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민 눈물 외면하고 대선 나가는 지자체장들

이철우 경북지사 출마 선언 "산불 대응 다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곧 출마 예고 "즐거운 마음"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 12명 중 5명 대선 저울질

김문수·한동훈·안철수·이정현·유정복 등 출사표

나경원 11일…오세훈 13일…홍준표 14일 출마

원희룡, 김태흠, 박형준 등 대선 불출마로 가닥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게 출마선언문을 전달 한뒤 발언하고 있다. 2025.4.9. 연합뉴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게 출마선언문을 전달 한뒤 발언하고 있다. 2025.4.9. 연합뉴스

초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대구·경북(TK) 지역의 광역자지단체장들이 잇따라 대선 출마를 하거나 대선 출마를 예고하면서 시·도민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은 아직도 복구가 되지 않고 있고 여전히 봄철 산불 경고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재난 '컨트롤 타워'를 해야 할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욕망에 '책임 정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전날인 9일 오후 국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어 "확고한 국가관과 애국심, 탄탄한 실력과 경륜으로 이재명을 이길 수 있는 새 인물이 이철우"라며, 21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 지사는 "현재까지 잘 알려진 우리 당 대선 주자들은 여론조사에서 모두 이재명에게 큰 차이로 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경선에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승리하는 대이변이 일어나지 않으면 대선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같은 날 오전엔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대선 출마 회견을 열고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볼 수 없어서 새로운 박정희 정신으로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다"고 홍보했다. 그는 특히 당면한 산불 피해 극복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에 대한 차질을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 "APEC은 거의 준비를 다 마쳤다"며 "산불(대응)도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다 다했다. 이제부터는 대부분은 국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따개비마을이 지난달 번진 산불로 여기저기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5.4.9. 연합뉴스
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따개비마을이 지난달 번진 산불로 여기저기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5.4.9. 연합뉴스

윤석열 탄핵심판 '각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 각하 부르기 운동을 하자"는 주장을 해 파문이 일었던 이 지사는 출마 선언 뒤, 직접 윤석열도 만났다. 그는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님을 어제(9일) 저녁 한남동 관저로 찾아뵙고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고 말씀드렸다"며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최선을 다하시겠다'면서 저에게도 '힘껏 노력해서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대통령이 되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고 적었다.

산불 피해지역이 있는 대구시의 홍준표 시장도 출마를 예고했다. 홍 시장은 시장직을 버리고 대선 출마하는 데 대해 "즐거운 마음"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 "다음주는 참 바쁜 한주가 될 것 같다. ▲월요일은 꿈은 이루어진다 책 출간하고 ▲화요일은 퇴임 인사 다니고 ▲수요일은 대한민국 혁신 구상을 담은 제7공화국 선진대국시대를 연다 책 출간 하고 ▲목요일은 그동안 시정을 감시하고 도와 주었던 시의회에 가서 퇴임 인사 하고 ▲금요일은 그동안 같이 일했던 대구혁신 100+1 대구 시청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10일 대구시의회에서 퇴임 인사를 한 후 시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5.4.10. 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이 10일 대구시의회에서 퇴임 인사를 한 후 시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2025.4.10. 연합뉴스

홍 시장은 "25번째 이사를  합한다. 53년 전 동대구역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상경했던 그 시절처럼 이번에도 동대구역에서 고속 열차를 타고 상경한다. 그때는 무작정 상경이라서 참 막막 했지만 이번은 마지막 꿈을 향해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 간다. Great Korea!(그레이트 코리아, 위대한 한국) 그 꿈을 찾아 상경한다"고 덧붙였다. 인접 지역인 경북이 산불 재난에 신음하고 대구시 역시 산불 피해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대통령 꿈'만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경북도의회 민주당 임기진·김경숙 의원은 10일 성명을 내고 "산불로 신음하는 도민을 외면한 채 대권 놀음에 나선 이철우 지사는 더 이상 도지사의 자격이 없다"고 맹비판을 했다.

임기진·김경숙 의원은 "이 지사는 휴가를 쓰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간다고 한다. 경북의 총책임자가 도정을 외면한 채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모습은 재난 앞에 선 도민들을 두 번 울리는 무책임의 극치"라며 "경북지사는 이미 '윤 대통령 각하 부르기 운동'과 '탄핵 반대 집회 애국가 제창' 같은 시대착오적 행보로 도정을 정치 선동의 무대로 전락시키며 노골적인 편향성을 드러낸 바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이 지사는 지난 3월 31일에는 산불 피해를 '파괴의 미학'이라 표현하며,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던 도민의 가슴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안겼다. 재난 앞에 선 인간의 비극과 절망에 대한 냉담함과 공감 능력의 결여는 지도자로서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라며 "이 사는 고통의 땅 위에 어떠한 미학도 존재하지 않음을 자각하고, 지금이라도 이재민 앞에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7일 경남 하동군 옥종면 회신리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5.4.7 [산림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연합뉴스
7일 경남 하동군 옥종면 회신리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5.4.7 [산림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연합뉴스

민주당 이영수 경북도당위원장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산불 현장은 피해 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쪽에 사료공장에 불이 나고 있어도 조사가 끝나지 않아 건초 더미를 치우지도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복구도 안되고 치우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재난 상황을 전했다.

