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북한 전문연구자 <아사히신문> 인터뷰

상상 이상으로 철저한 조선 노동당 통제력

중 러와 달리 세습체제로 노선의 일관성 유지

자질과 능력, 적성 갖춘 김정은체제의 회복력

편견과 고정관념 버리고 북 ‘존중’하라 주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강건명칭 종합군관학교를 현지지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2025.2.26.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강건명칭 종합군관학교를 현지지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2025.2.26. 연합뉴스

“북한은 앞으로도 장기간 안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40여 년간 북한체제를 연구해 온 일본 공안조사청 부장 출신의 전문연구자가 전망했다.

1978년에 공안조사청에 들어가 북한 관련 정보분석 분야에 종사하다 조사 제2부장을 지내고 2012년 퇴직한 뒤에도 줄곧 북한연구를 계속해 온 사카이 다카시(74)는 3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곧 붕괴한다’는 등의 언설들은 북한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의한 잘못된 진단 탓이라며 그렇게 전망했다.

<아사히>가 사카이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연재해 온 ‘북조선(북한) 인사이트’를 이날 20회로 마감하면서 마련한 인터뷰에서 사카이는 북한이 “앞으로 상당히 장기간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를 조선노동당의 철저한 통제력, 노선의 지속성, 김정은의 존재 자체에서 찾았다. 북한 내부에 초점을 맞춘 이런 요소들은 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새삼스러울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외부 전문연구자의 다소 다른 시선으로 그것을 재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사카이는 북한과 대화의 문을 다시 열고 진정한 관계 정상화를 이루려 한다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린 시각으로 북한을 제대로 보라고 일본에 주문했다. 그리고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한 리스펙트(존중)”를 강조했다.

 

일본의 북한 전문연구자 사카이 다카시.   아사히신문  3월 3일
일본의 북한 전문연구자 사카이 다카시.   아사히신문  3월 3일

“불안정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카이는 그러나 “개미구멍이 제방(둑)을 무너뜨린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김정은 체제가 예기치 못한 일을 계기로 불안정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조바심에 따른 정책 급선회로 인한 혼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간부층 사이의 알력 심화, 김정은 자신의 해이나 권태 등 3가지 가능성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북한 장기 안정의 3가지 요소는 현실적 요소인데 비해, 이 3가지 불안정 요소는 현실에 토대를 둔 것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 차원의 미래 추정이다.

최근까지 북한 인민군 내부자료 분석 작업을 계속해 온 그는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김정은의 갑작스런 사망을 상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그의 나이로 보아 그것은 적어도 당분간 생각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상상 이상으로 철저한 조선 노동당 통제력

사카이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을 통한 철저한 통제력은 국가기관을 비롯해 군, 기업소, 농장, 각급 학교, 사회단체 등 국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중앙에서 기층까지 망라하는 조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모든 활동을 전면적, 절대적으로 지도 통제”할 정도로 강력하다. 노동당은 산하의 청년, 여성, 노동자 등 계층별 단체를 통해 당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을 조직화하고 동향 파악과 사상교육을 일상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당 운영원칙은 ‘당 중앙’이라 불리는 김정은 총비서의 유일 지도에 대한 절대복종이다. 이런 운영은 1970년대 초 이후 전통으로 굳어져 완전히 정착해 흔들릴 조짐이 없다.

중 러와 달리 세습체제로 노선의 일관성 유지

북한의 장기적 안정을 뒷받침하는 또 한 가지 요소는 노선면에서의 지속성이다. 사카이에 따르면,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이나 옛소련과 같은 극단적인 노선전환을 한 적이 없다. 그런 지속성(계속성)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세습에 의한 권력승계를 사실상 제도화한 것의 필연적 결과다. 이 세습체제는 노선전환에 따르는 체제 동요를 막는 효과가 있다.

