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기습지명으로 '대통령 흉내'

'있는 듯 없었던' 총리 모습 벗어나지 말라

스스로 바로잡으려 않으면 강력한 '교정' 필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기가 만료되는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기습 지명했다. 윤 대통령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내란 공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을 지명한 것도 문제지만 ‘임시 관리자’에 불과한 권한대행으로서 헌법기관 인선이라는 탈선 행위를 한 것이다. 이는 2중의 탈선이랄 수 있다. 첫째는 권한대행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 ‘대통령 흉내’를 내려 한 것이라는 점에서 월권 행위라는 탈선을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총리로서 줄곧 보여왔던 ‘무능’에서의 이탈이라는 탈선이다. 한덕수의 아이러니는 지금 그 무능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인데, 그는 오히려 무능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권한대행이 총리로서 국정 현안에 대해 보여준 모습에 대해 유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유능은커녕 마치 ‘있으면서 없는 존재’였다. 존재감이 희박해 ‘부처 과장급 총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책임총리제를 표방하며 그를 총리로 임명했지만, 실제 내각 인선 과정에서부터 책임총리의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이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한 독단적인 인선을 진행할 때 한 총리의 참여는 배제됐다. 한 총리 자신도 책임총리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나서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2022년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부터 그는 ‘복지부동 관료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답변, 책임은 끝까지 지지 않으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 그건 그의 관료로서의 40년 간의 처신의 집약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총리직에 있으면서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폭정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바로잡으려는 말을 했다는 흔적은 없다. '영혼 없는 관료'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5.4.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경제안보전략 TF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5.4.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와 새만금 잼버리 파행과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 한 총리가 주목을 받은 것은 책임 있는 총리로서보다는 물의를 빚은 발언을 한 때뿐이었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1월 1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의 농담이 대표적이다. 한 외신기자가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이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물었을 때 통신 오류가 발생하자, 한 총리는 이를 두고 “(통역이)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면서 반문했다. 참사의 원인과 대책을 진지하게 묻는 자리에서 나온 당혹스러운 농담이었다. 한 달 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고등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들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답변했다. 희생 학생의 유가족은 “우리 아이를 굉장히 모독하는 발언”이라며 분노했다.

2023년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사태 당시 그의 발언도 적잖은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대회 기간 동안 폭염과 부실한 시설 관리로 참가자들의 불만 폭발했고 일부 나라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조기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던 상황에서 한 총리는 "야영은 원래 불편한 것"이라는 발언으로 네티즌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제3자 변제’ 해법과 이어진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싸고,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이번에 가장 큰 돌덩이를 치웠고, 이제 그러한 돌덩이를 치운 노력을 토대로 하나하나 다 논의하고 해결해나가겠다”고 말해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한일 관계의 걸림돌(돌덩이)로 비유하는 물의를 빚었다.

‘책임’과도, ‘총리’ 역할과도 거리가 먼 그의 언행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2024년 9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극찬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윤 대통령을 "대인(大人)"이라 표현하며,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우선시한다"고도 했다.

그같이 굽히고 순응하며 권력자의 수족같은 모습을 한결같이 보인 그가 8일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한덕수답지 않은' 모습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지금까지 세 차례 있었으나, 모두 다른 헌법기관이 선출한 인사를 형식적으로 임명한 것뿐이었다. 권한대행이 직접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하여 임명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2017년 박근혜 파면 이후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 당시 총리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대통령 몫)이 퇴임했을 때 후임 재판관을 지명하지 않고 차기 대통령에 지명권을 넘겼다. 말하자면 그는 과거 '보수' 계열 정부에서조차 따랐던 길에서 탈선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탈선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나 7건의 거부권 행사에서 그는 한덕수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이번 헌법재판관 지명 강행으로 탈선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관리자’로서의 역할, 역설적으로 그가 총리로서 지난 3년간 보였던 무능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대통령 노릇'을 해보겠다고 어설픈 흉내를 내지 않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대신, 이번에야말로 '과장급 총리'라는 평에 맞게 반드시 해야 할 일만 최소한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그에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각하는 것이다. 공직 퇴임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고액의 보수를 받은 것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나 이해충돌 문제를 따지자 그는 "나는 일생을 살면서 한 번도 나를 '빅샷(big shot)'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답변했다. 또 82억여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지난 9년간 자선단체 등에 대한 기부 실적은 극히 미미했다는 게 드러났다. 4년간은 대한적십자사에 각각 1만 원에서 2만 원의 회비를 납부한 것이 전부였다. 공직자이기 이전에 평균적인 시민으로서의 공공의식에도 못 미치는 면모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총리로서 보여주지 못했던 ‘빅샷’의 모습을 이제 권한대행을 넘는 대통령이라도 된 듯이 보여주려는 것인가.

이번 헌법재판관 지명으로 한 대행은 자신의 탈선을 스스로 바로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의 탈선을 교정할 다른 방법, 강력한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