이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그 대책을 수립하고 진두지휘해야 할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이 시기에 자기 정치 욕망을 위해 출마한다는 것은 도민들 입장에서 분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홍준표 대구시장도 마찬가지 시·도민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정치 야욕에 따른 정치 행위만을 하는 상황들이 개탄스럽다. 우리 지역의 (국민의힘) 일당 독식 정치 구조가 씁쓸하다"고 말했다.

TK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12개 지자체가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다. 이 가운데 이철우 경북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외에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대선 출마를 예고한 상태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 9일 이미 출마선언을 했으며, 이장우 대전시장도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 선언이나 출마 예고를 했거나 출마를 고심하는 지자체장은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12명)의 약 40%에 이른다. 한때 박형준 부산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도 대선 출마를 저울질했지만, 모두 이날 불출마 선언했다. 민주당에선 김동연 경기지사 1명만 출마를 선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 복지재단에서 열린 디딤돌 소득 가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4.10.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 복지재단에서 열린 디딤돌 소득 가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4.10. 연합뉴스

국민의힘 지자체장들이 이례적으로 대거 출마를 하는 이유는 전당대회 '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공직자 사퇴 시한(5월 4일) 하루 전인 5월 3일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 후보를 확정하기로 했다. 지자체장이 경선에 참가해도 공직을 유지하도록 뒷문을 열어둔 것이다.

특히 이들 지자체장들은 대부분 여론조사에 잡히지도 않거나 잡히더라도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시·도정을 3~4주 정도만 버려도 자신의 지위에 아무런 해가 없는 만큼 대선에 나서서 자신의 몸값을 키우는 게 정치적 득실을 따졌을 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 출마자 중 홍 시장 외에 아무도 직을 버리지 않았다. 책임 정치의 실종이다.

한편 6·3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의힘은 오전 비상대책위원회의를 통해 경선제도를 확정했다. 두 차례 예비경선(컷오프)을 통해 대선후보를 각각 4명과 2명 순으로 압축하되, 4인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2인 경선 없이 후보를 확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1차 경선은 일반국민 여론조사 100% 방식, 2차 경선은 선거인단(당원) 투표 50%+일반국민 여론조사 50% 방식이다. 2차 경선에서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당헌·당규에 따라 당원 투표 50%+일반국민 여론조사 50%로 1·2위 득표자 간 최종 경선을 한다. 국민의힘은 오는 14∼15일 후보 등록 신청을 받은 다음 서류심사를 통해 16일 1차 경선 진출자를 발표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2025.4.10.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2025.4.10. 연합뉴스

국민의힘 경선이 확정됨에 따라 출마 선언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 출마자의 변은 대부분 내란 사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란 사태를 극복하고 미래로 가는 비전보다는 오로지 반(反)이재명에만 집중돼 있는 모습이다.

이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국회 본관 분수대 앞에서 출마 선언식을 열고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겨냥해 "위험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괴물정권이 탄생해 나라를 망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출마를 공식화했다. 내란 사태가 장기화하자 사실상 침묵했던 한 전 대표는 "그날의 비상계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겁이 나서 숲에 숨은 이재명 대표보다 제일 먼저 국회로 향하고, 제일 먼저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한 사람, 저 한동훈이 맞서야 한다"고 궤변을 늘여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내 1위를 하고 있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임기 중에 파면되는 것을 보면서, 국정을 책임지고 있던 국무위원으로서 비통한 심정과 책임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며 "거짓과 감언이설로 대한민국을 혼란과 파멸로 몰고 갈 이재명의 민주당은 저 김문수가 확실히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내란으로 파탄난 정권의 국무위원으로서 통렬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반이재명뿐이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 설치된 전태일 동상 옆에 앉아 있다. 2025.4.10 [공동취재] 연합뉴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 설치된 전태일 동상 옆에 앉아 있다. 2025.4.10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 밖에 유정복 대전시장은 지난 9일,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8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들의 출마 선언 역시 '반이재명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오는 11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13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오는 14일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대권 출마설이 있었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김태흠 충남지사, 박형준 부산시장 등은 불출마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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