6월 정식으로 IOC의 인가를 받았다. 7월 19일 광복 이후 12차례나 테러 위협에 시달린 끝에 종로구 혜화동 로타리에서 총격으로 숨졌다.

 

4월 29일 광주에서 열린 '한반도 대격변기의 사회대개혁' 강연회장의 필자.
4월 29일 광주에서 열린 '한반도 대격변기의 사회대개혁' 강연회장의 필자.

3. 한국과 조선의 수교는 여운형 좌우합작론의 실천이다

한반도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급격히 변화했다. 한국에선 통일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을 추진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 한국과 조선은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중요 문제에 합의했다. 또한 1991년에는 한국과 조선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과 수교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조선과의 수교를 거부했고 조선은 미·일이 자신을 붕괴시키려 한다고 판단, 핵무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21세기에 들어오는 길목에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짐으로써 여운형 노선이 반세기가 지나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이 정상회담은 여운형이 예견한 바와 같이 한반도의 비중을 한껏 높였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익 우선’을 내세우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밀물이 만조기를 지나 썰물로 돌아서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20년이 지나면 2045년 광복 100주년이 된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

윤석열 정권은 조선을 공존할 수 없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전쟁 불사론까지 내세우면서 지난 20여 년 쌓아온 6.15 정상선언, 10.4 정상선언, 9.19 군사합의 등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을 위한 합의를 모두 파기했다. 조선도 한국과 모든 관계를 끊고 ‘2민족 2국가’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몽양 여운형의 합작노선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우리와 내일의 주인공들에게 그 유훈을 되새겨주고 있다. 한국과 조선의 수교는 여운형 좌우합작론의 실천이다.

가. 한국과 조선은 일제 식민지배와 미·소군의 남북 분단점령으로 생겨난, 우리의 소망에 배치되는 임시체제다. 한국과 조선은 우선 한반도에 평화공존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6.15 남북정상 합의는 중요하다.

나. 남북이 서로 존중하고 전쟁 없이 살아갈 제도와 장치를 준비해야겠다. 우선 한국은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는 헌법조항부터 개정하여 현재의 군사분계선으로 조정해야 한다. 조선은 한국의 국력우위에 대한 경각심을 대남 강경자세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대조선정책이 포용으로 변화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 한국은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과 정전협정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라. 한국은 같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평화공존과 호혜교류 원칙에 따라 조선과 국교수립 정책을 추진한다. 미국과 일본에게도 조선과의 국교수립을 권고한다.

마. 미국은 조선과 국교수립 과정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필요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

바. 한국은 유엔과 국제기구에게 유엔 회원국인 한국과 조선이 함께 평화를 유지하고 공동으로 번영을 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고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

사. 2045년 이후 적절한 시기에 국가연합 혹은 연방국가 등 하나를 향한 논의를 양쪽이 합의하여 시작한다.

위의 7개 조항은 모두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전환기를 맞아 우리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합작노선에 따라 광복 100년을 내다보는 청사진을 가다듬는 작업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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