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거래 사건 보고서가 보여준 한겨레의 모범과 한계
제대로 된 질문을,절실히 던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새 리더십 출범, 대안ㆍ진보언론의 리더십 보여주길
한겨레가 편집국 간부의 거액 돈거래 사건과 관련한 진상조사 결과를 지난 27일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내로 신임 사장 등 새로운 경영진과 편집국 지휘부가 출범하게 된다. 하나의 결산과 새 출발이 이어지는 것이다. 한겨레 35년 사상 최대의 위기(최소한 최대 위기 중의 하나일 것이며, 위기의 성격에서는 전례가 없는 면이라는 점에서 ‘최대’이기도 하다)인 이 사태를 한겨레가 어떻게 정리하고 있으며, 반성과 혁신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다.
50여 일간의 조사 끝에 나온 진상 보고서의 제목은 ‘한겨레 윤리는 어디에서 실패했나’라는 것이었다. ‘한겨레 윤리의 실패’에 대한 자성의 변을 실으면서 한겨레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쇄신하겠다”고 했다.
‘무겁다’는 한겨레의 발표와 다짐을 대하는 독자와 지지자들의 마음도 그만큼 무겁다. 이 보고서에 대한 평가를 굳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한겨레니까’와 ‘한겨레인데’라는 상반된 평가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래도 한겨레이니까 이같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반면 ‘한겨레인데 이 정도가 최선인가’라는 실망도 있을 것이다. 둘 다에 한겨레에 대한 특별한 기대와 요구가 담겨 있다. 이 상반된 듯한 평가의 어느 한편만이 아닌 양쪽을 함께 볼 때 이번의 보고서, 이 보고서를 낳게 된 이번 사태, 이런 사태가 빚어지게 된 한겨레의 현실, 그리고 앞으로의 한겨레의 장래에 대한 전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진상조사위의 보고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한겨레의 대응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흡한 점들을 짚었다. ‘발빠른 사과 발표’ ‘대표이사, 편집국장 등 관리자들이 곧바로 책임지는 모습’ 등을 “한겨레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엄중히 바라보고 있는지를 내부·외부에 명확하게 전달한 것”이라고 평했다. 반면 초기 대응의 허점, ‘대표이사 사퇴 뒤 경영 공백에 대한 대책 미비로 인한 혼선’ 등을 지적했다.
또 크게 3가지 제안으로 언론윤리 시스템의 재정비, 조직문화와 취재 · 관리시스템 개선, 법조기자단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내놓았다.
자기반성과 교정 모습, 역시 한겨레니까
한겨레의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은 ‘자기반성’이 없는 한국의 언론계에서 매우 드문 자기점검과 자기교정 의지를 가진 언론사로서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 그 점에 많은 독자들이 한겨레에 대해 질타하면서도 한겨레를 아끼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범은 또한 한계이기도 하다. 모범이어서 동시에 한계가 되는 것이다. 모범과 상반되는 것으로서의 한계가 아니라 그 모범이 곧 한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지금 보이고 있는 ‘한겨레식 모범’에 충실할수록 오히려 그것이 ‘한겨레가 한겨레를 잃고 있는’ 것이 되는 역설이 있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의 제목인 ‘한겨레 윤리의 실패’에서 ‘윤리’는 무엇인가. 보고서는 금전 거래를 중심으로 한 개인과 관련자들의 탈선, 윤리규범과 의식의 점검에서 허술해진 점을 윤리의 실패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에서 이번 조사위는 멈춰 있다. 한겨레의 윤리의 근간이 돼야 할 것, 그것은 단지 금전거래의 부조리와 비리의 근절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한겨레에 요청되는 가장 큰 윤리, 다른 윤리를 낳는 토대이며 근본의 윤리는 한겨레가 한국사회에, 한국언론에 요청되는 상황과 이유를 놓치지 않는 것에 있다.
필자는 한겨레의 열린편집위원으로 지난 1년간 참여해 왔는데, 작년 8월 한겨레 지면에 썼던 편집위원 칼럼에서 얘기했던 것을 지금 더욱더 절실한 심정으로 확인한다.
“지난 세월, 한겨레는 후미지고 굽은 곳을 향하는 연민의 눈이었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이었으며, 듣지 못하는 이의 귀였다. 철옹 기득권을 깨는 주먹이었고 기성의 낡은 관념을 부수는 망치였다. 더 좋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믿음과 희망의 집결이자 대변이었다. 우리 사회와 시대의 육신이자 무기, 그것이 되고자 했다.”
지금의 한겨레는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며, 그것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 한겨레의 벗들은 ‘여전히’를 넘어 더더욱 가중 가열하게 요청하고 요구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한겨레, 더 큰 한겨레, 더 강한 한겨레’가 필요하다고.
한겨레엔 한겨레가 그동안 달성해 낸 것 이상의 과제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뤄낸 적잖은 것들,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은 한겨레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러나 그 성취에도 불구하고, 아니 성취만큼 더 커지는 미완과 숙제가 있다.”
그러므로 한겨레의 벗들은 한겨레에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를 한겨레 되게 해주는 것, 그 본래의 것으로 보전시켜주는 그것은 살아남아 있는가.”
이번 조사보고서는 과연 한겨레를 한겨레 되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살아 있는지를 묻고 있는가.
때로는 뭔가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그것의 부존재를 보여준다. 진상 보고서는 많은 ‘사실’들을 담고 있다. 방대하고 세밀한 조사를 벌인 결과물들이다. 그 사실들의 조사와 발견으로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고 있는지는 쉽게 평가하기 힘들다. 다만 그 많은 사실과 사실들로써, 그 사실들의 늪 속에서 사실 너머의 본원적 ‘진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지 못했다, 고 해야겠다.
사태의 '종결', 반성의 '최종'이 아니길
결국 문제는 질문에 있다. 뭔가의 답은 질문이 어떤 것이냐에서 나온다는 것에 있다. 조사위는, 한겨레는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에 있다.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인가에 있다.
조사위는 ‘독립적인’ 조사를 강조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내부의 어떤 간섭을 받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본질로부터의 독립, 이탈이 돼서는 안 된다. 문제의 근본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독립성 이전에 제3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 그 문제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절실과 긴박으로 물을 때, 그럴 때에야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보고서는 법조기자단의 전반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이번 진상조사위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했다. 또 “이는 한겨레를 넘어 전체 언론계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다”라고 했다. 그것은 이번 보고서의 제목에서부터, 즉 ‘김만배 사건 관련 진상조사 최종결과’라고 돼 있는 것에서부터 이번 조사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를 드러낸다.
부디 이것이 사건의 ‘종결’, 자기반성의 ‘최종’이 아니길 바란다. ‘김만배 사건’을 넘어서 ‘한겨레 사건’으로, ‘사건’의 진상을 넘어서 ‘사태’의 진상으로의, 무엇보다 최종이 아닌 그 끝에서로부터 더 큰 시작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보고서가 주문한 ‘전체 언론계 차원의 논의’가 이뤄지기 위한 그 시발점이야말로 한겨레가 한겨레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있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새로운 한겨레 리더십의 출범이 대안언론, 진보언론의 리더십으로서의 본래성의 회복이 되길 바란다.
그것이 한겨레의 선행(先行)에 대한 후발자로서, 작은 경쟁자이며 동반자로서 시민언론 민들레가 보내는 응원이며 박차(拍車)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