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기자 연루 6억 원 뉴스 충격적이고 참담

그간 이상한 보도들…주주‧시민 결정적 배신해

한겨레 존망 걸린 사안, 주인에 결정권 맡겨야

역사 속 사라질지 몰라…초심 돌아가는 기회로

오태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실장
오태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실장

마속은 촉나라 승상인 제갈량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는 누구나 제갈량의 후계자로 인정할 만큼 병법에 통달했습니다. 하지만 천하 쟁패를 겨루는 위나라와 싸움의 요지인 가정산 전투에서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물이 없는 산 위에 진을 쳤다가 큰 패배를 당합니다. 이에 제갈량은 군기를 다스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칩니다. 여기서 ‘읍참마속’이라는 고사가 나왔습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 권력과 자본에 굴복하지 않는 ‘참언론’을 갈망하는 민주시민의 십시일반으로 기적적으로 태어났습니다. 회사원들은 월급을 쪼개어, 상인들은 쌈짓돈을 꺼내, 대학생들은 용돈을 아껴, 공무원들은 자식의 이름을 빌려 창간기금을 보탰습니다. 그런 힘과 정신이 있었기에 한겨레는 창간 이후 촌지 수수 등 권언유착을 고발했고, 통일과 북한 문제 등 금기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했으며, 억강부약의 정신으로 소외세력을 중시하는 보도를 해올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를 탄생시킨 주주, 시민을 제갈량이라고 한다면, 한겨레는 마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 벽두, 한겨레가 주주와 시민의 뜻을 배신한 충격적인 뉴스가 천지진동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의 창간 멤버로 참가해 30년 동안 일했던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참담한 일입니다.

이 사건에서 한겨레의 간부 기자가 연루됐다는 6억 원이 개인 사이의 금전거래인지, 차용증을 썼는지 아닌지, 얼마를 갚았고 또 얼마를 언제 갚을 것인지 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한겨레가 주주, 시민의 기대를 결정적으로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에도 간간이 나왔던 한겨레의 이상한 보도를 의심쩍게 보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접지 않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동안의 의심과 결이 다릅니다. ‘한겨레, 너마저!’를 결정적으로 증언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2.12.9 [공동취재] 연합뉴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2.12.9 [공동취재] 연합뉴스

한겨레는 해당 기자를 직위에서 배제하고 사내에 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 뒤 진상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겨레로서는 같이 연루된 다른 언론사보다 발 빠르고 엄중한 자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대책입니다. 주인이 시민 주주인 한겨레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이번처럼 한겨레의 존망이 걸린 사안은 당연히 그 주인에게 결정권을 맡겨야 한다고 봅니다.

제갈량은 마속을 참하고 군사를 정비해 후퇴한 뒤 다시 위나라를 빼앗으려고 했으나 끝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래도 제갈량이 있었기에 참패를 모면하고 뒷날을 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읍참마속처럼 ‘읍참 한겨레’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읍참의 주체는 당연히 한겨레를 탄생시킨 주주와 시민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주체가 되어 한겨레의 목을 당장 칠 것인지, 다시 빨아서 쓰든지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큰 위기는 크게 대처해야 돌파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한겨레의 존망이 걸린 한겨레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분명합니다. 제대로 된 ‘읍참 한겨레’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겨레는 주주와 시민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신뢰를 상실하면서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릅니다. 부디 이번 사건을 주주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실시하는 한겨레 재탄생, 한겨레 초심 돌아가기의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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