자질과 능력, 적성 갖춘 김정은체제의 회복력

또 한 가지는 김정은 자체다. 체제유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상당한 자질과 능력, 적성을 갖추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사카이는 얘기한다. 그는 특히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체제의 회복력(resilience)에 주목했다. 예컨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나 자연재해 등에 잘 대처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쪽으로 활용하는 ‘전화위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대중들과의 정신적 연계를 구축하는 능력도 우수하다. 예컨대 북한 사람들이 중시하는 ‘존엄’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언설이나, 감정 표출도 꺼리지 않고 청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연설 스타일 등이 그렇다. 정책면에서도 주민생활에 직결되는 분야에 강한 주도권을 발휘해 성과를 부각시킨다. 사카이는 그런 것들을 통해 김정은이 민심을 얻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본다.

조바심에 따른 정책 급선회로 인한 혼란 가능성

이처럼 사카이는 향후 북한 전망과 관련해 당분간 큰 문제 없이 상당기간 안정을 유지할 것으로 보지만, 앞서 지적한 3가지 요소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가장 먼저 그는 계획의 성과나 자신의 지도력에 대한 김정은의 조바심 때문에 정책을 급선회할 경우 혼란이 생겨날 수 있다고 본다. 이제까지 내건 목표들은 가까스로 실현해 왔지만, 장래의 성과에 조바심을 낸 나머지 더 큰 목표설정을 강행해 결과적으로 혼란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간부층 사이 알력이 불안정 부를 수도

또 한 가지는 김정은과 간부층 사이의 알력이 심해지는 경우다. 김정은은 이제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간부층의 권한 남용과 부정부패 등을 비판해 왔는데, 그 대책은 당 조직의 자정기능 강화나 간부의 자성 등의 차원을 넘지 못했다. 한 번 경질당한 간부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복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김정은이 더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비판이나 처분을 강화하거나, 풀뿌리 하부 인민들의 간부 비판을 허용하거나 장려할 경우 간부층 전체의 반목을 불러 면종복배의 행위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사카이는 내다봤다. 게다가 비판 대상이 개별 사안을 넘어 체제로까지 확대될 경우 체제 불안정화가 촉발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5월 1일 게재된 연재 10회(‘북한의 ’인민대중 제일주의‘, 실은 지도자 퍼스트(제일주의)’, 한류에 경계)에서 짚은 ‘한류’에 대한 경계도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을 제정해 한국의 한류 유입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것은 북한의 고단한 현실과 공식 이데올로기의 괴리를 비집고 들어올 외부정보 확산이 초래할 치명적인 위험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 불안정 가능 요소는 김정은 자신

체제 불안정화의 세 번째 요소는 김정은 자신의 이완이나 권태다. 집권 13년을 넘긴 김정은은 지금까지는 정치지도에 성실히 매진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 자세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카이는 역사적으로 청장년 시절 명군으로 불리던 통치자들 중에 만년에 정치에 싫증을 내 암군(혼군)이 된 예가 적지 않다고 했다.

교육개혁에 따른 엘리트층 동요 가능성도

또 최근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개혁 시도가 체제 불안정화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최근 교육현장에서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 "창조성 육성, 문제 발견 중시" 등으로 교육방침을 전환하고 있는데, 사카이는 그런 교육을 받은 엘리트층 가운데 ‘유일사상’체계나 당의 결정에 무조건 절대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기존체제에 의심을 품거나 반발하는 이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장기 전망과 지속성 갖춘 정책과 대북 ‘존중’ 필요

하지만 김정은이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조바심이나 권태, 정신적 해이 상태에 빠지지 않고 지금과 같은 지도체제를 유지해 간다면 북한체제가 크게 동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사카이의 생각이다.

따라서 일본은 머지 않아 북한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 기대하며 근시안적인 압력책이나 회유책을 쓸 것이 아니라 장기적 전망과 지속성을 갖춘 대북 정책을 갖춰야 한다고 사카이는 주문했다. 예컨대 일본인 납치문제를 아베 신조 이래 역대 자민당 정부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으나 여태껏 해결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이유가 북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대책에 매달린 결과라는 것이다. 사카이는 따라서 일본에 요구되는 것은, 북한에 대해 ‘경제지원’ 따위만 내세울 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과 존엄에 대한 리스펙트(존중)"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일본의 국시나 국익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의 요구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일본의 요구만 아무리 늘어놔도 대화는 재개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그런 준비를 제대로 하고, 북한이 그것을 알아챈다면 대화도 저절로 재개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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