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에 만든 60년대 시인이자 광기의 '롹커' 이야기

93년 국내 개봉 때 검열로 잘렸던 20분 분량 되살려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 평론가

1991년에 만든 영화(국내에서는 1993년 개봉됐지만 20여분 가량이 삭제된 채 상영됐다. 총 러닝타임은 141분)를 34년 만에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건, 기이하면서 난폭한 느낌을 준다. 시대의 정서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정확하게 시대정신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 ‘도어즈’는 공식 활동 기간인 1965년에서 1971년까지 단기간 안에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록 밴드 ‘도어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찍은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91년만 해도 ‘플래툰’ ‘J.F.K.’ 등의 영화를 만들며 현대사를 다루는 영화에 대한 의지와 투지, 에너지가 하늘을 찌를 태세였다. 그런 그에게 록 그룹 ‘도어즈’, 밴드 리더였던 짐 모리슨의 짧은 생애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을까.

 

영화 '도어즈' 포스터
영화 '도어즈' 포스터

시인이자 광기 어린 젊은 '롹커'의 이야기

올리버 스톤은 짐 모리슨의 예술적 삶을 다소 지나치게 흉포(凶暴)하게 묘사해냈다. 밴드 중 키보드와 피아노 주자인 레이 만자렉이 영화가 공개됐을 당시 매우 비난하는 조의 입장을 밝혔는데, 그건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레이 만자렉은 짐 모리슨을 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올리버 스톤은 그를 시대적 광기를 온몸으로 표현한 '롹커'라고 본 것이다. 이 둘의 시각은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레이 만자렉이 보기에 올리버 스톤의 표현 수위는 짐 모리슨 개인의 삶에 대한 ‘윤색의 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짐 모리슨이 벌이는 과다한 약물 흡입 장면, 혹은 약물 파티 장면, 역시 과도한 음주 모습, 술과 약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공연을 하는 모습, 복잡한 여성 편력과 섹스신, 베드신으로 넘쳐난다. 짐 모리슨의 생애가 다소 그런 면이 강했겠지만 그것이 그의 다는 아니었을 것이다. 예컨대 그의 대표곡 ‘디 엔드(The End)’의 가사를 봐도 그걸 알 수 있다. 곡의 일부 가사이다.

 

이제 끝이야/아름다운 친구여/이제 끝이야/내 유일한 친구, 끝

정교한 계획의 끝/서 있는 모든 것의 끝/안전도 놀라움도 없이, 끝/다시는 네 눈을 마주치지 않을 거야

뭐가 될지 상상할 수 있어?/너무나 무한하고 자유로워/절실히 필요해/낯선 사람의 손길/절망적인 땅에서

이제 끝이야/아름다운 친구여/이게 끝/나의 유일한 친구, 끝

널 자유롭게 하려고 애쓰지만/넌 절대 날 따라오지 않을 거야/웃음과 부드러운 거짓말의 끝/우리가 죽으려고 했던 밤의 끝/이제 끝이야

60년대 흑역사를 90년대 미제국주의와 ‘충돌’시킨 올리버 스톤

올리버 스톤의 영화 ‘도어즈’는 걸작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시대와 충돌하려 했던 천재적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광기 어린 젊은이의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과 매혹이 넘쳐나는 작품이다.  ‘도어즈’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충돌’이다. 짐 모리슨 자신이 가사와 음악, 거듭된 기행(공연 중 성기 노출, 공공장소 성행위로 체포, 음주운전 체포 등등)을 통해 1960년대의 미국의 폭력적 확장 군사 정책에 저항하려 했다. 올리버 스톤은 그런 그의 개인사를 펼쳐 보임으로써 영화가 만들어진 1990년대(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 이데올로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다.

 

짐 모리슨이 살았던 1960년대 중후반은 미국의 흑역사에 해당하던 기간이다. 베트남전은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을 거치며 확대일로로 치달았으며,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 로버트 케네디 등 민권 운동가와 진보적 정치가가 잇따라 암살당했던 때이다. 1970년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학에서는 닉슨의 캄보디아 침공을 비난하는 대학생들의 반전시위에 방위군이 총기를 발사해, 4명의 학생이 죽는 등 총 9명이 사상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세상은 아수라장이었다.

올리버 스톤이 영화 ‘도어즈’로 원했던 것은 짐 모리슨의 아수라장같은 1960년대의 막장 인생 모습을 통해 올리버 스톤 감독 당대인 1990년대의 아수라장을 표현하는 것이다. 스톤의 1990년대는 걸프전 등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 군사정책이 많은 지식인들의 우려를 낳고 있던 때이다. 영화가 다소 과한 이미지와 수위를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것의 목적성은 과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올리버 스톤은 좌파 월간지 <뉴레트프리뷰>의 마르크시스트 언론인이자 파키스탄 출신인 타리크 알리와 대담집 『역사는 현재다』(오월의 봄刊)를 내기도 했고, 그 스스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Ⅰ,Ⅱ』(들녘刊)를 내기도 했던 학자이다. 영화 ‘도어즈’는 한 뛰어난 학구적 영화감독이 의도적으로 시대의 광기를 끌어올린 미국의 현대사 영화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
올리버 스톤 감독

파시즘의 광기 잠재우는 예술적 허무주의에 대한 지금의 기대는 왜일까?

1993년 국내 개봉 당시 ‘도어즈’는 20여 분가량이 잘려 나갔다. 1993년은 한국에서 여전히 검열이 횡행하던 시대였다. 검열이 폐지된 것은 1996년 김대중 정부 때였다. 주로 섹스, 마약 장면들이었고 나체 장면(성기, 음모, 여성 가슴)은 모두 블러 처리한 상태로 개봉됐다. 때문에 음악도 중간에 잘리는 등 엉망이었다. ‘삼호필름’이 수입했는데 당초 개봉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영화사 스스로 자르고 잘라서 겨우 상영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한국이 후진국 시절 때의 얘기이다. 이 영화가 완전판으로 재개봉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건 한국이 문화선진국이 됐음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계엄 상황 등 여전히 검열의 위기에 처해 있는 현 상황을 역으로 고발하고 있는 의미를 지닌다.

 

러닝타임 중반쯤 짐 모리슨이 영국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인터뷰어인 여기자 패트리샤(캐슬린 퀼란)와 마약을 하고 섹스하는 씬이 나온다. 1991년 국내 상영판에서는 모두 잘린 씬이다. 이 장면은 짐 모리슨과 패트리샤가 숨겨진 연인 관계가 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중요하다. 1991년 판에서는 패트리샤와의 인터뷰 직후 바로 공식 연인인 파멜라 쿠손(팸, 맥 라이언)과의 섹스 장면으로 이어져 인물 관계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부분이 이번 복원판에서는 완벽하게 살렸다.

 

그룹 도어즈가 60년대 미국 청년들을 흥분시킨 노래는 ‘내 불을 질러줘(Light my Fire)’였다. 이 노래는 진정으로 미 전역의 반전주의 청년들, 히피들, 무정부주의적 예술가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예술은 허무를 먹고 살며 예술적 허무주의는 파시스트들의 광기와 그 반동의 움직임을 우회적으로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34년 만에 복원판으로 재개봉된 141분짜리 영화 ‘도어즈’에 이상한 기대를 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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