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문제 ①] 윤 탄핵반대·구출운동의 실체
음지에서 기회 엿보다 윤 정권 등장하며 부활
김용현 김태효 이주호 유인촌 박종준 최상목 등
각료급 외에 국책연구기관, 사상문화 분야 똬리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짙은 친일 그림자
명령 절대복종의 규칙과 전통, 일제가 뿌리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친위 쿠데타 실패 이후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우리사회 현상 중의 하나는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친일세력의 총결집이다. 육사 교정에서 홍범도 장군 등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흉상까지 제거하려 했던 군과 경찰의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들이 여전할 뿐만 아니라 정부 각료직과 고위관료들, 국책연구기관 기관장들도 대거 뉴라이트 또는 그 계열 인사들이 장악했다. 이른바 ‘극우 유튜버’ 세력의 준동도 거기에 가세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뚜렷해진 이런 추세는 쿠데타 실패 뒤 탄핵당한 그를 지지하고 탄핵을 무산시키려는 움직임 속에 더 선명해졌다. ‘민주정부’ 시절 소외됐거나 척을 졌던 그 세력이 지금 탄핵반대 윤 씨 ‘구출’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다시 친일문제’란 타이틀로 이 문제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잘못된 명령에 불복종하는 미국 해병대 규칙
“해병대에는 비합리적인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불복종) 규칙이 있다.” “내게 대통령이 국회로 군대를 출동시키라고 명령한다면, 나는 대통령에 맞서 싸울 것이다.”
베트남전 반전운동에 앞장섰던 일본의 자유주의 사상가요 작가 오다 마코토(1932~2007)가 1964년에 오키나와에 갔을 때 그곳에 주둔 중이던 미국 해병대 장교를 면담했는데, 그때 그 미군 장교가 그런 말을 했다. 오다는 그 말을 듣고 “지켜야 할 조국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군인이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나라지 부당한 명령을 내린 최고통수권자(대통령)나 그가 폭압적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다.
<오다 마코토 전집> 제8권 50쪽에 그런 얘기가 실려 있다.
오다는 그 뒤 베트남전 반전운동을 벌이면서, 베느남인들에 대한 ‘군사적 대학살’ 명령을 거부하고 탈영한 미군 병사들 지원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런 일화를 상기시킨 사람은 일본 역사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 게이오대 교수다. 오구마 교수는 지난 1월 3일 <아사히신문>에 실린 ‘불발로 끝난 비상계엄, 한국군은 어떻게 변화했나-지난 일을 알고 있는 장교 출신자의 증언’ 제목의 기사에 대한 논평에서 그 일화를 꺼냈다.
그 다음에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그날 논평에서 오구마 교수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자위대 간부 출신자가 ‘최고지도자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군이다. 동시에 최고지도자가 잘못된 명령을 내렸을 때, 군의 대응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의 자위대원들에게 시민적 불복종 규칙이나 전통이 있을까?”
오구마 교수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일본 자위대 얘기를 떠올린 것은, 바로 그 기사에 나오는 한국군의 상관 명령 절대 복종 규칙 또는 전통 얘기에서, 그와 전혀 다를 게 없는 일본 자위대의 규칙과 전통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예편당한 김용현 전 장관의 원한?
문제의 그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전직 장교들에 따르면, 윤 씨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문재인 정권 당시 군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이었는데, 중장으로 예편됐다. 한 장교 출신자는 ‘작전본부장까지 했으면, 보통은 포 스타(4성 장군=대장)가 된다. 김용현 씨는 억울한 심정을 주변에 토로했다.’ 김 씨는 서울 충암고 1년 후배인 윤 씨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대통령 경호처장으로 부활했다. 윤 정권의 외교 브레인은 ‘군에 인맥이 없는 윤 씨(그는 병역면제로 군에 가지도 않았다)와 명예를 갖고 싶은 김 씨의 이해가 일치했다’고 했다. 비상계엄 준비에는 두 사람 외에 충암고 출신 여인형 방첩대 사령관도 관여했다.”
이미 잘 알려진 얘기지만, 실패한 윤석열 친위 쿠데타 주동세력의 핵심에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있고, 또 그 핵심에는 그의 충암고 인맥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인맥의 정상에 충암고 출신의 윤 씨가 있다.
상관명령 절대복종의 규칙과 전통, 일제가 뿌리
오구마 교수는 이 상관 명령 절대복종의 한국적 규칙과 전통이 일본 자위대의 그것과 닮았다고 봤다. 아마도 그는 두 나라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이 고리타분하고 퇴행적인 규칙과 전통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과거 역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조선과 중국 침략전쟁,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군국일본, ‘대일본제국’의 군대가 그 뿌리다. 충암고 군 인맥의 원류는 일본제국군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본에서 13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고미카와 준페이의 소설 <인간의 조건>에는 만주 점령 당시 일본제국 관동군의 처참한 비리 실상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일본군은 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나오는 구제불능의 상관명령 절대복종의 일본군 규칙과 전통의 패악을 읽다 보면 현대 한국군의 모습이 자연스레 겹치듯 떠오른다.
