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연대기’로 확장된 일본 영화 ‘고독한 미식가’
일부 식자층들에게는 그렇고 그런, 심지어 다소 사소한 드라마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대중 시청자들에게는 높은 인기를 모아 온 일본 작품 ‘고독한 미식가’의 극장판 영화 ‘고독한 미식가 : 더 무비’는 지난 해 부산에서 공개돼 큰 인기를 모았었다. 3000명이 들어가는 부산 영화의 전당을 가득 메울 만큼 관객들이 몰렸다. 그러나 막상 개봉된 이후에는 그다지 뜨거운 열기가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때가 때인 만큼이다.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의 일관된 진술어 “배가 고프다(하라가 수이다)” 혹은 “배가 고파졌다(하라가 헷타)”가 다소 한가한 얘기처럼 비쳐지는 시국이기 때문이다.
사회정치적 욕망을 음식에만 가둬 놓는 살짝 서글픈 선택
이 극장판 ‘고독한 미식가 : 더 무비’는 지난 13년 간 만들어지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 TV시리즈와 꽤나 다른 지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한국의 살얼음판 시국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TV시리즈는 일종의 ‘혼밥의 정치학’을 보여 준다. 혼자서 식당을 전전하며 이른바 ‘혼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일본사회의 개인주의를 보여준다. 그건 이기주의가 아니다. 집단적인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겪었고 툭하면 극우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욕망을 우회적으로 비켜가고 비판하려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주인공 고로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음미하며, 혼자 잘 살아간다. 수입잡화상(개인 오퍼상)을 하며 살아가는 그는 가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의 바르지만 그 예의는 자기 보호막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동시에 나에게 침입하려는 유해한 무엇,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그 무엇이든 다 차단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고로의 욕망은 오로지 음식에 대한 것이다. 잘 만든 요리, 맛있는 음식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다. 고로는 그 이상의 욕망을 의식적으로 차단하려는 일본의 중년 지식인, 중산층 특유의 모습을 보여 준다. 저렇게 살아가는 것이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지 않을 것은 또 없다는 식이다. 그건 마치 얼마 전 나왔던 일본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한 사회의 지식인층이 스스로 사회적 욕망을 제거했을 때 그 루틴의 일상은 어떻게 지켜지는가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는 자신의 사회정치적 욕망을 오로지 음식으로만 가둬 놓는다. 그건 꽤나 지혜로운 선택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살짝 서글픈 얘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리사들 앞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은 혼밥일까, ‘더불어’일까?
TV시리즈에 비해 이번 극장판 영화는 그 개념을 확장시킨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혼밥의 연대기’이다. 고로는 여전히 혼밥을 추구하고 혼밥의 공간을 좋아 하지만 그것을 ‘더불어’의 개념으로 이어 나간다.(극 중반 그가 남풍도란 곳에서 여러 여자 요리사 앞에서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지점에서 스토리의 확장성이 좋은 작품이다.
주인공 고로는 이번에 파리로 간다. 나가사키 현 고토 시가 고향인 한 노인의 부탁으로 자신의 마을을 그린 그림을 배달해 주기 위해서이다. 고로는 노인의 딸과 잠깐의 로맨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와 잠깐 파리에서 살았다는 대사가 나온다.
여자는 죽고 그 딸이 노인을 보살핀다. 여자는 죽기 전에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고로에게 연락하라고 했다고 한다. 노인은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노인은 고로에게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잇짱지루’라는 국을 찾아서 보내 달라고 한다. 국을 보낼 수 없다면 그걸 만들기 위해 쓰여졌던 식재료와 레시피를 찾아 달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주인공 고로의 ‘잇짱지루’ 국 찾기 로드 무비가 시작된다.
이런 영화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이다. 말이 안 되는 장면들이 속출한다. 이런 것이다. 나가사키 현 주변은 다도해이다. 섬과 섬이 즐비하게 포진돼 있다. 우리의 남해와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리 가깝다 해도 바다가 있다. 고로는 후쿠에라는 이름의 섬으로 가겠다며 스탠드업 패들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가다가 태풍을 만난다.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처럼 표류하게 되는데 의식을 찾는 곳이 남풍도이고, 마치 아마조네스처럼 금남(禁男)의 섬이다. 게다가 한국령이다. 한국여자들이 산다.
한국의 섬에 표류해 황태국물을 맛본다는 판타지 로드무비
일본여자 시호(우치다 유키)도 여기 산다. 시호는 남편(오다기리 죠)과 도쿄에서 ‘산세리테’라는 이름의 라멘집을 하다 코로나19로 폐업 위기에 몰리고, 남자와 사이가 틀어져 이 섬으로 왔다고 했다. 여자들은 이 남풍도에서 순 자연식 음식을 개발해 가며 살아간다. 어쨌든 주인공 고로는 한국에 왔으니 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고 그래서 수속을 밟으러 가는 곳이 한국의 구조라라는 이름의 지방이다. 고로는 여기서 이민국 공무원(유재명)을 만나 황태국이란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공간이 가상인 데다 때론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 모든 판타지는 ‘잇짱지루’ 국물을 완성하기 위한 빌드 업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도대체 잇짱지루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그 레시피가 영화에서라도 완성되기를 바라게 만든다. 영화의 제1 법칙은 관객의 욕망을 허상으로나마 실현시킬 것이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 더 무비’는 바로 그 점에 충실한 내용의 작품이다.
주인공 고로는 결국 모든 식자재를 구비하는 데 성공한다. 샛줄멸찜이란 것도 나오고 매퉁이라는 생선도 나온다. 표고버섯도 구한다. 그러나 이 모든 재료를 하나의 요리, 극상의 국물 맛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한국의 황태이다. ‘산세리테’의 셰프(오다기리 죠)는 라멘을 포기하고 볶음밥만 만들다 고로의 도움으로 새로운 국물을 창조해 내는 데 성공한다. 모두들 이 국물 맛에 황홀한 표정이 된다. 영화도 황홀한 표정이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황홀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일본 매퉁이와 한국 황태가 만나 만든 황홀한 ‘잇짱지루’의 맛
일본의 매퉁이와 한국의 황태가 만나고 일본의 나가사키와 한국의 섬들이 만난다. 일본과 한국, 한국과 일본은 가상의 라멘 국물 ‘잇짱지루’에서 하나가 된다. 이 국물을 만드는 데 있어 한일 간의 격화된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두 나라 간의 그 모든 정치사회외교군사적 갈등이라는 것, 곧 그 혼밥의 행위가 표방하는 독선주의라고 하는 것도 국물의 레시피를 통해 다 용해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감독이자 주연인 마츠시케 유타카의 세계동포주의 같은 것이 영화 속에 내재돼 있음을 보여 준다.
혼밥이되 혼밥이지 않으려 하는 노력이야말로 ‘고독한 미식가’ TV판과 이번 극장판의 철저한 차이이다. 물론 한국을 배려한 스토리는, 유독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고 그 점을 감안한 상술로 작동돼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 화합의 정치적 화법이 돋보인다. 유례없는 비상계엄 국면을 타개해 나가는 것에는 사법의 원리가 필요하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대중들이 느끼는 실의와 분노, 좌절의 정서를 극복하기 어렵다. 우리에게도 주인공 고로의 국물, ‘잇짱지루’가 필요할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국물 맛일 수도 있다. ‘고독한 미식가 : 더 무비’는 바로 그 점을 아픈 각성의 바늘처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 3월 19일 개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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