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베테랑 기자들이 보는 한국 ‘계엄사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와는 다른 이번 시위

젊은 여성 파워에 충격, 초당파적 ‘한국DNA’

저항은 머리로 생각하기 전 ‘몸 반사’단련부터

한국 민주화는 일본의 ‘언덕 위의 구름’같은 것

“지시에 순종적인 자신을 비웃어라”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1차 표결이 있던 12월 4일, 여의도 탄핵촉구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  아사히신문 12월 28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1차 표결이 있던 12월 4일, 여의도 탄핵촉구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  아사히신문 12월 28일

12.3 친위 쿠데타 시도 이후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한국 시민사회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식을 줄 모른다. 이웃 일본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다. 어제와 오늘 일본 유력지 <일본경제신문>과 <아사히신문>은 각각 ‘한국 사태’를 들여다 본 자사 편집위원 겸 논설위원의 ‘기자 칼럼’을 실었다. 두 베테랑 기자들은 각기 개성 있는 글을 통해 한국의 최근 사태 양상과 의미를 짚고 그것을 일본사회와 비교하면서 나름의 심층적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이들은 최고권력자의 계엄령에 몸을 사리지 않고 즉각 대응하는 시민들의 집단적 저항, 그 중에서도 젊은 층, 또 그 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의 저항에 놀라워 하면서 그 의미와 배경을 살피고, 그것을 통해 한일 간의 차이까지 짚어낸다.

한국의 시민, 특히 젊은 여성 파워에 충격

“한국의 시민 파워에 충격, 마음의 연하장에 특대 글자로 쓴 ‘부단한 노력’”이라는 제목을 단 다카하시 준코 <아사히> 편집위원의 28일 칼럼은 최근 어둠이 깔린 도쿄 황거(천황 거처)를 내려다 보는 곳에서 연하의 여성과 술을 한 잔 하면서 한국의 ‘미친 비상계엄’과 시민 저항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총을 내려! 부끄럽지도 않나?”라며 계엄군 총부리를 쥐고 저항하는 야당 여성 대변인처럼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고문은 싫지만, 그 자리에서 총을 맞아도 좋다고 생각해'라고 하자 그녀는 '알아!'라며, 그럼 어떤 고문이 가장 싫으냐며 자신은 손톱 뽑히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물 고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 튀김 두부(안주)는 이미 식어 있었다."

다카하시 위원은 “비상계엄에 망설임 없이 감연히 들고 일어난” 한국 시민, 국회의원들 모습을 목도한 뒤부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80년 광주항쟁의 기억, 민주주의를 자신들 스스로 쟁취한 경험, 비상계엄을 불과 몇 시간만에 해제시킨 힘의 연원(근원)에 대한 갖가지 해설들이 나왔고 거기에 하나하나 수긍하는 중에 머리에 반짝 떠오른 것이 2차 대전 이후 일본을 대표한 자유주의 사상가,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쓰루미 슌스케(1922-2015)의 ‘반사’(反射)라는 말이었다.

저항은 머리로 생각하기 전 ‘몸의 반사’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대전) 때 일본이 잘못하고 있고 필패할 것으로 생각한 쓰루미는, 그러나 ‘전쟁 반대’ 행동에는 손가락 하나 얹을 수도 없었다며, 전후에 그런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뇌하던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손가락 하나 얹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도,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육체(몸)의 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사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의식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반응이다. 불에 닿았을 때 “앗 뜨거!”하고 황급히 손을 빼듯이, 권력이 폭주를 시작했을 때,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한다고 느꼈을 때, 머리로 생각하기에 앞서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런 ‘육체의 반사’가 과연 지금의 내 몸 안에 깃들어 있을까? 그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였다. “계엄령이 발동됐는데 외출해도 될까? 다리가 움츠러들면서 우왕좌왕. 모두들 어떻게 하고 있을까? SNS로 검색하고 있는 사이에, 그래, 늦어버렸네. 그런 결과가 눈에 선했다. 울었다.”

“우향 우”라는 호령이 들리면 즉각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배웠고, 외출하면 휴대폰 지도 앱이 지시하는 대로 걸어가고, 빨간색 신호가 들어오면 차도에 차가 전혀 지나가지 않는데도 멈춰 서 기다린다. 그런 식으로 매일을 그냥 살아가면 ‘반사’가 녹스는 것은 필연이다.

