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감독 양우석의 의외의 선택 코미디 ‘대가족’
서울 시내 만두 맛집 평만옥 배경의 힐링 영화
대 끊길 뻔한 전쟁고아 출신 부자의 가족 재건기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새 영화 ‘대가족’의 공개에 앞서 큰 의문에 휩싸인 건 어찌 보면 꽤나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 의문의 핵심에는 감독 양우석이 있다. 양우석이 왜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을까.
양우석은 노무현 이야기인 ‘변호인’을 만들었으며 남북한의 전쟁 위기를 다룬 ‘강철비 1, 2’를 연출했다. 그는 시대적 문제와 정치 군사 이슈에 해박하고, 사회과학적 지식의 수준이 꽤나 높은 진지한 감독이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코미디로 전환했을까.
진지한 감독이 코미디로 보여주는 이 시대의 가족이즘(ism)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모든 것이 오해와 기우였음을 알게 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그의 코미디 영화 ‘대가족’에도 역시 시대정신이 가득 담겨져 있다. 그 정신의 요체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우울을 영화가, 아니 영화라면 응당, 그것을 치유하려 해야 마땅하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의 영화 ‘대가족’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 보다 울게 만든다.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이상하게도 다시 한 번 살아가고픈,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가자는 마음이 생긴다. ‘대가족’은 바로 그런 영화이다.
오해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이건 제목 때문에 빚어지는 것인데, 이 영화가 실상 대(大)가족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어떤 깨달음을 통해 인공적으로 대가족을 만들어 나가는, 그러니까 유사(類似, 가짜) 가족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가족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보다는 바로 그 이즘(ism)에 동의하게 만든다. 한 마디로 이제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관이 진즉에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같은 이슈의 결론을 향해 이야기를 착착 진행시킨다. 시나리오의 구조가 갖는 완성도가 매우 높고 그 전체 디자인이 탄탄한 영화다. 역시 양우석은 이야기를 잘 쓴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노래로 말하면 그는 일종의, 뛰어난 ‘싱어 송 라이터’인 셈이다.
‘대가족’의 시대적 배경은 1988년과 1992년, 2000년이다. 서울 한복판의 만두집 ‘평만옥’의 얘기다. 짐작컨대 서울 무교동 코오롱 빌딩 골목길에 실재했던 ‘이북만두’ 집이 이 영화가 지닌 상상력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북만두’는 요즘 식으로 말해 노포 맛집 중 맛집이었으며 늘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이래 봬도 이 집 주인이 강남에 건물을 갖고 있대’, 소리가 나올 만했던 맛집이었다. 영화에서도 평만옥 주인 함무옥(김윤석)의 뒤에서 부동산 소개업자가 “아 저 양반, 이 일대에 갖고 있는 건물이 몇 채나 돼요!”라고 말한다.
출가한 아들이 기증한 정자로 대를 잇게 된 '유사가족'
영화 속 이야기는 이제 환갑을 맞이하는 평만옥 주인이자, (전쟁 세대 거의 모두가 그렇듯이) 수전노급으로 돈을 모은 함무옥이 자신에 이르러 대가 끊길 걱정이 태산인데, 그게 다 자식인 문석(이승기) 탓이라고 분을 삭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대생으로 잘 나가던 아들 문석이 어느 날 불현듯, 뜻한 바 있어 머리를 깎고 중이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 무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보수적인 인물이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오로지 한숨밖에 없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자신들이 함문석 자식이라는 보육원 남매 민국(김시우) 민선(윤채나)이 찾아온다. 알고 보니 문석이 한 때 정자를 기증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무옥이 뛸 듯이 기뻐한 건 당연한 일. 이제 대를 잇게 됐기 때문이다. 손주들의 출현으로 무옥은 심지어 사람이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 곁에서 죽은 아내 대신 오랜 세월 평만옥을 같이 운영해 온 방 여사(김성령)에게 스카프를 사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들 문석이 정자를 기증한 회수가 무려 517번에 이른다는 것인데, 이건 당시 여자친구(강한나)의 아버지인 난임시술 전문의(최무성)가 문석의 욕구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한 방책으로 자꾸 ‘정자를 배출시켜’ 기증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는 이런 사실 등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급물살을 탄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한다.
전쟁고아와 후손, 3대에 켜켜이 쌓여있는 상실감의 연대기
영화 속 인물들 간에는 세 가지의 결핍이 동시에 존재한다. 평만옥 주인 무옥은 전쟁고아로서 자신이 애지중지 했던 누이동생을 잃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켜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크다. 아들 문석은 문석대로 자신이 의료봉사 활동을 하던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임종을 하지 못했다는 데 대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가 2000년 현재 불가의 인물이 된 데에는 1992년에 고인이 된 어머니 문제가 컸다. 보육원 남매 민국과 민석은 자신들을 길러 준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불량한 삼촌에 의해 고아원에 보내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를 보고 싶어 한다. 영화는 이 세 인물(들) 간에 펼쳐지는 일종의 ‘상실감의 연대기’이다. 중층의 결핍감은 우리 시대가 지난 역사를 통해 켜켜이 쌓아놓은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 여럿이다. 모두들 전쟁으로 가족들을 잃었고 때론 말 같지도 않은 사고로 잃었으며, 때로는 가난과 질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영화 ‘대가족’은 중층의 상실감, 그 모순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며 그 ‘약한 고리’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휴먼 가족 코미디를 표방한 만큼 ‘대가족’은 그 결론이 인간의 선의가 다소 과장되는 쪽으로 마무리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건네는 따뜻한 손수건 한 장을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판타지에 불과하고 비현실적인 애기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 저 구석에는 늘, 지금의 부박(浮薄)한 세상이 사람들의 착한 심성으로 고쳐질 수 있다는 희망과 낙관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는 법이다. 영화 ‘대가족’은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인간의 선한 마음을 다시 꺼내려고 노력하는 영화이다. ‘성선설’의 작품이다.
조금 웃고 많이 울게 하는 ‘성선설’의 힐링 영화
김윤석이 힘을 뺀 연기가 보기가 좋다. 김성령은 자신이 주책스런 연기까지 잘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승기는, 그간의 불필요한 ‘이승기 논란’이 과도한 것이 아니였냐는 듯 묵묵히 자기 연기를 열심히 해냈다.
양우석의 시나리오는, 영화란 역시 스토리 텔링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 그런 척, 치밀하고 디테일한 연출로 작품 전체의 얼개를 한 땀 한 땀 잘 엮어 냈다. 상업영화로서, 장르영화로서 귀감을 삼을 만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 힐링이 된다. 그게 어디인가. 지금과 같은 세상에. 양우석은 역설적으로 또 한편의 ‘변호인’같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든 셈이 됐다. 지금의 세상엔 휴먼가족코미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좀 웃고, 실컷 울고 싶어한다. 왜 아니겠는가. 영화 '대가족'은 12월 11일에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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