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석 시민언론민들레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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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꺼내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나도 70년대 후반 어리버리한 초년 기자였을 때는 이 이야기가 그저 기자들끼리 한 번 웃어보자고 꺼낸 넌센스 퀴즈인 줄 알았다.

질문) 기자와 검사, 세무공무원(세리) 셋이 요리집에서 밥(술)을 먹었다. 돈은 누가 냈을까?

답) ① 기자 ② 검사 ③ 세무공무원 ④ 없다

누구든 자리를 만든 사람이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돈이 제일 많은(많을 것 같은) 세무공무원? 만일 이중에 기업인이 끼어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돈을 냈을 것 같은데 자리에 없으니 만만한 세무공무원이 밥(술)값을 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초년 기자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문제를 낸 선배는 헤헤 웃으며 4번 답이 맞다고 했다. 요리집 주인이 돈을 받지 않았으니 (혹은 받지 못했으니) 셋 중에서 돈을 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무공무원이 검사나 기자 앞에서는 별 힘이 없지만 장사(기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승사자 아닌가.

술값은 힘 없는 사람 몫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런 넌센스 퀴즈 속에 때로는 고위 관료도 넣어보고 국회의원도 넣어 보면서 향응이 만연한 80년대, 90년대를 보냈다. 검사가 밥(술)값을 내는 경우가 혹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자가 내는 법은 결코 없었다. 늘 향응과 짝을 이루는 촌지의 경우도 마찬가지. 기자는 늘 촌지를 받았다. 물론 (특히 88년 창간한 한겨레에는 더더욱) 촌지와 향응을 받지 않는 기자, 아예 그런 낌새를 보이는 자리 근처에도 가지 않는 기자들도 꽤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종종 기자단 촌지사건이 터지곤 했다.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의 옛 명칭)나 건설부, 서울시청을 출입하는 기자들이 부처 산하 공기업이나 이에 관계되는 사기업체에서 돈을 모아 나누어 갖는 추태가 종종 폭로돼 언론계가 통으로 망신살을 사곤 했던 것이다. 기자들의 촌지 수수는 대개 쉽게 드러나지 않으나 배분이 공정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 혹은 초기 한겨레처럼 정의감 넘치는 언론의 폭로로 치부를 드러내곤 했다. 이런 경우 잠시 언론계가 소란스러워지긴 했으나 대부분 각 회사에서 가벼운 경고와 징계로 넘어가곤 했다. 언론노조나 기자협회 같은 데에서 잠시 자정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곤 다시 잠잠해졌다. 어두운 곳에서 여전히 촌지와 향응이 이루어지고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은 물론 있었다.

기자들의 이런 소소한(?) 촌지 문제가 아니라 기자들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급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한 부처 기자단 안에서 벌어진 촌지사건이야 잠시 “기자놈들도 별 수 없네” 정도의 사회적 빈축을 사고 끝날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가끔 장관의 목이 날아가고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비리사건에도 기자들이 끼어 있는 것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건이 6공 노태우 정권의 최대 권력형 비리로 여겨지는 1991년 강남구 수서동, 일원동 일대 택지개발지구의 불법 분양 사건이다. 당초 건설부와 서울시는 이 땅에 무주택자 등을 위한 주공아파트 같은 것을 짓기로 했는데 여러 단체가 조합을 결성해 특별공급을 청원하는 민원을 끝없이 제기했고 결국 건설부와 서울시가 이에 굴복한 것이 이 사건의 요체다.

문제는 택지공급을 받은 조합에 경제기획원, 국세청, 군부대, 농협 등 다수 유력한 기관 및 기업체 26여 곳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야당인 평민당과 언론까지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론이 조합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이 사업 시행자인 한보그룹의 로비대상이기도 했다. 이 모든 불법 분양사건의 배후에는 한보건설이라는 재벌급 건설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는 불법 로비과정에서 청와대, 국회 건설위원회, 건설부 등 관계 부처에 다방면으로 막대한 뇌물을 뿌렸다. 언론에 대해서도 회사 차원에서는 광고와 협찬으로, 편집국 간부와 일선 기자들은 촌지와 향응으로 매수했음은 물론이다.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당연히 없었다. 검찰은 서울시장, 건설부장관, 경제수석을 비롯한 공무원 여럿과 국회의원 여럿, 한보그룹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했고 이중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을 비롯한 9명을 구속시켰으나 언론 쪽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를(짐작만 할) 풍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것은 내 기자 2년차 때인 1978년 벌어졌던 현대건설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기억이다. 언론인 37명이 아파트 한 채씩을 분양받은 초대형 비리 사건인데도 한동안 떠들썩하더니 결국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나갔다. 기자보다 훨씬 힘 센 자들이 드러날까 봐서인지, 아무튼 어떤 비리사건이든 기자 연루사실이 드러나면 슬슬 사건의 전모가 끝물로 가는 것이 신통할 지경이다.

서초동 한 식당엔 '김만배카드' 있다는 소문도

그러다가 이번 대장동사건에서도 기자들이 ‘돈’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어떤 기자는 수억에 이르는 돈을 김만배 씨에게 빌렸다 하고, 어떤 여기자는 명품 구두를 선물받았다 하고, 다른 수십 명의 기자들은 골프장에서 꼬박꼬박 100만 원씩 받아 챙겼다 한다. 심지어 서초동 어느 식당에는 ‘김만배 카드’라는 것이 있어 식사 후 “만배요~” 하고 사인만 하면 된다는 맹랑한 소문도 있다. 현대아파트 사건 후에도, 수서비리 사건 후에도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건설현장에서 언론이 연루된 비리가 횡행할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2016년 제정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아주 오랜 옛날 술자리에서 혈기 넘치는 한 후배가 기자들의 촌지문화에 대해 퍼붓던 포효가 귀에 쟁쟁하다.

“선배! 건설사 사주, 재벌이라고 해도 좋고요. 이 사람들이 검사, 안기부, 국회의원, 장차관, 군바리들(당시엔 군장성들도 아직 힘이 셌음) 하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칩시다. 기자 촌지라는 것이 그 잔치상에서 떨어진 밥알 하나를 쪼개 나누어 먹는 꼴 아닙니까? 거지같이…”

초년생 기자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실 언론 구성원 중에서도 언론 사주나 까마득한 간부들은 그 잔치상에 끼어 앉아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기자가 그 밥상을 뒤집어 엎지 않고 밥알 하나를 얻어먹는 바람에 그 잔치상 밥값을 식당 주인이 내야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대장동 밥값의 경우 '먹은 놈'들이 아니라 이재명에게 물어내라고 아우성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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