쓰루미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이 헌법(일본의 ‘평화헌법’)은 헌법에 부수된 온갖 법률들을 준수한다는 자세만으론 지킬 수 없다.”(<전쟁과 일본인>)

“지시에 순종적인 자신을 비웃어라”

권력이 헌법의 제약을 벗어던지려 할 때는 법률의 세부 항목에 저촉되는 행동을 해서라도 헌법을 지키라고 분명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때를 위해 일상적으로 ‘반사’를 단련하라. 데모나 농성을 하기 어렵다면 호령이나 지시에 순종적인 자신을 비웃는 관점을 확보하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반사가 녹스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일본 헌법 12조는 “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 및 권리는 국민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를 지켜내지(保持) 않으면 안 된다”고 돼 있다.

내년은 전후 80년, 마음의 연하장에 ‘부단한 노력’을 특대호 글자로 써서 기자 여러분에게 보내야겠다. 좋은 새해를!

 

일본경제신문의 기획기사 '조선반도 파일'.    일본경제신문 12월 27일
일본경제신문의 기획기사 '조선반도 파일'.    일본경제신문 12월 27일

한국 민주화는 일본의 ‘언덕 위의 구름’같은 것

“한국 민주화는 쟁취한 ‘언덕 위의 구름’, 젊은이들이 잇는다”는 제목의 <닛케이> 27일 칼럼에서 미네기시 히로시 위원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순간 서울에 있었다며, “2016~2017년 그때도 영하의 날씨였던 서울에서 취재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파면 때의 촛불집회와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하 그의 글을 따라간다.

“부끄럽다.” 민주정치를 부정하는 국가원수의 비상계엄 선언 사태에 많은 한국 시민은 그렇게 말했다.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한국이 자랑해 온 민주주의가 상처받고 군사국가와 같은 이미지로 되돌아 가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한국 비상계엄 상황을 특히 유럽과 미국의 언론매체들이 자세히 보도했다. ‘계엄령’은 특별한 울림이 있다. 서울 체류 중에 거리를 걸어가면서 특히 구미에서 온 여행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치경제 중심지인 여의도에서는 윤 대통령 퇴진과 체포를 요구하는 집회가 연일 열렸다. 기자가 놀란 것은 K팝의 ‘폭음’에 맞춰 선명한 팬라이트(응원봉)를 흔드는 10와 20대의 젊은 여성들 모습이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와는 달랐던 이번 시위

축제에 참가하기라도 한 듯한 분위기와 표정을 보고, 비장감과 분노가 뒤덮고 있던 7, 8년 전의 촛불집회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일 양쪽을 오래 취재해 오면서 한국인들의 강한 신념을 특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독도)와 민주주의 두 가지다.

“민주화와 독도는 한국인들에게 <언덕 위의 구름>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잘 아는 한일 외교 소식통의 해설은 명쾌했다. (일본의 국민작가라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은 청일, 러일 전쟁을 소재로 삼아 언덕 위의 푸른 하늘을 떠가는 흰 구름를 바라보며 달려간 메이지 시기의 일본 모습을 그렸다. ‘언덕 위의 구름’은 국가가 목표로 설정한 꿈을 획득하고 실현해 가는 것을 상징한다.

(이 소설은 결국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 대륙침략으로 이어진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긍정하고 제국주의로 치달린 일본 근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성공담’이라는 점에서 메이지 유신과 그 주도세력의 피해국들에겐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시바는 러일전쟁까지의 일본은 문제가 없고 좋았던 시절, 희망과 성취감이 넘친 시대로 그린다. 그 뒤 조선과 대륙침략으로 치달리는 우를 범해 망국으로 갔다고 비판하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자체가 한반도 지배가 주요 목표였고 한반도를 무단 점령해 벌인 전쟁들이었다는 점에서, 시바의 한국 및 한국사 이해는 지극히 일본중심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른바 그런 ‘시바 사관’이 근대 일본에 대한 일본 다수 대중의 인식에 깊이 자리잡고 있고, 시바는 일본 국민작가로 지금도 널리 읽히면서 그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언덕 위의 구름>은 NHK 인기 드라마로도 각색돼 방영됐다.)

