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의혹 장본인들이 '부패 척결' 주장하는 모순

'노동 개악' 유리한 조건 만들려 노동조합 때리기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공격으로 확대, 이미 시작돼

윤미향‧정의연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던 수법 반복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노동조합의 민주노총 실태 폭로 및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5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노동조합의 민주노총 실태 폭로 및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5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은 화물연대 파업의 강제적 진압 이후에 약간의 지지율 상승으로 고무되고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때리기를 향해 더 강하게 질주하고 있다. 그러면서 들고나온 카드가 바로 “노조 부패 척결”이다. 지난 연말에 윤석열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하고 관련 발언들을 쏟아냈다.

“노조(노동조합)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이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합리적 보상 체계, 노노(勞勞) 간 착취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노노 간에 착취 구조가 존재한다면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고 무시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회계 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

한덕수 국무총리도 “노조 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노조 재정 운영 투명성처럼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있어선 정부가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거대 노조가 이 돈을 얼마나 조달해 누가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드러난 적이 없었다”며 “청년 등 전체 근로자를 위한 조직으로 바뀌기 위해서도 노조 재정 투명성은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보수언론들과 경제지들도 ‘강성 파업·깜깜이 회계·노노(勞勞)간 착취’ 등을 “노조 적폐”라고 주장하면서 ‘노동 약자와 MZ 세대를 위해서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프레임을 설정해 나갔다. 이에 따라서 노동부는 1000명 이상 노동조합의 재정장부 등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섰고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는 조합비 사용 상세 내역을 노동청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런 압박은 과연 누가 누구에게 부정부패를 말하면서 투명성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만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와 부인이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 등 각종 비리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본인 자신이 검찰총장 시절 사용한 막대한 특활비를 공개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덕수 국민총리는 김앤장 고문 시절 거액의 보수와 엄청난 재산 증가를 둘러싼 의혹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론스타 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여전히 요구받고 있다. <조선일보>도 사주 일가가 연루된 부당거래, 일감 몰아주기, 횡령과 배임 의혹 등에 대해서 제대로 공개하고 검증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부패는 개인적 특성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고위 정치인과 관료, 거대 언론들이 더 많은 부패 의혹과 연관돼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무래도 돈과 권력이 집중돼 있고, 서로 유착된 구조 속에서 부패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 속에서 특유의 정경유착 구조가 만들어져 왔다. 부패 문제를 분석해 온 미국의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한국을 “학연·지연으로 연결된 정치인과 고위 관료, 대기업 임원과 언론인 등이 부패한 유착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로 분류했다.

이 ‘엘리트 카르텔 부패 구조’ 속에 노동조합과 노조 활동가들이 중요한 핵심으로 들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 ‘노조 부패’를 강조하며 공격하는 정권과 주류언론들의 의도는 스스로 내세우는 명분들과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공격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2.12.28. 연합뉴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2.12.28. 연합뉴스

조만간 구체적인 노조 부패 스캔들이 ‘내부 고발’ 등의 형식으로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노동계에서 나오는 우려스러운 관측들이다. 그러면 정권과 여당과 주류언론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면서 노조를 부패집단으로 낙인찍으며 난도질할 것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노조와 구성원들의 분열과 마비, 위축과 사기 저하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이미 2016년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 내내 꾸준히 증가하던 노조 조직률은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2022년에 최초로 정체 상태로 멈춰섰다. 노동조합으로 뭉치지 못하면 노동자들의 힘은 약화된다. 또 많은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이 정권과 주류언론의 눈치를 보면서 길들여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정과 회계를 국가의 감시와 통제 속으로 가져가는 것 자체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는 일이다. 그래서 국제적 노동규약과 노동법들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노동조합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고, 그것에 개입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은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왔다.

반면에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노동자들의 힘이 약화하고, 정권의 눈치를 보는 노동조합이 늘어날수록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노동정책의 후퇴들 – 노동시간 연장, 노동시장 유연화, 최저임금 무력화,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 을 추진하기에는 더욱 유리해진다. 그것을 반대하고 저항하던 목소리들이 흩어지고 약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은 조금도 부패하지 않았고, 모든 부패와 비리 사건은 전부 다 권력과 자본이 만들어낸 가짜 뉴스와 조작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1987년 이후에 단결과 투쟁 속에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과 조직적 힘은 커져 왔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100만 명이 넘고 1년 예산 규모가 200억 원 가량일 정도다.