‘어퓨 굿맨’의 미국 법정과 달랐던 채상병 사건 판정
오다 마코토가 1960년대의 오키나와에서 만난 미군 장교는 대통령일지라도 잘못된 명령을 내리면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대를 국회로 출동시키라고 명령할 경우에는 총구를 대통령에게로 돌리고 싸우겠다고 했다. 미군이 그런 불복종을 실제로 어느 정도로 실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은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전쟁을 벌여 온 나라고, 19세기 말 이후 제국주의적 대외침략도 수없이 벌여 왔다.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상명하복의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상관 명령 절대복종의 규칙과 전통에서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쿠바의 미군 관타나모 기지에서 한 사병이 2명의 해병대원으로부터 거친 특수훈련을 받다가 죽은 사건을 다룬 영화 ‘어퓨 굿맨’에서 그런 차이의 일단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그 영화에서 신입 해군 법무관(중위) 대니얼 캐피(톰 크루즈)는 그 사건 뒤에 비뚤어진 ‘군인정신’의 화신인 관타나모 해병기지 사령관 네이선 제섭(잭 니콜슨)의 사건 조작 농간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민 끝에 정면으로 맞선다.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외형상으로 매우 닮아 보이는 한국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 포병대대 소속 채수근 일등병(상병으로 추서) 사망사건 처리와는 대조적이다. 법무관의 계략에 넘어간 제섭 대령은 군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그날로 군 생명이 끝장났지만, 한국에서 끝장난 것은 사고로 이어진 지시를 내리고 은폐한 1사단장 등의 책임자들이 아니라 그들에 맞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수사단장의 군 생명이었다. 알다시피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그 일로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보직에서 해임되고 입건됐다. 법무관 캐피가 박 대령처럼 항명죄로 오히려 처벌받았다면 미국사회와 언론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탄핵당한 윤석열 결사 옹호세력
고미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에는 그런 식의 일본제국군대 비리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한국군은 미국군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상관명령 절대복종의 규칙과 전통은 일본제국군의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홍범도 장군 등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 선각들의 흉상을 제거하라는 지시도 놀라웠지만, 거기에 대해 군과 육군사관학교 내에서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그 문제를 따지고 들며 철회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한국군과 육군사관학교는 그 역사적 정통성을 어디에 두고 있나?
대한민국 초기 육군참모총장들을 비롯한 군 고위 간부들 다수가 일제 괴뢰국이었던 만주국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주 일대 항일독립운동세력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 주력이 그들 만군출신 조선인들이었고, 그들이 해방 뒤 한국군의 주요 인맥을 형성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친위 쿠데타의 본진 인맥은 육사와 군 선후배 이전에 충암고라는 고등학교 선후배들이었다. 공수처의 합헌적 합법적 수색, 체포 영장 집행을 거부한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은 경찰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경찰 평안남도 보안과장 등 간부직에 있으면서 독립운동가들에게 혹독한 고문을 일삼은 공로로 훈장까지 받은 노덕술 같은 악질적인 친일경찰이 광복 뒤 이승만 정권 때 다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에 임명되는 등 간부로 중용되고 훈장까지 받은 대한민국 경찰이야말로 체제수호의 제일선에 섰던 비밀경찰 특고(특별고등경찰)로 악명 높았던 일본제국 경찰의 규칙과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 관계자 15명의 암살까지 모의했던 노덕술이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체 뒤 풀려나 6.25 전쟁 중에 육군본부 1사단 헌병대장, 범죄수사단 대장까지 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일제의 규칙과 전통은 군과 경찰을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 구분없이 침투했다. ‘해방’ 뒤에도 그것은 청산되지 못하고 온존됐다.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 이후 ‘민주적 정부’들이 등장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제국의 그 규칙과 전통은 아직도 우리사회 깊숙한 음지에 또아리를 틀고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정치적 변동기마다 고개를 쳐들다가 윤석열 정권 등장과 함께 다시 한번 화려하게 양지로 피어올라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이나 사상 문화 분야에서도 그들의 존재감은 날로 커졌다.
뉴라이트 싱크탱크로 불린 ‘뉴라이트 싱크넷’ 김영호 운영위원장이 윤 정부 통일부장관이 됐다.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를 옹호한 뉴라이트 인사로 알려진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은 독립기념관장이 됐다. 그 때문에 광복회가 8.15 광복절 정부 행사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관장 후보 추천부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 곧 뉴라이트 인사들 3명만 뽑았다. 그 전에 독립기념관 새 이사에 뉴라이트 본진이자 식민지 근대화론의 산실인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이택 소장을 임명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새 원장자리에도 한민족의 도덕성이 세계에서 가장 저열하다며 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근거거 부족하다고 주장한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인 낙성대경제연구소 김낙년 이사장을 앉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도 한국은 친일청산 할 것이 없다며, 좌파가 “좌파 나라 만드는 데 지장이 되면 친일파”로 몬다고 거짓말을 한 김광동을 임명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국가교육위원장, 국사편찬위원장도 뉴라이트거나 그 계열 인사들이 차지했다.
윤 정부의 ‘실세’로 알려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그리고 이주호 교육부장관, 유인촌 문체부장관,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등도 다르지 않다. 유시민 작가도 지적했듯이 박종준 경호처장과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도 윤 씨가 ‘부활’시켜 준 소외인사들이었다.
이렇게 보면 역대 ‘민주정부’ 시절 사상, 이념이나 인맥 등으로 소외됐거나 척을 진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 아래 이익과 원한, 보복심리를 원료로 한 결속과 충성을 다짐하며 총결집했다는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7천여 명의 인사권을 쥔 대통령이 된 윤 씨는 자신들의 명예나 이익을 위해 권토중래의 기회를 노리던 그런 사람들을 골라 불러모으고 그들 중 핵심인사들을 정권 선전과 강화에 필요한 요직에 앉혔다.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직접 “뉴라이트가 뭔지 모른다”고 했던 윤 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뉴라이트든 아니든, 그건 모르겠고 중요한 건 그들의 변치않을 충성이야! 지금 탄핵당한 윤 씨를 결사 옹호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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