독도와 민주주의가 키워드

먼저 독도. 한국인들은 러일전쟁 개전 다음 해인 1905년(메이지 38년),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로 편입한 것을 1910년 (일제의) 한국병탄으로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는 망국 역사의 사실상의 기점으로 본다. 그 뒤 1952년 일본에 대한 일방적인 ‘이승만 라인’의 설정으로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돌려 받았다’는 스토리인데, 독도는 한국인들에게 영토와 역사문제에 정체성(아이덴티티)이 얽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존재가 돼 있다.

1987년 민주화 선언도 한국인들의 ‘언덕 위의 구름’이다. 한국사에 남은 수많은 민주화 탄압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1980년 광주사건. 전두환 씨가 이끈 군부가 “폭동은 북한이 선동했다”고 선전하며 광주를 봉쇄하자 학생 등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특수부대가 투입돼 16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오랜 세월의 민중투쟁 끝에 군사정권으로부터 쟁취해낸 것으로, 피와 눈물 위에 쌓아올린 것이라는 의식이 국민 사이들에 뿌리박고 있다. 광주사태로부터 44년, 민주화 선언으로부터 37년, 사건 당시에 발령돼 있던 계엄령은 먼 옛날의 기억이 아니다.

10~20대 젊은 여성이 지닌 초당파적 한국DNA

독선적인 윤 대통령에게 불만을 지닌 여성들은 이미 많이 있었고, 그들은 혁신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접하자 어릴 적부터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전해들었던 민주주의의 위기가 돌연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연합뉴스>가 분석한 서울 시의 생활인구 통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14일 오후 4시에 여의도 탄핵요구 집회에 참가한 31만여명을 세대별로 보면 20대 여성이 17.52%를 점해, 가장 많았다.

전두환 시대의 군사 쿠데타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크게 히트하고, 군사정권 하의 탄압 등을 작품 소재로 삼은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아 나라가 축하 열기에 휩싸인 것도 여의도 집회로 젊은 여성들의 등을 떠밀었을 것으로 보인다. 거리 시위로 정치를 바꾼다는 국가 DNA가 부모로부터 자식들에게 전달됐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국강병과 식산흥업으로 구미를 따라잡는 근대국가를 지향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정치 지도자들은 ‘트랜지스터 상인’ 등의 야유를 받아 가면서 경제대국을 향해 매진했다.

한편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직접 독립을 쟁취해내진 못했다. 그런 경위 때문에라도 자력으로 손에 넣었다고 보는 민주주의와 독도에는 남달리 더 집착하고 그것을 파괴하려는 상대에게는 철저히 대항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는 요즘 일일이 대립하는 보수, 혁신을 불문하고 한국인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감개(感慨)다. 게다가 취임 연설에서 ‘자유’를 35차례나 언급하는 등 일관되게 자유와 민주주의, 법의 지배의 중요성을 거듭 피력해 온 윤 대통령이었다. 그것을 스스로 전면 부정하는 듯한 이번 계엄사태에 대해 한국의 DNA가 세대를 초월해 표출된 것이다.

반정부 시위없던 일본도 바뀌고 있다

한국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 찬성 응답은 70%를 넘었다. 불과 2년 반 전에 국민투표로 선출된 국가원수가 여론의 압력으로 직무를 정지당하는 광경이 또 되풀이됐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 중 3번째다.

일본에서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거의 볼 수 없다. 그것이 한국의 기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비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쟁취한” 민주주의(한국)와 미국에 의해 “주어진” 민주주의(일본)는 당연히 국민이 그것을 느끼는 감도가 다르다고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는 말했다.

일본에서도 최근 대형 선거 등에서 젊은 세대의 변화가 눈에 띈다. 7월에 쓴 졸고 “촛불데모 없는 일본, 정권비판 둘러싼 한국과의 차이”를 읽었다는 도쿄도 내의 대학생이 12월에 친구들과 함께 세계의 사건과 사회문제를 테마로 한 영화를 상영하는 ‘외치다’는 타이틀의 영화제를 열었다. 보내 온 편지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무관심한 것에 대한 위기감이 계기가 됐다”고 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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