이것은 권력과 자본에 맞설 수 있는 힘이지만, 동시에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날 때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노조는 노조법 등에 따라서 예결산에 대한 대의원대회 보고와 심의, 정기적인 회계감사 등을 진행하며 노력해 왔지만, 권한이 커진 대형 노조의 간부들이 저지른 채용 비리나 일탈적 부패 사건들이 그동안 심심찮게 터져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부패와 일탈들을 돌아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투쟁과 단결보다는 사측과 유착하고 담합하던 노조 집행부에서 비리가 생겨난 경우가 많았다.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과 위탁사업 등에 더 치중하면서 문제가 싹튼 경우도 있었다. 정기적 선출과 민주적 통제가 어려운 조건에서 장기 집권하는 노조 간부일수록 일탈의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미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노조 집행부와 사측의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적인 접촉을 금지하자, 정부 보조금과 위탁사업을 최소화하고 엄격히 관리하자, 노조 간부의 재산을 공개하고 윤리 강령을 제정하자, 전문적 회계사를 감사로 선임하자는 등의 민주적 통제와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들이 제안돼 왔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권과 주류 언론들의 ‘노조 부패 척결’에 대한 주장과 방향들은 이런 노동운동 스스로의 건강한 성찰과 노력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반대로 ‘강성 투쟁이 문제’라면서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해 단체행동을 하기보다는 회사 경영진과 담합하며 정부의 감시와 통제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압박은 노동조합을 넘어서 진보적 시민단체들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여진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을 겨냥했고, 시민단체 국고보조금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와 감사가 추진되고 있다.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가한 ‘촛불중고생시민연대’에 대해서는 이미 등록 말소와 보조금 환수가 진행 중이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개정 권고한 국가인권위 결정 환영 환노위 즉각 개최 및 노조법 신속 개정 촉구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2.12.29. 연합뉴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개정 권고한 국가인권위 결정 환영 환노위 즉각 개최 및 노조법 신속 개정 촉구 긴급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22.12.29. 연합뉴스

사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에 대한 윤석열 정권과 주류 언론들의 이런 공격의 수법과 패턴은 이미 2020년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정대협)에 대한 공격 속에서 모두 나왔던 것이다. 당시에도 주류 언론들은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을 후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파렴치한 범죄자들로 몰아갔다. 그러자 익숙한 ‘시민단체’가 등장해 윤미향 의원을 고발했고 ‘윤석열 사단의 정치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에 나서며 피의사실을 흘렸다.

일본의 전시 성노예 범죄에 맞서 수십 년간 피해자와 연대해 온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의 헌신과 성과는 한순간에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당시에 대부분의 시민사회 단체들과 진보적 지식인들과 개혁적 언론들까지도 이것을 분명히 막아서며 윤미향 의원의 곁에 서서 같이 비를 맞아주지 못했다. 침묵과 방관, 심지어 동조가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당시 주류 언론과 정치검찰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제기한 대부분의 혐의들은 사실이 아니었다. 맥주집 술판, 딸 유학비, 안성쉼터, 아파트 마련, 부친 특혜 등이 모두 무혐의와 불기소로 끝났다. 나머지도 대부분 재판 과정에서 가짜뉴스이거나 부정확하고 부풀려진 주장들이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윤미향 의원 등은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낙인이 찍혀서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뒤였다. 지금도 윤석열 정권과 주류 언론들은 ‘윤미향의 경우처럼’ 이라고 하면서 여성가족부 해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들에 대한 흠집내기의 무기로서 200% 활용하고 있다. 언제까지 윤석열 정권과 주류 언론들의 이런 수법과 패턴에 무기력하게 대응할 것인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의 재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머니S 2020년 9월 15일자 '검찰이 기소조차 못한 윤미향의 11가지 의혹' 그래픽 인용
머니S 2020년 9월 15일자 '검찰이 기소조차 못한 윤미향의 11가지 의혹' 그래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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